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백민석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문학이 있고 평론이 있다.
둘의 관계는 20년쯤 된 부부같다. 죽이네 살리네 해도 결국 함께 사는 부부다.
이 둘 사이와는 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자기 영역을 일구고 있는 농부가 있다. 
독자 리뷰다.
수많은 블로거들이 저마다의 시각으로 책을 읽고, 제 나름대로의 이야기를 펼치는 리뷰다.

리뷰는 여러 열매로 맺혀진다. 
책의 상품성에 주목한 리뷰가 있는가 하면, 작가의 의도에 근거해 쓰여진 평론같은 리뷰도 있다. 독서감상문 같은 리뷰가 있기도 하고, 책 자체를 요약한 리뷰도 있다. 그리고 아예 하나의 독자적 양식을 가진, 그 자체로 문학성을 가지는 리뷰도 있다.사과, 감, 배가 모두 다른 모양이듯이 나, 너, 어떤이, 누구의 리뷰도 모두 다른 모양이다.

인터넷에는 전문적인 리뷰어들도 있다. ’전문적인’ 이라는 말을 붙이기에 미흡하기도, 모호하기도 하지만 그 방대한 양이나 행간을 다루는 솜씨를 보면 그러고 싶어진다. 이것을 문제삼고 싶은 것은 아니다. 진짜 문제는 독자, 익명의 블로거들로부터 시작된다. 책보다 리뷰를 먼저 접한 독자가 나중에 정작 본 문학 작품을 읽었을 때,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리뷰에서 말한 것만 못하네.

리뷰는 실제한 작품을 근거로 작성된 것이지만, 대체로 리뷰어 개인의 이미지에 의존한 파생된, 가상이다. 이 가상이 역으로 실제를 위협하고 그 자리를 대체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권력의 전복이 일어난다.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 에서 지적되었던 현대 사회의 기호화는 바로 이 책,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에서 백민석에 의해 문학적으로 형상화 된다. 
아이고, 길었다. 결국은 이 말이 하고 싶은 것을.

육체가 기호화 되면서 소비의 대상이 된다는 논리. 육체의 건강함이 부유함, 여유, 웰빙과 같은 상징, 즉 기호가 되면서 사람들은 그 기호를 획득하기 위해 돈을 쓰고, 기업은 광고에 건강한 육체를 전시함으로써 기호를 생산하고 정착시킨다.
점차 기호와 기호 사이를 유령처럼 배회하게 되는 우리들.
백민석은 여기서 유령을 말한다.

그 졸린 목에서 새어나오는 가냘픈 비명소리 같은 노랫말을 들었다.
...나는 서너 발짝 앞에서 네 노랫말을 듣지 못하네, 그건 아마 우리 둘 중 누군가 죽었기 때문...
(중략)
무슨 일인가 내게 벌어진 것이다.

                                     -『장원의 심부름꾼 소년』, 「구름들의 정류장」162쪽.

우리는 그렇게 산다.
그냥 그렇게 산다. 딱히 잘 사는 것도 아니면서 못 사는 것도 아닌, 이도저도, 
여기저기를 갈팡질팡하는 삶을, 대부분, 산다. 그건 넘치는 것도 궁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똑같다.
너의 하루나, 나의 하루나, 어떤 이의 하루나, 누구의 하루나, 
똑같다. 마치 그렇게 살지 않으면 누가 벌이라도 준다고 윽박지른 것처럼.
시체 같은 삶이다.

그 삶에 유령과 시체들의 노래가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 노래는 어쩌면 진짜 죽음의 노래일 수도 있다. 단번에 내 일상을 전복시키는 노래.
그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보통의 기호일까, 틀을 깨라는 새로운 기호일까.

나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았다. 늦은 저녁이긴 했지만 계절 탓에 아직 완전히 어둡진 않았다. 형태를 분간하기 어려운 어떤 구름 덩어리들이 하늘에, 내 이마 위에 떠 있었다. 나는 낮게 깔리는, 그리고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너는 서너 발짝 앞에서 내 노랫말을 듣지 못하네...그건 아마 우리 둘 중 
누군가 죽었기 때문...단순히 오전이 오후로 오후가 오전으로 행진하듯...

                                      - 같은 책, 175쪽.

나는 유령과 시체들의 노래를 부른다. 
내가 유령이자 시체가 된 것일까. 전복은 또 일어난다.

누군가 애인을 부르며 검게 그을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누군가 구두의 먼지를 털며 부러진 다리를 건들거리고 있었고, 누군가 시계를 들여다보며 터진 머리를 주억거리고 있었다. 누군가 코를 풀자 휴지가 빨갛게 물들었고, 누군가 호주머니에서 다른 누군가의 손목을 끄집어내고 있었다. 누군가 온몸에 불을 붙이곤 아주 늦어버렸다는 듯이 버스를 향해 뛰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그들 모두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 같은 책, 175쪽.

우리는 전부 유령이자 시체다.
커다란 덫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유령과 시체가 되는 일인지,
바깥을 덫으로 여기고 빠져나가지 않는 것이 유령과 시체가 되는 일인지.
서로는 서로에게 유령이고 시체다.

나는
네스티요나 2집의 리뷰를 끌고 들어올 걸, 이라고 생각한다.
다행스럽게도 이 글을 쓰면서 그 노래들을 듣고 있다.
등 뒤에 노래를 부르느라 길게 뽑은 목을 한, 흰자위가 강조된 눈을 한 아이가 있다.
입을 달싹하지 않는데도 노랫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 노래 가사를 이미 알고 있다.
나는 시체다.
(어디로 가야할 지를 알것도 같다, 는 말을 추가하려다가 삭제한다.)


(+) 
괄호 안의 내용은 한유주 작가의 「허구 0」이라는 작품의 작법을 인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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