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전의 폭풍 - 로마 공화정 몰락의 서막
마이크 덩컨 지음, 이은주 옮김 / 교유서가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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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역사 소설인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를 낸 교유서가에서, 이번에는 로마 역사서를 냈다. 마이크 덩컨의 『폭풍 전의 폭풍』은 그라쿠스 형제의 등장부터 격화되는 로마 정치 권력의 다툼과, 술라의 집권과 죽음을 통한 마무리를 다루고 있다. 물론 그라쿠스 형제가 왜 개혁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배경과, 술라 사후 그가 남긴 영향들에 대한 평가도 다루고 있기에 책에 포함된 시대는 훨씬 넓지만, 일단은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부터 코르넬리우스 술라까지의 서술이 중심 기둥을 이루고 있다.

이는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의 시대 배경과 상당히 겹치기 때문에, 교유서가에서는 한 편으로는 소설을 소개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역사교양서로 소설에서 다루지 않은 측면들을 독자가 살펴보도록 배려한 듯하다. 추천사에는 이 책을 읽고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에 접근하라고 권하지만, 나는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의 1부인 『로마의 일인자』를 읽고 『폭풍 전의 폭풍』을 읽는 걸 권하고 싶다. 그렇게 하면 소설 속의 장면들을 머릿속에서 다시 그려볼 수도 있고, 소설에서는 과거의 인물로 그려지는 그라쿠스 형제나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의 자세한 사연들도 볼 수 있어, 소설의 향기를 더욱 깊게 느끼게 해 준다.

이른바 ‘통사’라고 해서 한 국가나 문화권의 역사 전체를 다루는 책도 좋아하지만, 이렇게 한정된 시대와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책도 좋아한다. 이 『폭풍 전의 폭풍』은 후자에 해당하는데, 『로마인 이야기』 같은 책에서는 다소 부족했던 로마의 어두운 측면들, 그리고 뿌리 깊은 사회적 갈등(『로마인 이야기』는 약자의 불만을 그냥 폭동으로 치부하거나, 사회적 갈등을 못본 척 넘어가려는 경향이 있다)을 자세히 읽을 수 있기에, 로마사 입문서보다는 어려운 책에 도전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내가 주목한 건 ‘모스 마이오룸’이라는 개념이다. 이는 로마 정치계에서 작용하는 도덕적 불문율이다. 이를테면 적이라 해도 신성한 장소에서는 죽이지 않는다든가, 연임을 제한하는 규정이 따로 없어도 공화국을 위해 스스로 권력을 더 탐하지 않는다든가 하는 것을 말한다.

로마가 도시국가에서 영토국가로, 더 나아가 지중해 제국으로 거듭나면서 사회적 모순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아직 도시국가이던 시절에는, 전쟁을 해도 로마시 주변에서 벌어지는 부족 간, 도시국가 간 전쟁이었기에, 시민들은 전쟁이 끝나면 얼마든지 다시 생활 터전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지배하는 영토국가로 성장하고, 또 다른 영토국가인 카르타고와 전쟁을 하면서 사정은 달라진다. 이제 시민들은 수년 이상을 전쟁터에서 보내야 한다. 그리고 돌아오면 생활 터전, 즉 경제 기반인 토지는 돌봐주는 손길이 없어 황폐해진 지 오래다. 이 틈을 귀족들이 노려, 헐값에 땅을 사들인다. 땅이 없어진 시민은 이제 푼돈을 들고 뭐라도 찾아서 로마시로 들어와, 도시 빈민으로 전락한다.

이러한 상황을 개혁하기 위해 그라쿠스 등 이른바 ‘민중파’ 정치인들이 나선다. 그런데 사회적 문제들은 ‘영토국가’를 넘어서 ‘제국’단위의 일이 된 지 오래인데, 이걸 개혁할 정치인들은 여전히 ‘도시국가’ 시절의 제도에 묶여 있다. 집정관의 임기도 1년, 호민관의 임기도 1년이다. 작은 도시 공동체에서는 문제를 해결하기에 별 어려움이 없는 재임 기간이지만, 교통도 통신도 발달하지 못한 고대 제국에서는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효과를 보기엔 턱없이 짧은 기간이었다. 현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5년, 미국 대통령이 4년에서 8년의 임기가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러하다.

이로 인해 민중파 정치인들은 반복적으로 ‘모스 마이오룸’을 어기기 시작한다. 법에는 연임 제한이 없지만, 도덕적으로는 연임하지 않는 게 옳다는 불문율이 널리 퍼진 로마 사회에서, 함부로 도덕적 가치를 훼손한 것이다. 반대파 역시 바보처럼 ‘모스 마이오룸’을 지키고 있을 이유는 없으니, 이제 너도나도 ‘모스 마이오룸’을 훼손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민중파와 그 반대파인 귀족파의 다툼은, 피비린내 나는 길거리 폭력, 암살, 더 나아가 내전으로 치닫게 된다.

