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원성 글, 사진 / 이레 / 2002년 6월
평점 :
절판


1.
나의 어머니는 여행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계신다.

평생 일만 해오신, 어렸을 때는 맏딸로, 결혼해서는 아내로, 자식을 낳고는 어머니로, 당신은 손이 부르트고 칼로 베어낸 것 마냥 발꿈치가 갈라지는 고통을 참아오셨다.
그렇게 어머니의 50년은 지나갔다.

어머니는 배움에 대한 갈증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다. 학창시절, 공부보다는 미술이나 음악같은 예술의 방향으로 더 두각을 나타내셨지만 학교다니는 것 자체를 즐거워하셨던 어머니는 딸이라는 이유로, 그 시대의 많은 여성들이 그러했듯이 타의에 의해 학교를 그만둬야만 했다. 당시로서는 모자람 없이, 꽤나 잘 사는 축에 속했던 나의 외가는 어머니를 일에 묶어버렸다.

어머니는 색에 대한 감각, 서예, 악기 연주, 노래까지 지금도 그 재능을 간직하고 계신다.
사는 일에 치여 그것 사이사이에 낀 녹을 제거하셔야 되겠지만 말이다.
얼마전에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집 근처에 대학교 있잖아, 거기에 평생교육원 신청하면 배우고 싶은 거 배울 수 있대."
어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싫다고 하셨다. 혼자서 하기에는 무섭고 겁이 나신다는 게 이유다. 당시에는 그렇게 어물쩍 넘어갔지만 나는 여전히 어머니가 배움을 소망한다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책을 좋아하신다. 두껍고 글씨가 많은 책은 겁을 내시지만, 여행과 관련된 책이라면 OK를 외치신다. 어머니는 여행, 더 나아가 인도여행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계신다. 그것은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이란 책을 읽고 나서부터 였던 것 같다. 어머니에게 ’지금까지 본 책 중에 어떤 책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라고 물으면, ’류시화가 쓴 책 있잖냐,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이라고.’ 라고 매번 똑같이 대답하신다.
어머니가 꼽는 인생의 책은 바로 ’여행+인도’ 인 셈이다.

2.
원성 스님의 이 책은 한 발 더 나아가서, ’어머니+여행+인도’ 다.
아들을 출가시키고 뒤이어 자신도 출가하신 원성 스님의 어머니, 금강 스님.
인도에 가는 것이 하나의 소원이었다고 말하는 환갑이 넘은 작아진 어머니를 보며 이 여행을 마음 먹었다는 원성 스님의 말은 슬펐다.

여행을 가기로 한 새벽.
들고 가기 벅찰 정도로 바리바리 싸여진 어머니의 짐을 본 원성 스님은 말문이 막힌다.
쌀, 김, 깻잎, 고추장, 된장, 배추김치, 깍두기, 총각김치, 갓김치에 전기 밥통까지 목록에 있는 것을 보고 정리를 하자고 하는 원성 스님의 눈치를 보면서, 어머니 금강 스님은 한국 음식으로 밥을 지어 공양을 올리고, 인도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이렇게 준비 했다는 말을 하신다. 
밤새 짐을 싸놓고 고심하고 걱정하셨을 어머니의 마음이 가슴을 아릿하게 만든다.
"아주 좋은 생각이에요."
원성 스님이 어머니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인도 거리 한 복판에 선 어머니의 뒷모습.

여기까지 정확히, 내가 넘긴 페이지는 20.
나는 한 순간에 이 책을 모두 읽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불교의 연기, 공, 무아. 자비와 자애의 마음.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뚫리는 느낌이랄까.

3.
그 이후로 나는 어머니께 책 선물을 종종 해드렸다. 물론 여행과 관련된 것으로.
어머니에게만 하기엔 불효 자식같아 아버지께도 해드렸다. 택배가 도착하는 날, 어머니와 아버지는 상기된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하셨다. 값비싼 옷을 해드린 것도, 맛있는 음식을 사 드린 것도, 해외 여행을 보내드린 것도 아닌데 너무도 기뻐 하신다. 심지어는 곳곳에 자랑도 하신다. 우리 아들은 책도 선물하는 아이라고. 그럴때면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부모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마음 한켠이 먹먹해진다.

집에서 나와 산 지 벌써 5년이나 되었다. 
멀리 떨어진 곳이라 일 년에 다섯 번을 채 못간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그 동안, 그리고 앞으로도 못볼 아들의 얼굴을 보려고 밤늦도록 아들과 술을 마신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가 살더니 벌써 5년이다. 앞으로도 집에 들어올 일은 없지않겠니.
아마 그럴 것이다. 더 이상은 내가 집에 들어가게 될 일이 없으리라.
앞을 아는 것은 그래서 때로 슬프다. 

어릴때는 어색하게만 여겨지던 부모님과의 동행이 즐거워 지는 것은 
슬픈 일일까, 기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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