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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한 방울 - 이어령의 마지막 노트 2019~2022
이어령 지음 / 김영사 / 2022년 6월
평점 :

자신을 위한 눈물은 무력하고 부끄러운 것이지만 나와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눈물은 사랑의 씨앗’이라는 대중가요도 있지만 ‘눈물은 희망의 씨앗’이기도 한 것이다. 인간을 이해한다는 건 인간이 흘리는 눈물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 눈물방울의 흔적을 적어 내려갔다. 구슬이 되고 수정이 되고 진주가 되는 ‘눈물 한 방울’. 피와 땀을 붙여주는 ‘눈물 한 방울’. 쓸 수 없을 때 쓰는 마지막 ‘눈물 한 방울’. [서문에서]
2019년 11월부터 영면에 들기 한 달 전인 2022년 1월까지. 《눈물 한 방울》은 삶을 반추하고 죽음과 마주서며 써내려간 이어령 선생님의 미공개 육필원고를 담았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끝까지 펜을 놓지 않고, 생명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친필과 손 그림으로 남긴 이어령 선생님. 시대의 지성이라 불린 저자의 자유로운 사유와 반짝이는 영감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새에 눈물 한 방울을 머금은 듯한 뭉클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평생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가며 세상의 수수께끼를 풀어 온 저자. 그런 이어령 선생님이 생의 마지막 순간 남긴 새로운 화두, ‘눈물 한 방울’. 병상의 지은이는 이제 자신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말은 ‘눈물 한 방울’이라고 했다. ‘디지로그’나 ‘생명자본’ 같은 거창한 개념어가 아닌, 감정을 잔뜩 머금은 것 같은 이 마음의 표현은 책을 읽는 우리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절대 놓지 말아야 할 ‘마지막 말’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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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 그래서 눈이라는 말이 없다. 하지만 낙타라는 말에는 부위에 따라 제각기 다른 말들이 많다(세분화되어 수십 가지가 있다). 에스키모(이누이트족)인들에게는 눈에 관한 단어가 수십, 수백 가지라고 한다. 하지만 낙타란 말은 없다. 남과 북. 지리적 상황에 따라서 말은 정반대의 현상을 보인다. 그러나 사랑은 남과 북이 없고 여름과 겨울이 따로 없다. 자연과 문화의 차이가 언어에 의해서 뚜렷한 경계선을 만든다.
[p.48 〈눈과 낙타, 그리고 사랑〉에서]
시, 산문, 평문 등 다양한 형식의 글 그리고 글과 잘 어우러지는 손 그림을 담은 《눈물 한 방울》에는, 말과 글을 향한 이어령 선생님의 애정도 한가득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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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가 젊은이에게 해줄 수 있는 단 한마디. MEMENTO MORI. 죽음을 생각하라는 말이다. 늙어서 죽음을 알게 되면 비극이지만 젊어서 그것을 알면 축복인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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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한 금씩 줄어가는 몸무게. 무엇이 가벼워진다는 건가? 죄의 무게가, 생각의 무게가, 맥동과 박동과 움직임의 무게, 목숨의 무게가 가벼워진다는 것인가? 중력의 법칙과 다른 생명의 법칙은 무슨 저울로 달아야 하나.
[p.138에서]
일찍이 컴퓨터 자판을 써왔지만 더 이상 컴퓨터 작업을 이어가기 어려워 40년 만에 옛날의 손 글씨로 돌아왔다는 이어령 선생님. 병상에서도 펜을 잡고 한 자 한 자 노트에 옮겨낸 문장들. 시간이 지날수록 힘을 잃어가는 필체에서, 읽고 쓰는 일이 힘겨워지며 저자가 느꼈을 슬픔과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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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다는 것은 아직 내가 살아 있다는 신호다. 이 신호가 멈추고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것이 우리가 그처럼 두려워하는 죽음인 게다. 고통이 고마운 까닭이다. 고통이 생명의 일부라는 상식을 거꾸로 알고 있었던 게다. 고통이 죽음이라고 말이다. 아니다. 아픔은 생명의 편이다. 가장 강력한 생生의 시그널.
삭풍보다 매서운 채찍의 아픔을 견디며 빙판 위에서 회전하는 팽이. ‘아픔이 팽이를 살린다. 채찍이 멈추면 팽이는 솔방울처럼 떨어져 죽는다’. 팽이를 담은 문장이 후반부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글에 겹쳐지며 마음에 더 깊이 와닿았다.
《눈물 한 방울》은 시대의 지성, 이어령 선생님이 사멸의 운명을 받아들이면서도 마지막까지 멈추지 않고 기록한 사유와 영감, 일상의 기억을 담았다. 병마와 싸우는 병상에서도 손으로 눌러쓴 성찰과 통찰의 문장은 인간 이어령의 88년 인생을 꿰뚫는 듯하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걸 증명해주는 눈물. 오직 인간만이 흘릴 수 있다는 정서적 눈물. 생의 끝에서 저자가 남긴 ‘눈물 한 방울’을 통해 우리에게 던져진 일생의 과제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