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식탁 - 진화론의 후예들이 펼치는 생생한 지성의 만찬
장대익 지음 / 김영사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머니는 말하셨다. 
- 편식하지 말고 골고루 먹어라.

우리는 끼니만 편식하는 것이 아니라 책도 편식하고, 사람도 편식하고...여러가지를 편식한다.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짓고 거기에 매달려 아둥바둥 하는 게 우리의 본 모습이라면 좀 심한 말일까? 

우리의 일상적인 삶도 그렇지만 학문의 영역에 있어서도 비슷한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학문의 특징이 그럴지도 모르겠다. 한 영역에 줄기차게 매달려야지만 달콤한 과실을 맛볼 수 있으니까. 학문이란 것은 어설픈 태도로는 한 방울의 과즙도 떨어뜨리길 거부한다. 
그런 의미에서 [다윈의 식탁]은 온갖 달콤한 과일이 먹기 좋게 손질되어, 숨쉴 틈 없이 나오는 코스 요리같은 책이다. 하, 이거 배가 부르면서도 계속해서 먹고 싶게 만들어지는 메뉴들이다. 

사람마다 많은 독서 스타일이 있다. 나 같은 경우는 책의 겉표지를 꼼꼼히 읽는 편이다.
앞표지도 읽고 뒤로 넘겨서 뒷표지도 꼼꼼하게 본다. 그런데 뒷면에 눈에 띄는 말이 있다.
상상불허, 흥미만점의 가상 논쟁으로 진화론이 한층 더 맛있어진다!
으잉? 가상 논쟁? 
다시 책을 앞으로 돌려 후루룩 책을 넘기며 훑어보니,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와서 서로 임의의 편을 만들어 토론을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인 리처드 도킨스나 촘스키도 보이고 스티븐 핑커도 있고...막 그렇다. 
자, 주의할 점은 바로 여기. 
이 세계적인 석학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는 것은 그야말로 일대의 사건이다.
게다가 그들이 각자의 분야를 가지고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유려하게, 서로의 입장에 공감도 했다가, 반대도 하면서 격렬한 논쟁을 했다는 사실은 금세기 최고의 이슈다.

음...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그런 뉴스를 접해본 적이 없다.
우리가 세상 돌아가는 일에 너무 무지해서? 에이, 아니다. 그건 이 책이 가상 논쟁이기 때문이다. 아까 책을 읽는 스타일에 대해서 잠깐 언급을 했었다. 그걸 다시 써먹자면, 나처럼 책을 겉표지부터 면밀히 따지는 스타일이 아니라, 곧바로 책의 본문을 향해 달려나가는 스타일이라면 뒤늦게 불유쾌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시작은 짐짓 그럴듯한 상황에서 출발한다. 

다윈 이래로 현대의 가장 중요한 이론들을 창안한 당대 최고이자 전설적인 진화생물학자 해밀턴의 장례식을 배경으로, 전 세계의 석학들이 모일 수 있는 자리임을 넌지시 알린다. 거기에 참석한 이름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것이 저자의 상상이라는 사실을 주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깜빡 속아 넘어갈 정도로 책은 꼼꼼하게 구성되어 있으므로. 
저자가 신문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서 책으로 엮은 것이 [다윈의 식탁] 인데, 당시 신문에 연재될 당시에도 많은 국내의 석학들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하니, 더 말해 무엇하랴.

혹, 이 사실을 모르고 읽었다가 늦게서야 화를 낼 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미리 말씀드린다.
그래도, 아주 흥미롭지 않았습니까? 읽는 동안은 만족할 만한 책 읽기였죠? 

이와 아주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시도의 책이 있었다.
[위험한 생각들] 이라는 책이 그것인데, 세계의 석학 110명의 의견을 한 권으로 엮은 기획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다윈의 식탁] 에서 토론의 한 축을 담당했던 리처드 도킨스가 해제를 하고, 역시 [다윈의 식탁]에서 도킨스 측 토론자로 나왔던 스티븐 핑커가 서문을 썼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다윈의 식탁]에서 또 다른 토론의 한 축인 굴드나 굴드 측 토론자들은 이 책에서 생각보다 적게 등장한다는 점은 흥미롭다.

그러나 [위험한 생각들] 에 비해 [다윈의 식탁] 은 훨씬 전문적이고 비유적이며 쉽다. 
가끔 전문적인 용어가 나와서 좌절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대체로 이 책에 나오는 석학들은 친절하다. 

다윈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터.
그 호기심이면 [다윈의 식탁] 을 읽어야 하는 동기는 충분하다.
당신이 이 책을 손에 쥔다면 세계적인 파티에 초대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당신은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하면 된다. 
그러다보면 현대 진화론에 대한 당신의 이해는 10년도 더 성숙해 질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우리는 편식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웃긴 건 거장이 되려면 도가 지나친 편식이 받쳐줘야 하나보다.
부모님의 말씀을 지지리도 안 들었을 것 같은  이 편식쟁이들이 무슨 반찬에 대해 말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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