-
-
양양 - 가족의 오랜 비밀이던 딸의 이름을 불러내다
양주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0월
평점 :

〈양양〉은 다큐멘터리 감독인 지은이가 아빠로부터 뜻밖의 이야기를 듣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느 겨울 밤, 술에 취한 아빠는 전화기 너머 딸 주연에게 자신에게 누나가 있었음을 고백한다. 고모의 이름을 묻는 딸에게 아버지는 답을 하는 대신 이야기한다. ‘너는 고모처럼 되지 말아라.’ 양씨 집안의 여자들은 모두 불행했다는 말과 함께.
존재조차 몰랐던 고모의 이야기. 아빠의 고백은 오랜 시간 침묵으로 감춰 온 ‘가족의 비밀’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대학 졸업식을 앞두고 자살한 고모. 철저하게 잊힌 죽음으로 남아야 했던 그녀의 숨겨진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고모의 흔적을 찾는 저자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당연하게 불행한 존재는 어디에도 없다. 양씨 집안의 여자들은 불행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고모의 삶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면, 고모의 서사는 달라질 것이다. [p.27]
‘양양’은 고모라는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내 나름대로 만들었던, 그녀를 호명하는 이름이기도 했다. 양씨 집안의 여성들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고, 양지영과 양주연을 합쳐서 ‘양양’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양양’이 마치 물이 흐르는 느낌이라고도 말해 주었다. 또 누군가는 ‘양양’이란 호명이 더 많은 익명의 여성들을 소환해 낼 수 있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무엇이든 좋았다. 각자의 느낌을 닫는 것이 아니라 열어 줄 수 있는 제목이라서 좋았다. [p.58]
책 〈양양〉은 사적인 서사와 사회적인 서사를 연결하는 다큐멘터리로 평단의 찬사를 받아 온 양주연 감독의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뿌리로 한다. 저자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과정과 그 이후의 에피소드, 영화에서 못다 한 이야기들을 책에 풀어냈다고 밝혔다.
억압된 슬픔이 빚어낸 침묵의 시간을 지나 다시 흐르기 시작한 ‘양양’의 이야기. 고모 양지영에게서 조카 양주연으로, 오랫동안 이름 없이 시간 속에 머물러야 했던 수많은 여성에게서 또 다른 어느 여성으로.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슬픔과 아픔에 묻혀 있던 그녀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 〈양양〉과 함께. 지금도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김양과 박양, 이양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언제나 착한 딸이 되어야만 했던 시간 속에서 터져 나올 수 없었던 서운함과 답답함이 고모라는 렌즈와 함께 드디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 시간을 온 마음으로 느끼며 나는 나의 시간을, 가족의 시간을 다시 써 내려가고 있었다. [p.107]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