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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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성호 감독의 2007년 작품 [은하해방전선] 의 한 장면. 영화감독인 주인공과 그가 만든 영화의 주연배우가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한다. 배우는 주인공에게 묻는다. 사람들이 질문하면 뭐라고 답변을 해야 하는지. 주인공은 핸드폰 문자로 이렇게 답한다. 별거 없어요 그냥 '소통' '인간' 그런 말만 하면 돼요. 그렇게 시작되는 관객과의 대화에서 우리의 주연배우는 사람들의 질문에 이런 식으로 답한다.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소통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상대 연기자와의 소통을 중요시…현대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의 소통…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소통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마지막엔 결국 자기 자신도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은하해방전선] 에서 이 장면은 우스우면서 신랄했다. 실제로 소통은 우리에게 지난한 일이 되었고, 누구나 완전한 소통을 꿈꾸기 때문에. 그가 웃을 때, 우리도 따라서 웃게 되지만 지나고 나면 찝찝한 무엇이 남았다. 


2. 이 영화를 다시 보는 동안 아무도 내게 문자 하지 않았다.


3. 이 책을 읽으며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작가가 생각하는 여행과 내가 생각하는 여행이 비슷할 수도 있겠다고. 나는 사진이 절반을 차지하는 여행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종종 여행을 위한 책인지 책을 위한 여행인지 헷갈리게 한다.(본문 13쪽) 겨우 13쪽을 읽고나서 한 속단일수도 있겠지만, 이런 문장을 보면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여행은 과시하기 위한 방편이 되어선 좋을게 없다는 게 내 솔직한 생각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을 따라잡기에 책이라는 것은 좀 무리지 싶다. 그것은 인터넷이 충분히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도 여행책이 쏟아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무도 여행책에서 발빠르게 정보를 찾으려는 생각따윈 하지 않는다. 여행책의 아이덴티티란 여기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자기를 들여다보는 일. 거기서 과시와 발전은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다. 


4. 그런 말이 있더랬다. 인생은 여행이다,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 죽음에는 누구나 혼자일 수밖에 없다, 같은 말. 나는 전적으로 그 말들을 신뢰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영혼까지 이해하거나 완전한 소통을 할 수 없다. 단지 노력만이 있을 뿐이다. 말과 글이 미끄러지듯, 사람과 사람은 언제나 미끄러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산다는 것은 오해로 점철된 세계를 산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정말로 이상하고 이상한 일은, 그 오해들 속에서 우리는 기쁨과 슬픔과 행복과 만족과 실패감과 소외같은 모든 감정을 맛본다는 것이다. 


5. 당신과 나 사이엔 오해만이 있을 뿐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아무도 내게 싸이월드 방명록을 써주지 않았다. 


6. 이 책의 호흡은 짧고 격하다. 문득 맥박, 이란 말이 떠오른다. 평상 시 사람의 맥박은 60에서 80 사이다. 격한 운동 시 사람의 최고 맥박은 120에서 180 사이다. 이 책에서 장은진 작가는 최고 맥박으로 달리고 있다. 이 책은 152장이다. 


7. 그렇게 숨가쁘게 달리는데도 나는 이 책이 참 쓸쓸해 보인다. 그래, 그러고 보면 달리기도 결국 혼자일수밖에 없는 운동이다. 달리기는 살을 뺄 때도 하지만, 답답할 때도 하고, 고독할 때도 하는 것이다. 도시에서 사람들은 모두 강변을 따라 달린다. 가끔 나도 그 안에 속할 때가 있지만, 그들을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면, 멀어지는 그 뒷모습이 여간 쓸쓸하지 않다. 어쩐지 그녀의 달리기를 보게 된 것만 같다. 


8. 여전히 아무도 내게 편지하지 않고, 나는 가끔 달리는 사람들을 보거나 간혹 그 사람들처럼 뛴다. 열 번에 한 번쯤 그녀의 달리기를 생각한다. 격한 운동으로 최고 맥박이 긴 시간 유지되면 사람은 죽는다고 어느 책에서 본 기억이 난다. 그러다 어느날 해가 지는 다리 위에서 고개를 옆으로 돌렸을 때, 그녀가 옆에 있을 것만 같다. 희미하게 입가에만 미소를 머금고 있을 것만 같다. 나는 살짝 웃어주고 다시 다리 밑으로 시선을 돌릴 것이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엔 또 오해가 만들어질 것이다.


9. 아무도 내게 편지하지 않았으나, 나는 편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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