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먹다 - 제1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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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생각이 트이고 나서, 항상 글을 쓰고 싶어했다. 
내 이름 석 자가 인쇄된 책을 가지고 싶었고, 그 책의 종이 냄새를 맡아보길 원했다.

"글로 빌어먹다간 굶어죽기 십상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안정적인 삶을 원한다. 하지만 내 내면에는 실패에 대한 동경이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다. 양립할 수 없는, 이기적인 우유부단함.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문학 동아리에 가입했다. 가입 이유의 80%는 선배들 때문이었다. 내게는 너무 과분하다고 여겨질만큼의 훌륭하고 따뜻하고 엄한 선배들이 있었고, 그 그늘에 안착하고 싶었다. 선배들을 졸졸 쫓아다니면서 밥을 사달라, 술을 사달라 짹짹거렸다. 선배들은 군말없이 나를 밥집이고 술집이고 데리고 다니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내게 꺼내주었다. 
그 시절, 나는 참 호사스러웠다. 
시간이 지나 선배들은 졸업을 하고, 내가 그 선배들의 자리를 차지할때쯤. 나는 그곳을 등지고 나와버렸다. 만약 내가 여기서 중언부언하면 그 모든 말은 핑계에 불과할 것이다. 
나는, 그 선배들처럼 할, 자신이 없었다.

어줍잖은 문학의 그늘에서 벗어나 홀로 되었을 때, 나를 툭툭 건드려 준 작가가 두 명이 있었다. 하나는 김영하 작가, 하나는 바로 [달을 먹다] 의 김진규 작가였다. 나는 언젠가 이 두 작가가 했던 말을 지표삼아 어리석은 꿈을 키웠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항상 어떻게하면 소설을 실패시킬 수 있을까 고민한다' 던 김영하 작가의 말.
'한 방울만 더 얹으면 바로 터질 것 같은 위태로움, 표면장력의 끝을 느꼈기' 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던 김진규 작가의 말. 
그렇기에 [달을 먹다] 에 대한 모든 종류의 언급을 하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거창하게 시작하면서 뱀의 꼬리처럼 끝을 맺을까 지금도 걱정이 태산이다. 

[달을 먹다] 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김진규 작가가 했던 말은 유용하다. 
위태로움.
달을 먹다는 이해와 오해 사이를 줄타기 하는 아슬아슬한 위태로움의 이야기다. 
(이해와 오해에 대한 이야기는 책 말미 수상작가 인터뷰에서 작가가 직접 말했다.)

그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서로에게 꽃이 되고 싶었다.
그리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놓인 바다의 거리는 쉬이 좁혀지지 않았다.
그건 애초에 좁혀질 수도 없고, 좁혀져서는 안되는 거리. 다 아는 것을 그들만 몰랐다.
결국 눈먼 그들에게 찾아온 것은 매질과 광기였다.
이건 그 시대를 비롯해, 지금 시대에도 유유히 살아남아 잇몸을 드러낸 채 웃는 숙명이자 업보다. 그것은 언제까지, 해가 한번도 뜨지 않는 북극의 겨울 눈밭 위에서 썰매를 끌까. 결국 갈라진 빙하의 틈새로 떨어지는 건 썰매를 끌던 그들이리라.

처음 [달을 먹다] 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의문은 장이 거듭될수록 당혹이 된다. 도무지 이야기의 맥을 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야 좀 알겠다 싶으면 야속하게도 장이 훌쩍 넘어가버린다. 그렇게 몇 번의 장을 넘기고 나면 왜 이런 서술 방식을 택했는지, 인물들 간의 관계가 어떻게 된 것인지 간단한 밑그림이 그려진다. 
그리고 그 즈음에 소설은 끝난다. 마치 무언가를 숨기려는 듯. 
[달을 먹다] 는 꼭 두 번 이상 읽어야 할 책이다. 

얼마전 다른 책의 리뷰에 그런 말을 썼다. 
사랑은 우리의 삶을 가장 조용하게 뒤바꾸는 혁명이라고.
이별은 우리의 삶을 가장 격렬하게 뒤집는 태풍이라고.
그리고 이 이별은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세상은 온통 사랑뿐이라고.
거기에 한 구절을 더 추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숨기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추악한 면이나 사악함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허전함이다, 라고.

[달을 먹다] 에 등장하는 무수한 인물들을 결국 사랑으로 함의된다.
한 번 모인 후에는 뿔뿔이 흩어지고, 흩어진 이후에는 분열되며 해체된다. 
그들의 손에는 파란 장미뿐이다.
앞으로도 그들이 빨간 장미를 쥐는 일은 없으리라.
책을 덮고 나는 
그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사랑이,
당신 앞에 가로놓인 캄캄한 오솔길의 한줌 빛이 되기를.
한겨울의, 따뜻하진 않지만 그저 한 장 더 걸칠 수 있는, 누더기라도 되기를.
금방 녹아 없어지더라도 잠깐의 위안이 될 수 있는 한여름의 얼음조각이라도 되기를.
제발, 그러했기를...

나는 끝끝내 이 책에 대한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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