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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이후 - 새 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
김대호 지음 / 한걸음더 / 2009년 8월
평점 :
2009년은 슬픈 해로 기억될 것 같다.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2월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했고, 9월 오늘 배우 장진영 씨마저 눈을 감았다. 죽음에 높고 낮음이 있을리 만무하지만 우리를 뒤흔든 커다란 죽음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우리를 도저히 이전처럼 살 수 없게 만든 단 하나의 죽음이 있었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서거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는 사회적 차원을 넘어서 의식적인 차원까지 파급되었다. 진실을 알지 못한 무지, 알고도 외면했던 잔혹한 무관심, 혹은 비난. 인간 노무현은 그렇게 마지막까지 올곧았고, 우리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남김과 동시에 작은 불씨를 떨어뜨렸다. 2009년 5월은 눈을 뜬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잊혀지지 않을 시간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날 이후로 촉발된 많은 담론들, 어떤 것은 급진적이거나 폭력적이기도 하고, 어떤 것은 온건하거나 무관심에 가깝기도 한 말들은, '그날 이후' 를 온통 지배하고 있다.
광복 이래, 대한민국 정부를 향한 국민들의 감정이 이렇게 하나로 거대하게 뭉쳤던 적은 없었다. 그것은 혐오, 다. 그 어떤 언론플레이를 통해서도 감출 수 없는 진실, 국민들은 지금의 이명박 정부에 단 한줌의 신뢰도 가지지 않는다. 그 같은 감정의 근원은 인간다움, 에 있다. 한 개인을 극단적인 상황까지 몰고 간 비인간적인 집단을 용서할 수가 없는 것이다. 너도나도 그날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국회에서 벌어지는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한다. 당장 폭발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민심은 극단적인 위치에까지 와 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벼랑 끝에 서 있을 때 사람은 한 번 더 생각이란 것을 해봐야 한다. 과연 노무현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인가. 증오인가 용서인가. 우리는 노무현에 대해 도를 지나친 미안함과 그리움으로 '그날 이후' 를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과연 나는 대한민국에 대해 얼마나 알고 그런 감정을 품어왔던 것일까. 인간으로서의 도리, 윤리적인 감정으로서 노무현을 추억하는 일을 그만두자는 말, 아니다. 너도나도 목청이 터져라 부르짖기 전에, 우리가 디디고 있는 바닥을 한 번 살펴보자는 말이다. 우리는 제대로 탄탄한 땅을 밟고 있는가. 나는 이 책이 우리를 드넓은 벌판으로 인도할 목동이라고 생각한다.
추모와 애정에 눈이 멀어 비판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마찬가지로 추모와 애정에 눈이 멀어 무조건적인 비판에만 열을 올려서도 안 된다. 전자는 참여정부, 후자는 지금의 정부를 말함이다. 『노무현 이후』에서 가장 흥미롭고 독보적인 부분은 바로 참여정부를 비판하는 부분이다. 저자는 부채의식으로서 노무현을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대통령 노무현을 곧게 바라본다. 그 비판의 본질도 수긍할만한 철학을 품고 있다. 의도적이건, 그렇지 않건 묻혀 질수도 있었던 담론들을 이 책은 끄집어낸다.
수많은 장점을 꼽을 수 있는 이 책의 백미는 단연 뒤통수를 저릿하게 만드는 촌철살인의 문장이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비교 설명하면서 '국가대표팀은 그런대로 선전하지만 대표팀에 미래의 선수를 공급할 유소년 및 청소년 팀은 점점 피폐해져 가' 노라는 부분이나, 참여정부의 비전 2030과 뉴민주당 선언에 대해 언급하면서 '극복할 대상을 너무 낮은 수준으로 잡으면 거의 모든 것이 긍정된다' 고 말하는 것이 그렇다. 이는 그 중에서도 추린 예에 불과하다. 딱딱한 내용일거라 오해하게 만들고 싶진 않지만, 이 책은 촌철살인의 문장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내 흥미진진하다.
332쪽의 이 책 중 가장 힘들게 읽히는 부분은 바로 첫 번째 장이다. [대한민국 바로 보기] 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 장은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안 읽히는 부분이다. 시작하자마자, 첫 번째장이 어렵게 읽히니 지레 겁을 먹을 수도 있다.
나를 제대로 아는 것은 정말로 힘들다, 는 말을 종종 들어봤을 것이다. 첫 번째 장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바로 보는 일이 이토록 힘들 줄은 몰랐다고. 결코 숫자나 통계에 약해서 엄살을 피우며 하는 말이 아니다. '나' 를 '바로 보기' 란 참으로 난망한 일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우리에게 남긴 숙제는 바로, 우리를 바로 보는 것, 이었다.
『노무현 이후』를 다 읽고 나면 노무현은 맑은 거울이었다, 고 말하고 싶어질 것이다.
당신이 2009년을 살았던 대한민국 국민이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