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 2008년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백영옥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책은 가방같다.
둘 다 만든 사람이 누군지를 따진다. 
둘 다 들고 다닐 때 쪽팔리지 않는 것이 잘 팔린다.
둘 다 소위 베스트셀러라는 것이 있다.
둘 다 (무게가) 가벼운 것들이 선호되지만 절대적이진 않다.
둘 다 그 하나로 사람을 달라보이게 만든다.

단지 [스타일]을 한 번 읽고, 표지를 본 연후에, 생각나는대로 적어봤다. 그런데 쓰고보니 그럴싸하다. 유난히 표지에서 빨간 가방이 눈에 들어왔고, 소설의 주인공이 패션지 기자라는 사실이 떠올랐으며, 책이 날렵하게 (무게가) 가볍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자꾸 ’가볍다’ 란 말 앞에 ’무게가’ 란 말을 괄호로 담아두고 있는데 그건 일부러 그런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자꾸 그런 말을 하기 때문이다.

- 책이 너무 유치하지 않아요? 무슨 트렌디한 드라마 대본같아. 
유치하단 말과 트렌디하단 말이 유의어였던가?
- 재미있긴한데...소설을 읽었다기보다 팬픽같은 걸 읽은 느낌이야.
그러니까 재미있는 ’소설’이란 건 뭘 말하는걸까? 
- 가벼워. 내용도 그렇고 문체도 그렇고.
아, 그러니까 이게 너무 속물적이란 말씀?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이 바라는 소설은 성서쯤을 말하는건가 싶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또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왜 그렇게 확대 해석을 하냐고. 우리가 말하는 소설은 그런 걸 뜻하는 게 아니라고. 뭔가 둔중하게 울리는 메세지가 있어야 하고, 뛰어난 문체가 전제되어야 하고...많은 조건들을 말하시리라 본다. 
무조건 그 말들을 틀렸다고 부정할 생각은 없다. 세상에 ’틀린’ 말이 어디 있겠는가.
단지 ’다른’ 말들이 있을 뿐이지. 그래서 내가 지금 해야할 말은 그 말들을 향한 공격이 아니라, 그 말들과는 조금 다른 말들이다. 이분법은 근대의 산물이다. 여기 이 책은 현대의 것으로 근대를 탈피하여 현대의 새로운 이분법을 종식시키려는 시도다. 

오히려 이 책에는 재기발랄하고 새로운 문체와 내용이 가득하다. 

다시 4. 19라는 숫자가 깜박인다.
문득 자신은 운동권이라고 얘기하던 선배에게 어느 신입생이 했다는 말이 떠올랐다.
"어느 헬스클럽 다니세요? 거기 트레이너는 어때요?"
(중략)
체 게바라의 혁명 정신도 스타벅스의 카페라떼처럼 테이크 아웃할 수 있다고 믿는 이 시대에 혁명이란 몸 사이즈가 66에서 44로 줄어들거나, 키가 160에서 170으로 늘어나는 일뿐이다.

                                                                -『스타일』, 12-13쪽.

’오늘의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은 내일의 빚’
일주일에 5일씩 스타벅스 커피를 30년 간 마시게 되면, 은행에 잔고 대신 엄청난 빚이 쌓일 거란 얘기이다. 만약 커피 대신 그 돈을 저금한다면 우리 돈으로 5천 5백만 원 정도의 돈을 모을 수 있다. 복리로 계산해서 그렇다
(중략)
게다가 입맛이 고급인 이 바닥 인간들은 평범한 카페라떼 같은 걸로 절대 만족하지 않는다.
더블 샷 에스프레소!
화이트 초코 프라푸치노! 더블!
난 샷 추가!

                                                              - 같은 책, 65쪽.

사실 데이트하면서 자기 밥값도 내지 않는 형편없는 인간이란 말은 엄밀히 말해 남자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여자들이 데이트에 나가기 위해 쓰는 비용과 노력, 시간을 생각한다면 남자들은 생각 없이 그런 얘기를 하지는 않을 거다. 만약 아니라고 우기는 남자가 있다면 왁싱으로 온몸의 털을 뽑아버리거나, 15센티미터짜리 하이힐을 신겨서 서울의 청계천 광장 보도블록 위를 딱 2시간만 걷게 하고 싶다. 결국 아무리 우겨대도 내 말이 맞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 같은 책, 95쪽.

대충 이 정도로만 끝내야겠다. 이러다가는 책 한 권을 통째로 리뷰에 올려버릴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이 책에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심리를 대변하는 문장들이 차고 넘친다. 이 태도들이 보편적이라는 건 아니다. 안그런 여자도 많으니까. 
하지만 생각해보면 많은 소설들이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진 않다. 오히려 작고, 비일상적인 속에서 보편적인 감정과 윤리를 끌어낸다. 그렇게보면 이 책도 마찬가지다.된장녀를 대변하는 소설이라고도 하던데, 어쩌면 그 또한 허영의 다른 발로를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아까도 말했듯이 이 책은 현대의 것으로 현대의 새로운 이분법을 종식시키려는 시도와 희망이다. 작가는 이것을 화해라는 말로 대신했다. 또한 성장소설이라는 말도 썼다. 
서른한 살 먹은 여자의 성장기! 
그런 말도 있었더랬다. 발달된 현대 문명은 인간의 유아적 행태를 오래도록 유지하게 만든다고. 그 말을 입맛에 맞게 조리하면, 우리의 유아기-성장기는 점점 길어지고 있다는 말일거다. 

[스타일] 이 정확히 짚어낸 이 지점. 이 지점의 이 이야기. 
그것이 다른 원고들을 제치고 세계문학상을 거머쥔 이유가 아닐까.
문학이 지루하고, 자기들끼리의 놀이고, 꼬장꼬장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강추! 한다. 슥 읽고 오래도록 느껴보시길. [스타일] 의 또 다른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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