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아파트 - 바보, 문제는 아파트야! 우리 시대의 위험한 문화코드 읽기
허의도 지음 / 플래닛미디어 / 2008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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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고, 머리아픈 내용이 이어질 지 모릅니다. 혹시나 복잡한 것을 싫어하시는 분들이라면 마우스를 스크롤 하셔서 현실 1.책 1. 만 보셔도 무방합니다.


사례 1.
2008년 2월 10일 국보 1호 숭례문이 화재를 당한 후 붕괴됐다.
불길을 잡았다고 판단한 초기 진압 때까지는 활주로에 손쉽게 착륙하는 비행기 같았다.
부분 개보수만으로도 복원 가능한 수준의 피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방관들이 화재 단서를 찾고 있는 와중에 불은 천장 안에서 소리도 형태도 없이 번졌다. 연기 사이를 뚫고 터져나온 불길은 순식간에 숭례문을 휩싸고 말았다. 
진압 불능.
600년 목조 건축물은 잘 마른 장작으로 타올라 끝내 주저앉았다.

총체적 사전 관리 시스템이 부실했던 것은 물론이고, 국보 1호라는 부담감으로 인한 화재 진압의 어려움, 내부 구조를 모른 데 따른 서툰 대응 등 문제점을 거론할라 치면 끝이 없다. 어디 그뿐인가? 불이 잡히고 난 뒤 들려오는 얘기조차 모두 부실 투성이였다.

이 사례는 우리나라의 경제구조를 은연중에 암시하는 지독한 예이기도 하다.

사례 2.
2007년 미국에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가 터졌다. 이 금융 위기에 세계는휘청했다. 이 위기가 실물 경제로 이어질 경우, 대공황에 버금가는 혼란이 생긴다는 공포스러운 예측까지 나돌았다. 
잠시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해서 설명 하자면,
모기지론(Mortgage loan)은 우리말로 주택(아파트)담보대출 을 뜻한다.
대출을 할 때 필요한 것은 돈을 빌리는 사람의 신용이다. 대체로 신용등급은 세 단계로 분류하는데, 신용이 좋은 사람은 프라임(Prime), 보통인 사람은 알트에이(Alternative-A), 낮은 사람은 서브프라임(Sub-prime) 으로 나뉜다.

금융기관은 항상 돈을 굴릴 곳이 마땅치 않아 고민을 하게 되는데, 그러다보니 높은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 대출 상품을 만들게 된다. 금융회사들이 신용도가 보통 이하인 사람들에게 집을 담보로 대출 하면서 부동산 시장이 후끈 달아올랐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집값이 그대로 유지만 된다면서 서로에게 위험이 없는데, 부동산 시장이 급락하면서 원금 상환이 순조롭지 못하게 되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이자율은 오르고 집값은 떨어지면 금융회사는 급한 마음에 대출자의 집을 차압에 들어가게된다. 그러나 차압을 하고 나서도 문제는 여전히 산재하는데, 차압한 집이 팔려야 현금이 유통될 것 아닌가? 그러나 집값이 우후죽순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구매자 입장에서는 당장 집을 사려고 하지 않는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차압한 집은 늘어만가고, 금융회사는 현금이 들어오지 않으니 당연히 자금난에 시달릴 수밖에.

이것이 바로 미국에서 터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의 요약본이다. 

우리나라는 이 일을 남의 일처럼 팔짱을 끼고 바라보고 있었는데, 금융이 주택담보대출에 과도하게 치우쳐 있는 우리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

사례 3.
1960년대.
’잘 살아보세’ 열풍이 불었던 시절, 많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몰려들었다. 그러면서 당연하게 불거진 것은 주택문제. 당시에 사람들은 빈 자리만 있으면 그곳에 판자로 집을 짓고 무허가로 살았다. 그것을 알고 있던 정부는 ’잘 살기’ 위한 첫 번째 사업으로 집을 택했다. 

