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스퀘어
안드레 애치먼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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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 캠퍼스 투어에 나선 중년의 아버지인 '나'. 곧 대학에 지원할 아들은 입학처 직원이 우쭐거리며 소개하는 학교에 관심조차 없지만, 삼십 년만에 추억의 장소를 마주한 하버드 출신의 '나'는 생각에 잠긴다.

 

 

유난히 더웠던 1977년의 여름, 지난 겨울 종합시험에서 떨어져 딱 한 번의 재시험 기회가 남은 '나'는 하버드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가난한 대학원생이다. 여유롭지 못한 형편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 시험 준비를 하며 지겨운 나날을 이어가던 '나'. 그러던 어느날, 하버드 광장의 반지하 카페에서 만난 택시운전사 '칼라지'가 '나'의 관심을 끌고,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던 이들은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빠르게 가까워진다. 세상 모든 것들에 독설을 퍼부으며 주변인으로 겉도는 칼라지를 보는 '나'의 마음엔 연민과 동시에 왠지 모를 혐오가 자라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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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케임브리지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았고, 그들 중 한 명이 아니었으며, 시스템에 들어 있지도 않았고, 들어 있었던 적도 없었다. 이 곳은 내 집이 아니었고, 앞으로도 내 집이 될 수 없을지도 몰랐다. 이 사람들은 내 동포가 아니었고, 앞으로도 내 동포가 되진 않을 것이었다. 여기는 내 삶의 터전이 아니었고, 내 고향이 아니었으며, 심지어 나 자신도 아니었고, 내가 될 수도 없었다. 1977년 여름의 케임브리지가 그랬다.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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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 애치먼의 《하버드 스퀘어》는, 실제로 하버드에서 공부한 그의 자전적 소설로도 화제가 되었다. 뜨거웠던 1977년의 여름으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 이제는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나'. 《하버드 스퀘어》는 아들과 함께 하버드를 다시 찾은 '나'가 추억을 돌아보며 그해 여름으로 향하는 액자식 구성의 소설이다. 흔히 '젊음'을 상징하는 계절인 여름을 배경으로 담아, 계절이 변해감에 따라 함께 변하는 '나'의 감정 묘사와 인물의 성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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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것저것 숨기는 게 많았지만 그는 솔직했다. 나는 목소리를 높인 적이 없었지만 그는 하버드 광장에서 목소리가 가장 컸다. 나는 속 좁고 조심스럽고 소심한 반면 그는 무모하고 잔인하며 작은 불씨에도 곧 터질 화약고 같았다. 그는 자기 마음을 솔직하게 말했지만 내 마음은 수장고에 있었다. 그는 항상 정면에 대고 말했지만 나는 상대방이 돌아설 때까지 기다렸다가 구시렁거렸다. 그는 그 무엇도 지지하지 않았고 일절 타협하지 않았으며 모두를 가차 없이 비판했다. 나는 모두를 포용했지만 단 한 사람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는 사랑을 솔직하게 표현했지만 내 사랑은 마음 속 깊은 곳에 묻혀 있었다. [p.71]

 

 

《하버드 스퀘어》는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같은, 하버드 광장의 사람들과 이방인 '칼라지'를 생생하게 그려냈다. 가식 없이 솔직한 칼라지를 만나 전과 달리 활기를 되찾아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와 너무 가까워지지 않으려 애쓰는 '나'.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이야기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우리의 마음을 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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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카페 알제에서 만난 모든 사람을 자신의 비좁고 일시적인 세계에 꽉꽉 밀어 넣었지만, 단 한사람에게는 공기가 잘 통하는 제일 좋은 방을 주었다.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는 피를 나눈 형제이자 공범이 필요했던 것이다.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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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져가는 그의 택시를 바라보면서, 우리를 친하게 만든 요인은 상상 속 프랑스와의 로맨스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그냥 가림막, 착각이었다.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어디서도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우리의 극단적인 무능력이었다. 우리는 평범하게 사랑하고 평범한 집에서 살며 평범한 일을 하고 평범한 텔레비전을 보고 평범한 식사를 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 심지어 우린 평범한 친구를 갖거나 유지할 수도 없었다.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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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이라는 공통점은 '나'와 '칼라지'를 하나로 묶어주었지만, 하버드에서 공부하는 학생과 영주권을 얻지 못해 추방될 위기에 처한 택시운전사라는 너무도 다른 그들의 처지는 종종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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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어두운 침실에서 문득 아주 선명하게 떠오르는 깨달음이 있었다. 그에게서 나 자신을 보고 있다는 생각. 그는 여기서 모든 것을 망치고 모든 것을 잃는 순간에 내가 얼마나 가까이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였다. 그는 나보다 딱 세 걸음 앞서가는 내 운명이었다. 나는 종합시험에 떨어지고 짐 싸서 뉴욕으로 돌려보내질 수 있었고, 지금으로부터 일 년 후엔 이 파티는 물론이고, 아무도 나를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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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를 부끄러워했고, 그를 부끄러워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우리의 공통점이 열악한 경제 형편 말고도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들키는 것이 부끄러웠다. 내가 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스스로 인정하지 않는 게, 우리를 하나로 묶는 것은 저급한 카페에서 어울리기 좋아하는 극빈자 정체성뿐이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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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갈 수 없어 더 애틋하고 아름다운 시절의 이야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작가 안드레 애치먼의 신작 《하버드 스퀘어》와 함께 내 마음 한편의 '그해 여름'을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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