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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놀기 - 나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
강미영 지음, 천혜정 사진 / 비아북 / 2008년 11월
평점 :
2008년, 아니, 이제 2009년을 말해도 될 것 같다.
2009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스스로에게 너무 인색하다.
공부의 스트레스, 직장의 스트레스, 과음으로 인한 스트레스. 우리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나는 그렇지 않아’, ’나는 그 정도를 스트레스라고 생각하지 않아’ 라면서 희망차게 말한다.
그러나 그건 모르시는 말씀.
눈을 뜨는 순간부터 우리는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일어날까, 일어나지 말까.
중요한 것은 바로 이거다.
우리는 실제로, 우리가 스트레스라고 생각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스스로를 얼마나 스트레스 속에 방치한 채로 살아 왔는가?
세수를 할때면 손끝에 느껴지는 푸석푸석한 피부, 머리를 감을때면 으레 빠지는 줄 알고 방치하는 한 덩어리의 머리카락, 점점 진해져서 며칠 뒤면 얼굴 전체를 덮어버릴 것 같은 다크서클.
어느날 문득,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지, 내가 도대체 뭘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든다면.
혹은, 나에겐 왜 이렇게 여유가 없지, 나는 왜 이렇게 시간이 없는거야, 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도저도 아니라, 그저 주말에는 잠만 자면서 자기에겐 늘 여유가 없다고 불평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서 이 책을 손에 넣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 그 시간마저 없다고 하시는 분들을 위해 인터넷 서점도 있다는 것을 말씀 드려야겠다.
우리는 어릴 때, 놀이를 통해 많은 것들을 배웠다.
잘 놀던 아이들은 대체로 성격도 밝았고 성적도 좋았다.
공부를 잘 하던 놈이 잘 놀았던 게 아니라, 잘 놀던 놈이 공부를 잘 했던 거다.
정신과 상담에서도 이런 특징은 뚜렷이 나타난다.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고통받는 사람들은 대체로 잘 놀지 못하는 사람의 유형이라는 특징을 보이는 반면,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은 대개 잘 노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잘 노는 것은 좋은 직장이나 좋은 배우자, 좋은 차나 좋은 집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우리 삶의 요소라는 인식을 해야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다.
우리는 노는 것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갖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왔기 때문이다.
놀면 뒤쳐진다, 공부해라, 일해라, 놀면 그만큼 너의 수입은 줄어든다, 무한경쟁 사회에서 이기고 살아남으려면 너의 휴가를 반납할 각오로 일해라, 공부해라, 한 문제로 너의 직장과 배우자가 바뀐다...
성장을 목표로 했던 산업화 시대의 부정적인 사고는 결국 우리를 정신병이라는 구덩이 속으로 빠뜨렸다.
얼마나 불편하고, 답답한가. 게다가 ’혼자 놀기’ 라고?
우리나라의 1인 가구가 330만을 넘어섰다고 한다.
외자녀 가정은 갈수록 늘어만 가고, 독신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도 날로 늘어만 가니, 1인 가구는 앞으로도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 삶은 이럴진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문화라!
저자는 이 앞선 모든 것들을 종합해서 혼자 놀기라는 테마로 책을 엮었다.
까페에서 혼자 놀기, 여관에서 혼자 놀기, 왼손을 써보기...
어쩐지 뻔한 것 같은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점차 깊은 곳을 파고 든다.
날카로운 송곳으로 가슴에 탁 구멍을 뚫어놓고 그 안에다가 커다란 잉크병을 왈칵 들이 붓는다. 고전을 인용한 문구 탓도 있을테고, 간간이 시적인 문장 탓도 있을테고, 무엇보다 감성적인 사진의 탓이기도 할테다.
’혼자 놀기’라는 자칫 명징해 보이는 말을 숨쉬게 만들어 준 것은 이 모든 것들의 공이기도
하거니와, 나의 자리 찾기 라는 분명한 주제 의식의 공이기도 하다.
[혼자 놀기]는 혼자 노는 방법을 나열한 지침서가 아니다.
혹시나 내가 가지고 있을지 모르는 구시대적인 패러다임을 전환하라는 완곡한 그림 시집이다.
조용하고 작은 까페에서, 커피향을 맡으며 창가에 앉아 나른한 햇살을 등지고 읽는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집에서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읽어도 좋다.
조금 욕심내서 속옷만 걸친 채라면 아주 환상적일 것 같다.
이건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나에게 선물을 줄 수 있는 삶을 사는 것.
중요하다.
우린, 그만한 존재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