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과의 산책
이지민 외 지음 / 레디셋고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세상의 모든 말이 그렇지만, 아침이란 말에는 여러 감정이 뒤섞여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하지만 대체로 우리는 아침이라 하면 ‘시작’을 떠올린다. 아침에 눈을 떠 창밖을 보고 생각한다. 오늘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오늘은 비가 올 것 같은데. 우리는 습관적으로, 자연스럽게 하루를 예감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침이란 어떤 일의 조짐이나 징후가 의심되고 예상되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아침의 대척에는 저녁이 있다. 저녁이 되면 낮 동안 떠 있던 해가 지고 어둠이 밀려온다. 침묵, 고요, 소멸과 같은 이미지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 저녁이다. 그러나 또한 저녁이란 또 다른 시작의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 저녁은 일반적인 마무리를 뜻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저녁에는 새롭게 달이 떠오르며 해가 떠 있을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드러난다. 저녁이란 이중적인 시간이다.

 


총 여덟 편의 단편을 ‘기이한 아침’ 과 ‘쓸쓸한 저녁’ 으로 나눈 이 책의 소제목을 주목해야 한다. 여덟 편의 단편들은 놀라운 상상력으로 삶의 단면에서 나타나는 어떤 조짐과 징후를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어째서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는지 조금은 알게 될 것이다. 책 안에 담긴 상상력에 굳이 다른 두 개의 이름을 붙인다면 ‘기이한 조짐’과 ‘쓸쓸한 시작’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달달해 보이는 표지를 보고 이 책을 집어든 당신의 예감은 쉽게 배반당할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에겐 무슨 일인가 일어났다. 그들이 느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조짐과 쓸쓸함이 당신 주변의 공기를 꽉 채울 것이다.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그들의 시선 안에서 당신은 놀랍게도 당신의 쓸쓸함을 위로받을 것이다. 예술가에게 중요한 것은 탁월한 세계관이 아니라 자기가 세계를 보는 방식을 탁월하게 드러내는 작업이라는 말을 상기한다면, 우리는 결국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게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문학을 읽는 일 또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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