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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선택의 재검토 - 최상을 꿈꾸던 일은 어떻게 최악이 되었는가
말콤 글래드웰 지음, 이영래 옮김 / 김영사 / 2022년 4월
평점 :

★
빨려가듯이 읽었다. 타고난 이야기꾼 글래드웰은 전쟁이라는 비정상의 시간 속에 놓인 독자에게 힘든 선택지를 들이민다. 비정한 결정을 내리지 않아도 되어 다행이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는 순간, 눈앞에 울고 있는 우크라이나 아이의 모습이 들어온다. 그의 말처럼 모든 전쟁은 부조리하다. [김지윤 (정치학자) 추천사]
《어떤 선택의 재검토》,
원제 : The Bomber Mafia,
말콤 글래드웰
《아웃 라이어》, 《티핑 포인트》 등의 저서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말콤 글래드웰. 탁월한 스토리텔링과 날카로운 통찰을 자랑하는 그의 신작 《어떤 선택의 재검토》는 제2차 세계대전 속 결정적 순간의 배경이 된 ‘어떤 선택’을 담은 역사 논픽션이다. 저자가 직접 운영하는 팟캐스트 〈수정주의자의 역사(Revisionist History)〉의 에피소드를 바탕으로 집필한 이 책은,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미군의 도쿄 대공습을 파헤치며 비극의 원인이 된 ‘선택’을 재검토한다. 폭격기 마피아라 불리던 미 육군항공대 지휘관들이 주역이 된 1945년의 ‘도쿄 대공습’. 더 많은 사람을 살리겠다는 마음에서 시작됐으나 하룻밤에 1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들의 선택은,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정당한가’라는 메시지를 담은 트롤리 딜레마를 떠올리게 한다.

말콤 글래드웰의 이번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을 담았으나, 전쟁 자체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이를 엄청나게 확대해 ‘폭격’이라는, 전쟁의 한 면을 이야기한다. 그 중심에는 같은 의도에서 출발한 정반대의 선택이 있다. 정밀 폭격을 주장한 헤이우드 핸셀과 무차별 폭격을 주장한 커티스 르메이. 결코 닿을 수 없는 평행선을 그리던 이들의 상반된 주장은 《어떤 선택의 재검토》를 관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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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의 중심에 괌의 정글 속에서 대치하던 헤이우드 핸셀과 커티스 르메이가 있다. 한 명은 집으로 돌아가야 했고 한 명은 거기에 남았다. 그 결과는 제2차 세계대전의 가장 어두운 밤으로 이어졌다. 그들의 이야기에 대해 듣고 이렇게 자문해보라.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는 어느 편이었을까?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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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폭격조준기에 그렇게 많은 투자를 한 것일까? 노든은 꿈, 그것도 전쟁사에서 가장 강력했던 꿈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9킬로미터 상공에서 오크통에 폭탄을 떨어뜨릴 수 있다면, 군대가 더 이상 필요치 않다. 젊은이들이 전장에서 목숨을 잃게 놓아두거나 도시 전체를 파괴할 필요도 없다. 전쟁의 모습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 정확하고 빠르고 거의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으로. ‘거의’ 말이다.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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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특별히 민간인을 노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독일군이 전쟁을 계속할 수 있게 해주는 모든 생산을 막는 일을 목표로 했습니다. 폭격 공격이라는 발상 자체가 그 일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독일 전역의 잠수함 건조 시설과 병기 산업 시설, 그리고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파괴도 포함됩니다. 저는 그들 모두가 현역 군인과 다름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군수품 생산에 참여한 사람들은 현역 군인으로 취급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어디에 구분을 두어야 합니까?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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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전쟁은 부조리하다. 인간은 수천 년 동안 서로를 없앰으로써 불화를 해결하는 방법을 선택해왔다. 서로를 제거하지 ‘않을’ 때에는 ‘다음’ 기회에 확실히 서로를 제거할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관심을 투자한다. 생각해보면 이런 모든 것은 참 이상한 일이다.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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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은 불길이 닿기도 전에 화염에 휩싸였다. 엄마들은 아이를 업고 불을 피해 도망쳤으나 숨을 돌리는 순간 아이에게 불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스미다강의 운하로 뛰어들었지만 밀려드는 조수와 위에서 뛰어내리는 수백 명의 다른 사람들 때문에 익사하고 말았다. 철교에 매달린 사람들은 쇠가 너무 뜨거워지는 바람에 떨어져 죽음을 맞았다. [p.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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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끝난 후, 미국전략폭격조사는 이런 결론을 내렸다. “도쿄 화재로 6시간 동안 인류 역사의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날 밤 10만 명이 죽었다. 그 작전에 참여했던 승무원들은 큰 충격에 빠진 채 돌아왔다. [p.211]
《어떤 선택의 재검토》는 미군 지휘부가 ‘도쿄 대공습’이라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그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기술의 혁신과 휴머니즘의 열망이 결합된 고고도 주간 정밀폭격, 소수의 희생으로 더 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하겠다는 이상을 품은 선택과 의도와는 정반대로 흘러간 결말. 선택의 의도와 결과 사이의 괴리를 보며 독자는 폭격기 마피아가 꿈꾼 ‘윤리적 전쟁’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민간인 희생 문제의 심각성이 다시 불거지고 있는 지금. 진정 올바른 선택이란 무엇인가. 고민하며 읽어 보면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