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도시 SG컬렉션 1
정명섭 지음 / Storehouse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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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패』를 읽을 때도, 『케이든 선』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책을 엄청 느리게 읽는 내가 이틀 정도 몰입해서 다 읽을 정도니 그 몰입감과 재미에 대해서는 더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서평을 부탁받은 만큼(그보다는 내가 정명섭 선생님의 책을 읽고 싶어서 ‘제발 서평단에 선정되게 해주세요’하는 기분으로 신청했지만), 이 소설을 읽을까 말까 고민 중인 사람들에 매력을 제대로 설명해야겠지.

개성공단.

주인공은 거기서 공장을 경영하는 외삼촌의 부탁으로, 자꾸만 없어지는 원자재와 재고 문제를 조사하러 간다. 그리고 조사 중 물건을 빼돌리던 유력한 용의자가 의문사한다.

남북한의 이해, 그 안에 들어선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개성공단은, 그 배경만으로도 읽는 사람을 바싹 긴장시킨다. 소설의 등장인물들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히 남한 대 북한, 혹은 통일과 민족, 전쟁과 평화라는 테마를 가운데 놓고 스테레오 타입의 인물들을 내세우는 다른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빨갱이 박멸을 부르짖던 남자는 개성공단의 사장이 되어 어느새 보수단체를 향해 욕설을 퍼붓고 있고, 자본주의 남조선을 경멸하던 남자는 남한의 드라마와 영화 명대사를 줄줄 읊고 다닌다. 개성공단이라는 특수한 공간 속에서 욕망하는 인간이라는 보편성을 바탕으로 입체적인 인물상을 자아낸다.

때문에 이 작품은 플롯의 반전도 반전이지만, 인물상을 통한 반전을 거듭한다는 것도 무척 재미있는 요소다. 굳이 비유하자면 <강철비>로 시작해서 <공작>으로 끝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자세한 이야기를 더 할 수는 없지만, 269페이지까지 정말 독자를 쉴 틈 없이 즐겁게 한다. 이 즐거움을 여러분도 함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책의 내용 말고도 좋은 게 있다면, 그건 책의 편집디자인. 책을 딱 펼쳤을 때 보이는 글자와 여백의 배치는, 예전에 읽던 시집 같아서 그리움을 자아내는 한편으로, 읽기에도 편하다. 누가 이렇게 하자고 했는지는 몰라도 정말 좋은 시도가 아닌가 싶다. 스토어하우스에서 펴내는 책이 모두 이런 식이라면 같은 SG시리즈의 소설들도 더 읽어보고 싶다.

신문로에서는 저절로 보이는 것들이 있다.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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