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2008년을 기억할 것이다. 물론 굳이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2008년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한 번쯤 기억될 만한 해임이 분명하다. 그해로 말할 것 같으면ㅡ우선 경제를 살리겠다고 호언장담한 분께서 대통령이 되고, 50%라는 초유의 지지율을 얻고 당선하신 그분은 취임 100일만에 지지율 10%라는 초유의 위업을 달성하심은 물론, BBK인지 뭔지 동영상에 버젓이 ’임’의 육성이 있는데도 무죄를 때린 검찰이 충격을 준 해였다. 그러다보니 자기들도 버젓이 있기가 민망했는지 멀쩡한 국민들의 눈과 귀를 틀어막으려 각종 방송국을 장악한 것도, 전대미문의 연예인 자살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국보 1호였던 숭례문이 홀라당 타고, 금강산에서 관광객이 피격되는 사고에, 중국은 자기들이 소외될까봐 성화봉송 주자를 다굴치고, 그것도 모자라서 멜라민으로 자기들의 존재를 널리 퍼뜨리고, 일본도 이에 질세라 다케시마는 니혼땅을 외친것도 바로 그 해의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사다난한 한 해였던 것이다.

아, 이런, 끝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세계 경제는 침체일로에 빠져있는데 대통령께서는 컴퓨터도 사용하실줄 모른데다, ’읍니다’ 타령까지 구성지게 해댔고, 인수위원장을 하시던 어떤 분께서는 전 국민을 상대로 오렌지를 ’아륀지’라며 사기를 쳤고, 성화봉송 주자를 후드려팼던 중국에서는 베이징 올림픽이 열렸고, 거기서 우리나라가 전대미문의 성적을 낸 것도 바로 그 해였다.

어디 그뿐이랴.

미친소때문이라기 보다는 어이없는 정부때문에 전국민이 초를 들고 거리로 나섰고, 때마침 국회의원들은 집회장을 의기양양하게 방문해 이상한 분위기를 조장하려다가 다굴을 맞고 조용히 돌아갔고, 집회는 과거와는 달리 축제의 장이 되었고, 경찰은 거기에 물대포를 뿌렸고, 대통령께서는 미국산 쇠고기 만찬을 즐겼으며, 그 와중에 시민들은 물대포를 맞으며 비누를 달라고 외쳤다.

오, 여기서 끝나면 좋으련만.

우리나라의 부패지수가 세계 64위에서 72위로 하락하고, 대통령께서는 6박 7일의 첫 순방을 미국과 일본으로 가셨고, OECD 국가 중 과학기술역량이 12위로 나타났고, 엄청난 경제위기 속에서 수출이 사상 처음으로 4천억달러를 돌파했고,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그것을 축하하는 기념행사가 열렸고, 세계에서 다섯번 째로 길다는 인천대교가 연결되고, 그 공사가 3조원인지 30조원인지의 경제 효과를 낳거나 말거나, 여전히 관심받기 좋아하는 중국의 성장률에 따라 우리의 성장률도 쓰리고이거나 반토막이고, 정부는 간만에 쓴소리 하는 다음의 아고라의 누군가의 입을 막아버렸고, 전국 각지에선 교사들이 제자들에게 뺨을 맞고, 그러거나 말거나 청년 실업률은 여전히 늘기만 했다.


그 와중에도 박지성 선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100경기 출장이라는 대업을 달성했고, 박주영 선수는 AS모나코를 A/S하러 갔으며, 이영표 선수는 31세의 나이에도 꾸준한 기량을 선보이며 팀의 주전자리를 꿰차고 있고, 31세나 되는 아기 아빠의 별명이 언제까지 초롱이냐는 불만도 불만이지만, 설기현 선수는 너무나도 기복이 심해서 걱정이고, 김두현 선수는 부상이 큰 악재였던 것 같아 안타깝고, 이상은 EPL의 소식이지만, 우리에겐 아직 김연아 선수에, 박태환 선수에, 이용대 선수에, 장미란 선수에, 신지애 선수에...너무도 많은 운동 선수들의 활약이 남아 있다. 

더욱 황당한 건, 아직 절반도 채 2008년을 설명하지 못했다는 것과 이게 겨우 프롤로그라는 것이다. 나 원, 참.

프롤로그 끝.
그리고 벌써,
동네축구단 창단.

동네축구, 일명 뻥축구는 꼭 시작이 거창해야 한다. 
시작에 앞서 일단 유니폼은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만 한다. 

경기는 일단 누가 하늘 높이 공을 차 올리면 시작이고, 먼저 열 골을 넣는 팀이 승리할 것 같지만, 일단 열 골을 넣으면 다시 다섯 골을 더 넣어야 하고, 다섯 골을 넣으면 다시 세 골을 더 넣어야 하며, 그 세 골마저 넣고도 골든골을 넣어야지만 경기는 끝이 난다.

뭐 딱히 룰은 없으며 전반과 후반을 통틀어 경기 시간은 들쭉날쭉해서, 30분일 때도 있고, 3시간일 때도 있다가, 해가 져야만 끝나기도 한다. 일단 공이 뜨면 상대편과 우리편의 구분이 무색해지며 피아의 구분마저 사라져 버리기 일쑤여야 한다. 모든 사람들은 공 가는데라면 뻘밭과 풀밭과 자갈밭과 개똥밭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가리지 않고 뛰어가고, 그렇게 뛰다보면 자신이 어째 상대편을 어시스트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야만 한다. 

감독이 있을리는 만무하거니와 특별한 교체타임이랄 것도 없어서, 결국엔 모든 교체선수까지 경기를 뛰기 시작하고, 그러다보니 다들 일단 뛰기는 뛰는데 정작 공을 만져본 사람은 없기 마련이다. 그렇게 뛰어도 이상하게 각 팀의 밸런스는 깨지지 않는데, 체력이 약한순으로 알아서 작전타임을 가지기 때문이다. 
물론, 축구에는 작전 타임이라는 게 없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제 나름대로의 만족한 경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경기를 뛴 모든 선수들은 유대가 더욱 돈독해지며, 누가 이겼건 심지어는 상대편과도 돈독해진다. 

그것은 정말 심사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운동이다.
하지만 이건 말이지, 그야말로 제일 처음 축구가 생겨나던 시절의 생각을 복원하는 그 자체로의 축구이다. 이분법이 존재하지 않는, 
생겨나던 바로 그 순간의 완전한 축구. 
이건 세상의 복원이자 최초로의 복구이다. 


간다, 플레이 볼!
뻥.
재구성된 지구의 맑고 푸른 하늘을 지나
공이 날아간다.
이 두근거림 앞에서
어떻게 할 지 알고 있는 당신. 자,

플레이 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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