최초의 아파트는 해프닝이었다. 
1962년 대한주택공사가 서울 마포에 처음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지었을 때, 보일러가 인체에 해롭다느니 하는 소문으로 주택공사는 보일러를 가동한 방에 실험용 쥐를 재우는 쇼로 안전성을 입증하는 일이 있었다. 정부는 관료와 유명 문필가를 동원해 신문에 ’문화주택 거주 체험기’ 같은 글을 실으며 아파트 예찬론을 폈다. 그것도 모자라 정부는 마포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영화까지 제작하게 했다. 사람들은 장독을 묻을 수 없고, 공동생활이 불편하며, 수세식 변기에 신문지를 집어넣고 물이 내려가지 않는다며 불평을 해댔다. 

그런 아파트에 날개를 달아준 건 바로 ’돈’ , 투기 바람 이었다. 
1968년에 동부 이촌동 공무원 아파트 단지, 1970년에 최신식 한강맨션아파트 단지 등이 들어서면서 부유층이 아파트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부유층이 아파트에서 본 것은 ’차별성’ 이었다. 서민들과 구별지을 수 있는 무언가를 아파트에서 찾았던 것이다. 여기에 여의도 윤중제 건설, 강남에 이전된 주요 시설들, 경부고속도로의 개통이 이어지면서 서울의 땅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현실 1.
중동에서 노동자들이 벌어온 외화는 아파트로 들어갔다. 
청와대와 상공부장관이 이에 합세하고,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이 토지를 매점하고, 서울시장이 땅값 빨리 올라라 깃발을 흔들고, 시민들이 동참해서 땅값 올리기에 매진했다는 사실은 우리를 씁쓸하게 만든다. 

아파트를 논하면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것을 논하는 셈이 된다는 말.
이런 초라한 콘텐츠와 철학이 부재한 문화가 대한민국의 전부라니...좀 슬프다.
그런 아파트를 모더니즘의 아이콘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국민들.
불행한 일이다. 

아줌마들은 반상회에 모여 앉아서 얼마 이하로 집을 파는 가구를 왕따시키고, 단지 근처에 자리한 부동산 중개소에 압력을 넣기도 하며 스스로 자기들의 몸값을 높이는 데 열중하고, 아파트 값을 잡겠다고 하면 어느 쪽 표는 무더기로 빠져 나가고, 재개발로 지역의 가치를 높이겠다고 하면 표가 무더기로 쌓이며, 집의 소유자와 거주자가 일치하는 경우는 20%도 되지 않으며, 만 12세의 학생이 집주인이고, 그에 따라 투기 거품은 자꾸자꾸 커지기만 하는 현실.

그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책 1.
딱딱한 리뷰에 비하면 책은 한결 가벼운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담고 있는 내용까지 가볍지는 않다. 
저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 의식은 무겁다 못해 버거울 정도다. 

이와 관련한 배경지식이 전무한 사람이 읽어도 후반부에 가서는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만드는 구성이 매력적이다. 그것은 같은 내용을 적당히 반복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새로운 곁가지를 끌어들이는 저자의 필력의 공일 것이다. 

그런데 하나 조심하셔야 할 부분이 있다.
스스로를 속칭 노빠라고 여기시는 분들, 참여정부의 성과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시는 분, 현 정부의 정책에 진절머리를 내시는 분, 그에 따라 전 정부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해서 보시는 분들은 이 책이 불편할 수도 있다.

정말 신랄하게 전 정부의 토지정책을 비판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 ’이 사람 이거 MB측 사람 아니야?’ 라는 의문을 가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것이 이 책은 자체가 워낙 비판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또한 출판일이 2008년 7월인데도, 이명박 정부의 폐해를 전혀 지적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조금 변명을 해주자면,
일단, 현 정부의 잘잘못을 논하기에 책을 쓴 시기가 너무 이르다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그렇다고 내가 불만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누구보다 이 정부를 비판할 준비가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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