책의 후반부 주인공인 술라는 이 문제를 제도로 보완한다. 내전과 뒤이은 잔혹한 학살 끝에 독재관으로 집권한 술라는, 연임 제한 기간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법을 세우고, 법의 빈틈을 활용해 야심을 채우려는 사람들을 막을 수 있도록 각종 제도를 정비한다. 하지만 그런 술라의 노력도, 술라가 죽고 난 후 그의 후계자들에 의해 무너진다. 마이크 덩컨은 술라 자신이 ‘모스 마이오룸’을 어긴 사람이었기에, 그런 제도적 조치들이 지속될 수 없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내 생각은 이렇다. 모스 마이오룸-즉 도덕적 불문율도 만능이 아니고, 제도도 만능이 아니다. 따라서 이 둘은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사회의 변화, 시대의 변화에 맞춰 제도는 끊임없이 정비되어야 하며, 그런 정비의 와중에 이해관계에 놓인 여러 세력들 사이에 모스 마이오룸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모스 마이오룸을 어긴 자는 철저히 그 대가를 치를 만한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로마 시민권의 확대다. 이 역시 로마가 도시국가에서 영토국가로 확대되는 과정과 관련이 있다. 로마인들은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해 지중해 제국으로 거듭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도시국가 시절의 관념에 얽매여 있었다. 그러니까 ‘로마 국가의 수도 로마시’라는 개념으로 이탈리아나 해외 식민지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었다. 이탈리아는 로마의 영토라기보다는 로마와 동맹(속국)관계를 맺고 있는 또 다른 여러 ‘도시’들이었고, 식민지 역시 ‘이탈리아를 영토로 하는 로마 국가’의 이익이 아니라 ‘로마 도시’의 소유물로 취급되었다. 이는 이탈리아 여러 도시국가, 부족들이 “우리도 로마 시민으로 인정해 달라! 참정권을 달라!”고 요구하면서 동맹시 전쟁이라는 내전으로 발전한다.

결국 로마가 요구를 수용하면서 모든 이탈리아인들이 로마 시민권을 획득하면서 이 문제는 마무리되는데, 나는 이것이 도시 로마가 영토국가 로마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즉 국가의 성장과 권리의 보편적 확대에 유의미한 관련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만약 로마가 끝까지 이탈리아인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저항했다면, 우리가 아는 로마 제국은 없었을 것이다. 아마 그저 그런 도시연맹체로 역사에서 일찌감치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로마는 권리의 확대와, 그에 따른 체제의 변화를 받아들였고, 그렇게 해서 살아남았다. 이러한 변신은 제정 도입, 크리스트교의 수용이나 8세기 수취체제의 변화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나는 로마가 1453년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이렇게 변화를 수용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이노우에 고이치가 『살아남은 로마, 비잔틴제국』에서도 지적했던 바다.

이 부분은 구입해 놓고 아직 읽지 않은 『로마 공화국과 이탈리아 도시』라는 책을 통해서 더 자세히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게 있는데, 211년 카라칼라 황제의 ‘제국 내 모든 자유민에게 시민권 부여’에 대한 것이다. 마이크 덩컨은 굉장히 냉소적으로 이를 평가하는데, 이탈리아인에게 시민권을 부여한 것과 달리 속주민에게 부여된 시민권은 그저 ‘하사된 것’이며, 이것을 요구하는 저항에 의한 것이 아니었고, 또 속주민은 면세 혜택이 있었으므로 시민권을 부여해 세금 수입을 확보하려는 시도였다는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시오노 나나미의 특성상 이쪽의 신뢰성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반대로 시민에게 면세 혜택이 있었기 때문에 카라칼라의 시민권 확대 조치 이후 로마 제국이 재정난에 허덕였다는 식으로 평한다. 도대체 둘 중 누가 맞는 말을 하는 건지, 설령 마이크 덩컨이 맞다고 해도, 카라칼라의 시민권 확대가 그렇게 일축할 만큼 의미 없는 사건인지,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또 더 알아보고 싶은 점은,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8세기 수취제도의 개혁이다. 로마는 행정기구가 세금을 거두는 게 아니라, 징세청부업체가 일을 받아서 대신 세금을 거둬주는 식으로 운영됐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징세청부업자들이 자기들 이익을 늘리려고 세금을 과도하게(국가에 원래 바쳐야 할 세금을 제하면 나머지는 자신들의 이익이 되므로) 매겼다는 것이다. 심하면 주민들을 노예로 팔아서까지 이익을 거뒀고, 이는 노예로 팔린 사람들의 노예 반란, 속주 반란으로 이어진다. 마이크 덩컨은 아우구스투스의 제정 확립 이후 황제들의 선의에 의해 해결됐다고 하지만, 나로서는 과연 그런가? 하고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이후 페르시아 제국의 침공이나 이슬람 제국의 침공에 속주들이 순식간에 제국을 떠나면서 제국이 위기를 맞이했고, 8세기에 이르러 제도를 개혁하고 나서야 비로소 9, 10세기의 중흥이 가능해졌던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마이크 덩컨이 고대 이후의 로마사, 즉 중세 로마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알지 못하니 어쩔 수 없지만, 언젠가는 자세히 알아보고 싶은 부분이다.

음, 그리고 제정에 대해서 ‘군주정’적 요소가 강화되었다고 한 부분 역시 의문이다. 최근의 이른바 ‘수정주의’측에서는 로마 제국이 중세 후기까지도 여전히 ‘공화정’적 요소를 담고 있었다고 보는데, 마이크 덩컨의 의견은 어떨까? 수정주의 측에서는, 황제들이 여전히 시민(여기서는 콘스탄티노플 시민들이겠지만)과 원로원의 의사를 중요하게 여겼으며, 또 로마의 실질적인 정치 주체로서 활동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도 언젠가 깊게 공부해보고 싶다.

교유서가에서 앤서니 칼델리스의 『비잔틴 공화국(The Byzantine Republic)』 같은 책이나, 중세 로마 시기를 다룬 소설을 번역, 출간해준다면 더욱 좋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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