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굽는 타자기 -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
폴 오스터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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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런 소설이 다 있나 싶었다. 이건 소설도 아니고, 자서전도 아니여.

폴 오스터는 부제를 이렇게 달았다.
’젊은 날 닥치는 대로 글쓰기’ 라고. 실제로 그렇다. 

나는 항상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대학교를 다니는 그저 그런 학생일 뿐이다. 
지금까지 초․중․고등학교를 나오면서 제대로 된 글을 써봤다거나, 제대로 된 상을 받아본 일 없는 그저 그런 학생일 뿐이었다.

다만, 특이한 점을 꼽으라면 책의 냄새를 좋아하는 정도였달까. 
나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책읽기를 좋아했다면 지금보다 나은 상황에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이 아니라 책의 냄새를 좋아했던 것뿐이었다. 부모님께서는 당신들께서 이루지 못한 학업의 꿈을 자식들에게 투영해서 해소하려고 하셨다. 부모님의 계획에서 책은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고, 
나의 유년기는 풍족한 책이 항상 함께였다.

나는 책을 읽는 것 못지않게, 책의 냄새를 좋아했다. 그것은 십 수 년이 지난 지금도 확실하게 기억할 수 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책을 장난감 삼아 놀기 시작한 나는, 자라면서 책을 친구처럼 여기게 되었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는 동안, 동생과 나는 집에 있는 책을 모조리 꺼내서 
방안에 성을 쌓는 놀이를 즐겼다. 우리는 집에 있는 모든 종이와 책을 동원해 가장 튼튼한 성벽을 쌓았고, 그 안에서 우리는 영주와 같은 지위를 누렸다.

책을 쌓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책을 쌓고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성벽 안에서 잠이 들곤 했다. 나는 책 속에서 항상 안온함을 느꼈다. 

나는 그 이후로 대한민국의 수험생이 되었다. 
수행평가와 시험, 내신과 수능에 울고 웃었다. 
내게 더 이상 책은 친구가 아니었다. 오히려 나를 괴롭히는 적과도 같았다. 
학자들은 저마다의 의견을 피력한 책을 출판했고, 그것이 학계에서 인정을 받게될 때마다 우리가 외워야 하는 지식의 숫자는 늘어만 간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대학에 입학했다. 
공교롭게도 내가 택한 전공은 국어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누구보다 창작에 목이 말라있다. 
오아시스를 찾는 사막의 여행자처럼. 
헛된 희망을 가지고, 내가 긍정적인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온 우주가 나를 위해 움직여줄 그런 생각을 가지고 말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그런 것 같다. 
폴 오스터의 이 글을 읽기 전까지는.

폴 오스터는 마치 내 생각을 꿰뚫기라도 한 듯이, 적나라한 작가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때로는 바보 같고, 어리석고, 아둔하기까지 한 그의 모습에 책을 덮어버리기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나는 곧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진짜 작가의 삶일지도 모른다.

슬픈 일이다. 작가들은 대부분 이중생활을 하고 있고, 오로지 글만으로 먹고 살기에는 이 사회가 녹록치 않다는 사실을 폴 오스터는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

윌리엄 칼러스 윌리엄스와 루이 페르디낭 셀린은 의사였다. 
윌리스 스티븐스는 보험회사에 다녔다. 
T.S 앨리어트는 한때 은행원이었고, 나중에는 출판업에 종사했다, 는 그의 말은 슬프지만 사실이다.

어디에도 글만을 향하는 삶은 찾을 수 없는 것일까. 최근 내 가장 큰 고민이거니와
글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고민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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