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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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불공평하고 불행은 늘 자신의 몫이라 생각하며 살아가는, 은행의 대출심사역 ‘장’. 본부장의 눈 밖에 나 쉽지 않은 직장 생활에, 결혼을 준비하던 여자친구 해주와 파혼하고 남은 건 집 한 채와 대출금뿐이지만. 좋은 일은 좀처럼 그에게 찾아들지 않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복면을 쓴 이들에 의해 트렁크에 갇힌 채 납치되는 사건에까지 휘말리게 된다. 그러는 사이 죽은 자들이 바다에 나가 거꾸로 박혀 있다는 전설로 전해지는 말뚝들은 바다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바로 눈앞으로 조금씩 다가오는데….




긴급재난문자와 국가 비상사태 선포, 라디오 프로그램 〈배철수의 음악캠프〉, 데이식스 콘서트, 광화문 광장 그리고 군인들. 정신없이 몰아치는 소설의 파란만장 속에 섞여 있는 요소들이 이야기에 현장감을 더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말뚝들과 ‘장’을 납치한 복면을 쓴 이들, 흰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 광장으로 모여든 시민들과 군인들. 불안에 떠는 이들과 진실을 알고 싶은 사람들, 진실을 감추려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자아내는 긴장감으로 한숨에 읽어가다 별안간 날아든 문장에 피식 웃음 짓게 되었던 책. 무엇보다 김홍 작가의 〈말뚝들〉은 우리 개개인과 한국 사회에 아픔으로 남아 있던 사건들이 이제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겠다는 걸 보여준 작품으로도 오래 마음에 남을 듯하다.




말뚝들의 머리는 털 오라기 하나 없이 반지르르했고 얼굴도 방금 세수한 것처럼 매끈했다. 그것들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뻘밭에 거꾸로 파묻혀 있었다. 공기는 물론 해수와도 접촉한 적 없는 피부가 일체의 부패 없이 미라가 돼 있었다. 기사를 보며 그런 상태를 ‘시랍화’라고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안색이 어둡고 얼굴이 전체적으로 부어 있는 것을 제외하면 방금 눈 감고 잠든 사람 같기도 했다. 눈을 감은 데다 뚜렷한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은 탓에 전부 한 사람의 얼굴처럼 보였다. 혹은 모두의 얼굴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p.84]




그때 사무실의 모든 휴대폰이 동시에 비명처럼 알람을 울렸다. 5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다. 짧은 순간 몇 가지 가능성이 스쳤다. 태풍이 오기에는 늦은 계절이었다. 창문을 힐끗 봤는데 눈이나 비가 오지는 않았다. 붕괴? 화재? 화산 폭발? 지진 같았다. 주위에서 이상한 탄식이 새어 나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종류의 사건이라는 암시였다. 장은 심호흡하고 휴대폰을 들었다.


긴급재난문자

[서울특별시] 금일 17:04 광화문 일대 말뚝들 다수 출현. 차량 우회 및 해당 지역 접근을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p.130]




김홍의 장편소설 〈말뚝들〉에는 이야기를 관통하는 두 개의 큰 축이 있다.바다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내 앞으로 밀려온 ‘말뚝들’과 이들이 몰고 온 ‘눈물’. 슬픔과 애도를 넘어 새롭게 만들어 가는 기억과 연대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고, 그 중심에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말뚝들이 있다. 조금씩 밝혀지는 말뚝의 정체와 이들의 과거를 보며 여러 얼굴이 기억을 스쳐 지나갔다. 갈등과 분열의 시대. 마음에서 마음으로, 서로에게 진 빚으로. 우리를 잇는 따뜻한 결속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김홍의 장편소설 〈말뚝들〉과 함께 작가가 웃음과 눈물로 빚어낸 메시지를 만나 보면 좋겠다.




큰 빚이 큰 부자를 만드는 진리는 언제나 통한다. 하지만 우리의 빚은 저들의 것과 다르다. 아무에게도 빚지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가난하다. 서로에게 내어준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노트에 눌러쓰고, 그 빚을 기억하며 평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으로 언젠가 세상을 설득할 것이다. [p.280]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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