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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2 ㅣ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2
박경철 외 지음 / 리더스북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
나, 이렇게 허술하게 살아도 돼?
라디오의 주파수에 몸을 맡긴 채 맥주를 홀짝이던 어느 새벽이었다. 고등학생이 보낸 짧은 문자 사연은 수능을 얼마 앞두고 있다고, 인생의 찬란한 순간을 위해 이렇게 밤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아득해졌다. 찬란한 순간을 얼마나 꿈꿔보았는가. 대학 정규 과정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을 해보겠다고 강행한 1년의 휴학이었다. 1년은 벌써 채 반도 남지 않았고, 나는 무엇을 했는가. 나중으로 미뤄버린 시간보다 가치있는 것을 찾아 얼마나 헤매어 보았는가.
낭만적인 밤은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다.
바보같은 짓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나.
지금 이 순간에도 친구들은 목표를 위해 붉게 충혈된 눈을 비비고 있을텐데, 무사태평하고 안일하게 시간을 허비한 것 같았다. 오래전에 썼던 낙서를 찾아 보았다. 새해다짐과 같은 내용이었다.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고, 무엇도 하고, 또 무엇도 하고...참 많은 목표가 적혀있었다. 그럴듯한 이유도 있었다. 눈을 넓히고, 손을 높이고, 발을 키우고...말은 참 번지르했다. 의도한 대로 살 수 있는 삶을 꿈꿨던 것은 같은데 그만큼 내가 열망하고, 결단하고, 행동했는지 의심스러웠다.
스스로 나락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만큼 강한 의지를 가지지 못했기에 우울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내겐 더 이상 출구도, 답도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명상을 하자니 나 자신이 더욱 한심스러워질 것 같았다. 영양가없이 바쁜 날이 지속되었다. 이것도 저것도 하지 못한 채 기운만 빠져갔다.
실패한 돈키호테. 외로웠다, 는 말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누구와도 같이 걸을 수 없는 좁은 길이었다. 그토록 높은 곳을, 그토록 어울리지 않는 것을 꿈꿨던가, 싶었다. 누구라도 좋으니 내게 무슨 말이라도 해줬으면, 바랐다. 산초 판사가 거들었다.
네 뜻은 알았으니 이제 그만하는게 어떻겠어?
그 말이 따뜻한 위로로 들렸다. 왈칵 눈물이 나오려했다.
나를 구한 건 하나의 메뉴얼이었다. 디지털 카메라의 사용설명서.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던 그것이 왜 눈에 띄었는지, 평소라면 고개를 돌렸을 그것을 왜 펼쳤는지, 모를 일이었다. 사용설명서는 슬펐다. 그토록 슬픈 사용설명서는 본 일이 없었다. 메뉴의 의미를 알고자 하는 경우, 메뉴의 조작방법을 모른다, 카메라 점검 및 수리를 의뢰하려고 하는 경우, 같은 말들이 어쩜 그리도 슬프던지. 200여 페이지나 되는 카메라 사용설명서의 마지막 장까지 읽었을 때, 먼 하늘에서는 동이 터오고 있었다.
200여 페이지나 되는 사용설명서는 말하고 있었다. 단지 카메라 하나를 사용하기
위해서도 이렇게 복잡한 설명이 필요해. 그런데 넌 그 카메라를, 설명서에 나온대로 쓸 수 있잖아. 너의 어디가 허술하니? 너의 어디가?
그동안 인생 단 한 권의 책을 꼽으라는 질문을 참 난감해했다. 그럴때면 유식한 척, 잘 알려지지 않은 명작들을 말하곤 했었다. 외국작가들의 혀 꼬이는 이름은 참으로 그럴듯하게 들렸으니까. 그런데 이젠 일부러 혀를 꼴 필요가 없어졌다. 좀 우스워보일지 몰라도 사용설명서, 라 말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2.
몇 세대를 지나도 변하지 않는 상징이 있다. 그것이 귀하건, 흔하건을 가리지 않고
책은 지식과 올바른 인격에 비견되는 상징으로 공고하다. 오래전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책을 읽는 사람이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 곁에는 늘 책이 있어왔다. 성공과 행복은 동일한 말이 아니지만, 책은 성공의 조건도, 행복의 조건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을 읽게 된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었다.
한 권의 책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일, 분명 있겠지만 나는 그것을 원치 않는다는 권기태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어떤 책들이 나를 뒤흔들어주길 바라면서도, 읽고 난 뒤에 그 전까지의 삶을 살 수 없도록 만드는 책은 세상에 없길 바란다. 나는 나이고 싶기 때문이다. 책이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바뀌려고 하는 사람이 책을 찾아내는 것이다.
지금에서 뭔가 바뀌길 원하는 당신, 밤낮을 헤매는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공병호, 김영세, 박경철, 이지성, 조성기... 듣기만 해도 가슴이 벅찬 이름들. 대한민국 각 분야에서 최전선을 달리는 이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각자 그들을 만든 책을 옆구리에 한 권씩 끼고서.
이 대열의 끝, 당신이 들고 있을 책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