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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비키 마이런.브렛 위터 지음, 배유정 옮김 / 갤리온 / 2009년 2월
평점 :
- 배려깊은 동물을 만나본 일이 있습니까?
오래전 일이다. 사랑하는, 지금은 과거형이 되었지만, 반쪽이라 여겼던 사람과 여행을 떠난적이 있었다. 바다 한 가운데, 뱃길로 한 시간 반이 걸리고, 민가는 11가구 뿐이며, 0.33㎦밖에 되지 않아 20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고, 거기서 30분을 더 걸으면 반대편의 등대를 만질 수 있는, 그곳을 가는 '길' 은 하루에 두 번밖에 열리지 않지만, 바다가 쩍 갈라지는 모세의 기적을 볼 수 있는, 그림같은 섬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거짓말처럼 아름다운 섬이었다. 그녀와 나는 섬의 온 구석구석과 사랑에 빠졌다.
좁은 섬을 종횡무진한 뒤에 짐을 푼 민박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너무 흥겨웠던 탓일까. 내 옆에서 걷던 그녀는 발을 접질렀고, 내가 미처 손쓸 틈도 없이 그녀는 넘어졌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그녀는 고통스러워했다. 나는 당황하면 공황상태에 빠지는 버릇이 있다. 어쩔 줄 모르고 허둥대는 나와 주저앉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 사이로 달려온 것은 하얀 털이 복슬복슬한 개였다. 민박집에서 기르는 사모예드 종의 새하얀 썰매견이었다. 한 마리도 아닌 두 마리나 달려와서 그녀의 주변을 맴돌았다. 녀석들은 단순한 호기심에 달려온 것이 아니었다. 어디 상처가 난 곳은 없는지, 혹시나 피가 흐르진 않는지, 크게 놀라진 않았는지 꼼꼼히 살피러 뛰어온 것이었다. 녀석들은 그녀의 발목을 조심스럽게 건드리며 상태를 체크했고, 코를 킁킁거리며 잘못된 곳이 있는지 살폈으며, 혀로 손을 간지럽히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녀석들은 침착했다. 자기들이 해야할 일을 분명하게 알고 있는 듯했다.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둘 중 한 녀석이 내 손을
핥았을 때였다.
그 순간, 녀석들의 눈빛에 담겨 있던 것은 '배려' 였다.
내 평생 그런 눈을 가진 개는 본 적이 없었다.
녀석들의 이름은 누리와 써니였다.
임신 중이었던, 출산을 위해 조용한 섬으로 요양차 온 로즈라는 이름을 가진 녀석도 그랬다.
"가만히 두면 상관없는데예, 억지로 쓰다듬으려고 하지 마세요. 임신 중이라 예민해요."
경상도 억양의 주인 아주머니께서 주의를 주셨다. 나는 개를 좋아했지만 겁이 많은 남자였고, 그녀는 개를 무서워하는 여자였다. 그런 경고가 없었어도 제 발을 놀려 개에게 다가가진 않았을 터였다.
먼저 걸음을 옮긴 건 로즈였다. 누리와 써니에게 이야기를 들었던 것일까. 만질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하다던 로즈가 그녀에게만큼은 예외였다. 태어나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새끼를 품고 있는 개가, 당연한 듯 손을 허락한단 소린 들어본 일이 없다.
그건 배려였다. 다친 사람을 놀래키지 않으려는 배려.
우리는 머무는 동안, 주인 아주머니가 놀랄 정도로 로즈와 아주 가깝게 지냈다.
앞으로 살면서 그 섬과 누리와 써니와 로즈의 눈빛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듀이는 바로 그런 고양이였다.
미국의 한 가운데, 아이오와 주의 작은마을 스펜서에 '배려' 와 '사랑' 을 나누어 준 고양이.
듀이는 생후 8주만에 도서관의 책 반납함에 버려진 고양이였고, 저자인 비키 마이런은 그런 듀이를 가장 먼저 발견하고 듀이의 생 19년 동안 영혼을 공유했던 도서관 직원이었다.
듀이가 도서관 안에서 생활한 최초의 고양이는 아니다. 단순히 도서관에서 생활한 이력때문에 듀이가 유명해진 것은 아니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누리와 써니와 로즈만큼 듀이는 '배려' 의 눈빛을 지닌 고양이였던 것이다. 도서관의 낯선 방문객들을 경계하거나 할퀴거나 물기는커녕, 그들의 무릎 위로 먼저 뛰어오르고 손길을 허락하고 반갑게 알은 체를 하는 고양이. 그것을 제 일과로, 임무로 삼은 고양이가 바로 듀이였다. 고지식한 마을의 원로들을 한 발 물러서게 만든 고양이가 듀이였고, 어린 아이들을 조심스럽게 마치 자기가 엄마라도 되는 양 보살폈던 고양이가 듀이였으며,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웃게 하고 희망을 북돋워 준 고양이가 듀이였다.
자신을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순간의 감정을 온전히 느끼게 해 준 고양이가 바로, 듀이였다. 듀이의 진심은 스펜서에서 아이오와로, 아이오와에서 미국 전역으로, 미국에서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듀이는 사랑의 전도사였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듀이는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꾼 고양이였다.
그는 비키 마이런이었다.
이 책,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듀이] 는 사실 듀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비키 마이런의 이야기라고 부르는 편이 맞을 듯싶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책에는 으레 그렇듯, 많은 사진과 짤막한 메모같은 글을 바라는 것 같다. 그것이 꼭 우리의 잘못은 아니다. 너무 많은 책들이 그렇게 출간되어 나오다보니, 그렇지 않은 책이 이상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의 본문엔 사진이 없다. 하지만 삶과 사랑이 있다.
'정말로 듀이를 사랑했던 영혼의 동반자 비키 마이런의 회고록' 이란 말로는 다 요약할 수 없는 것들이 책 속에 있다. 그것은 눈부신 햇살에 반짝, 하고 빛나는 투명한 구슬처럼 또르르 책 사이를 굴러다닌다.
구슬을 집어 눈 앞에 갖다놓으니, 보인다.
듀이는 특별한 녀석이었다. 아니, 듀이는 평범한 고양이였다.
듀이를 특별하게 만든 것은 듀이를 특별하게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듀이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 혹시 내가 특별해 보이나요? 그럼 그건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당신이 있기 때문이예요.
듀이가 19년의 생을 통해 온 몸으로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