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망 좋은 방 Mr. Know 세계문학 2
E. M. 포스터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전망望 
1. 넓고 먼 곳을 멀리 바라봄. 또는 멀리 내다보이는 경치.
2. 앞날을 헤아려 내다봄. 또는 내다보이는 장래의 상황
.





국도변을 달리다보면 간혹 이런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어쩐지 고루해보이기까지 하는 우중충한 색의 표지판을 믿어보기로 마음먹고 ’전망 좋은 곳’ 을 향하다보면,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이름을 붙이는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더러는 화를 내며 도로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도 볼 수 있는데, 그건 아마 그 사람들이 ’전망’’절경’ 으로 착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전망이 좋은 곳의 풍광이 아름다울 수는 있지만, 반드시 그렇다는 법은 없다. 전망이 좋다는 것은 말 그대로 멀리 잘 내다보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번번이 전망이란 말에 속아 넘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전망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그 이유가 전망의 두 번째 뜻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청년은 참 전망 있는 젊은이야.’ 라고 할때의 전망을 첫 번째의 뜻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때 전망 있다는 말은 장래가 촉망된다는 뜻이고, 다가올 앞으로의 시간이 우호적이고 희망적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전망이라는 말은 절경이라는 말을 포함할 수도 있는 것이다. ’전망 좋은 곳’ 이라는 표지판 앞에서 우리는 우호적인 앞으로의 시간을 희망한다. ’전망 좋은 곳’ 에서 우리가 실망하고 더러는 화를 내고 발걸음을 돌리는 것은 순전히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 때문일지 모른다. 


21세기의 한국처럼 20세기의 영국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겠다. 실제로 View(전망 좋은 방의 원제는 A Room with a View 다) 가 한글에서처럼 두 가지의 뜻으로 모두 쓰이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E. M. 포스터는 이 소설에서 전망을 앞서 말한 두 가지의 뜻으로 모두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의 제목인 ’전망 좋은 방’ 은 말 그대로 ’탁 트인 경치가 보이는 방’ 임과 동시에 ’우호적이고 희망적인 인생’ 이라는 비유적 표현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는 로맨스 소설이고, 탁 트인 경치가 보이는 방 때문에 모든 사건이 시작된다. 비유적인 표현처럼 우호적이고 희망적인 결말일지 혹은 그 비유적인 표현이 탁월한 반어법일지는 말할 수 없다. 어쨌거나 이 이야기의 제목은 무엇을 더하고 뺄 수 없을 만큼 완벽하고 아름다운 완결된 형태라는 생각이다.
 

『전망 좋은 방』은 보는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여러 장르로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소설이다. 하나는 겉으로 드러난 것처럼 로맨스 소설, 또 하나는 이면에 숨은 풍자 소설이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오히려 로맨스 쪽보다 풍자 쪽이 훨씬 풍부하고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결코 이 책의 기본 틀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다. 로맨스 쪽에서 이룬 이 책의 성취는 놀랍다. 하지만 나는 풍자 쪽이 더 마음에 드는 것일 뿐이다. 예컨대, 당대의 귀족 또는 부유한 가문들의 허례허식을 답답하리만치 장황하게 묘사하고, 사회적으로 대단히 고귀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귀족이나 목사)을 완고하고 모순적인 존재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그리 대단치도 않고 볼품없는 이들을 섬세하고 인간적이며 현명한 존재로 표현한 부분들이 그렇다. 


다만 시인들이 이걸 좀 말해 줬으면 좋겠어. 사랑은 몸에 속하는 일이라는 걸 말이야. 몸 자체는 아니지만, 몸에 속하는 일이라는 걸. 아! 우리가 그걸 인정한다면 얼마나 많은 이 세상의 고통이 줄어들까! 그런 작은 솔직함이 우리 영혼을 해방시킬 텐데! ...(후략)
                                 -『전망 좋은 방』, 294쪽.


이것은 어쩌면 이 로맨스의 시작, 고귀한 신분의 여자와 그렇지 않은 남자 사이에 싹튼 깊은 이해와 육체적 욕망에서부터 시작된 필연적인 결과일지도 모른다. 당대의 높으신 분들께서 겉으로는 혐오하고 회피했던, 그러나 실제론 그 누구보다 탐욕스럽게 취했던 ’육체적 욕망’ 을 E. M. 포스터는 더러운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욕구이며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고귀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의 입을 빌려 말한다. 사람이 숨을 쉬는 한 육체의 바깥으로는 나갈 수 없고, 그 육체 안에서 모든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동등하다는 인식. 따라서 모든 사랑 앞에 인간은 같다는 인식. 


이것은 아마 E. M. 포스터의 전망, 일 것이다. 이같은 인식이 이야기의 결말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여기서 말할 수 없다. 다만 나는 그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고만 운을 떼겠다. 우리에겐 어떤 식으로든 전망이 필요하므로. 영혼과 육체가 울리는 사랑은 우리의 땅에 나무와 꽃을 무성하게 피워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가장 높은 곳, 전망 좋은 곳으로 이끌기도 한다. 이를테면 이렇게. 


...네가 사랑을 느끼면 진실이란다...열정은 장님이 아냐. 열정이야말로 눈이 밝지. 네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여자는 네가 진실로 이해하게 될 유일한 사람이란다.
                                              - 같은 책, 2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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