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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평점 :
분말 미립자.
나는 김애란 작가의 단편을 읽으면 이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과학과는 전혀, 일말의 관련도 없는(이라고 단정짓기는 좀 무식하지만) 그녀의 단편에서 왜 이런 단어를 떠올리게 되는걸까.
분말 미립자라는 말에서 ’말미’ 라는 억지 의미를 끌어내거나, ’미자’ 라는 촌스러운 이름을 연상해서는 아니다. 생각해보면 분말 미립자라는 말의 뜻도 모르는 내가 이 말을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조차 의심스럽지만, 분명한 것은 분말 미립자라는 말이 내게는 전혀 학술적인 용어로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마 처음에 들었을 때도 그랬을테고, 지금도 그렇다. 오히려 뭔가, 말랑말랑한 것이고, 얼마의 비밀을 숨기고 있으며, 가끔 우울해지기도 하는 작은 생명체를 떠올리게 한달까.
그건 분말 미립자라는 말 속에 담겨 있는 ’ㄴㅁㄹ’같은 울림소리들의 공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애란의 소설은 비음같다. 울림소리들의 어울림 같은 단편.
그것은 여성과 방이라는 미묘한 것들을 접목시킨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2.
그녀의 소설이 배경이 되는 대도시. 서울. 혹은 수도권의 어디.
천만명. 이 나라 인구의 4분의 1을 품고 있는 도시.
그 많은 사람들은 밤이 되면 모두 어느 방을 향해 가는 것일까.
Home sweet home.
그럴까?
3.
뚝뚝 묻어나는 교집합에의 욕구, 그리고 동시에 내 공간에의 욕구.
비루하지만, 이율배반적이지만 분명한 욕구.
4.
우리가 생을 다해 얻어내는 것은 단 한 줌의 안온을 느낄 수 있는 방이 아닐까.
하지만 자궁과 요람, 방, 그리고 종내는 오그라든 한 몸이 누일 수 있는 공간만이 우리에게 남는 것이고 있었던 것이 아닌지, 심지어는 그 공간마저 허용되지 않고 단지 하나 속에 머물게 되는 것이 결국 우리의 자리가 아닌지.
물론, 김애란 작가가 그 정도까지 우울하게는 말하지 않는다. 그녀는 젊고, 활기차며, 에너지가 넘치는 작가다. 하지만 그 내면에 담고 있는 불안의 깊이를 매도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녀의 깊이는 남다르다. 「칼자국」에서 보여주던 나의 자오선의 끄트머리쯤. 「기도」의 의도적인 회피.
5.
예전에 씨네21에서 매주 그녀의 글을 읽었던 적이 있다.
그녀는 영화를 매력적으로 볼 줄 알았다. 지독하진 않지만, 숙명과도 같아 보이는 외로움이 그녀의 글에서 묻어났다.
하지만, 그래, 그녀에겐 낭만이 숨겨져 있었다.
6.
나는 그녀의 진짜 정체가 ’우주 멀리 날아가는 운석’ 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문자는 보내지 않겠’ 지만, 그녀는 ’빛만 확인한 뒤 문을 닫겠’ 지만, 그녀의 마지막 메세지는 ’안녕’ 이겠지만 말이다.
나는 그 ’안녕’ 이 이별의 안녕보다는 만남의 안녕이라고 믿고 싶다.
세상에 그녀만큼 아프고 외로운 이야기와 희극적이고 아름다우면서 투명한 이야기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는 작가는 아직 없다.
그녀의 소설은 정말 여자같다.
소녀에서 여자가 되는 그 사이 어딘가.
정말, 사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