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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젤~로 맛있는 집
김한석.박선영 지음 / 웅진리빙하우스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미식가라는 말은 언제부턴가 허영과 사치를 뜻하는 말로 변질되어 버렸다.
주변에 온갖 맛집만 찾아다니는 이가 있으면 앞뒤 재지 않고 쉽게 말하곤 한다. '배가
불렀구만.', '돈이 차고 넘치나보지.', '다 쓸데없는 짓이야.' 등등. 비난이라는 회사가
제조한 화살이 수도 없이 꽂힌다. 그런 사람들이 내세우는 논리의 밑바닥에는 시장이
반찬이다는 생각과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은 음식이다는 생각이 깔려있는 경우가
많다. 배가 고프면 음식이 맛있는 것과 인체의 신비에 관련지어 보면 둘 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럴수도 있다.
하지만 미식가는, 어차피 밥은 매일 먹는 것인데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맛있는 걸
찾아 한끼, 한끼 때우자는 심사를 가진 이들을 지창하는 말이 아니다. 맛집이라면 먼
거리도 마다않고 달려가고, 더위나 추위에 시달리며 몇 시간씩 기다리기도 불사하고,
기름값이니 뭐니 배보다 배꼽이 큰데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이런 곳도 알아' 라는 허세를 부리기 위해 뛰는 사람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그저
솜씨 좋은 기술자를 장인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미식가란 숨은 맛집 속에서 따뜻한 마음을 건져 올리는 사람이다. 미식가들에게 신선한
재료, 최고의 육수, 완벽한 조리법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정말 맛있는 집에서 음식을 하는 분들의 모습은 한결같다. 더 나은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 끊임없이 배우려는 겸손함과, 손님에게 더 좋은 맛을 선사하기 위해서 한없이
베푸는 사랑을 지녔다. 그리고 이들이 차려준 정성 가득 담긴 요리를 먹는 순간만큼은,
그것이 몇 천원짜리 음식이건 비싼 호화 요리건 생각할 필요 없이 너무나 행복해진다.
-『세상에서 젤~로 맛있는 집』, intro.
진짜는 바로 이것이다. 재료나 가격을 무색하게 만드는 정성과 사랑. 미식가란 바로
이것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말함이며, 미식가들은 그 배려속에서 최초의 행복함을
느낀다. 미식가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사람들과 공유하고 나눔으로써
두번째로 행복함을 느낀다. 세번째 행복은 일치감에서 비롯된다. 나눔을 받았던 상대가
나누어주는 사람으로 탈바꿈할 때, 미식가는 스스로 그와 더불어 만족스러운 일치감을
느낀다. 이것을 굳이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소통' 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미식가란 사람들은 일방적인 사랑을 퍼주려는 이들이다. 그들은 부지런하게 발품을
팔고, 남들보다 배는 뛰어다니며, 전국 방방곡곡을 헤집고 다닌다. 그들은 다른 사람
들의 작은 행복을 위해 기꺼이 그렇게 한다. 그것이 그들의 가장 큰 행복이므로.
나는 이 책의 저자인 김한석, 박선영 부부가 그런 사람들이라고, 미식가라고 생각한다.
부부가 같은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해 보인다. 부럽다. 그런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그런 반려자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은 큰 축복이 아닐까. 그들의 나누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이 가져다 준 선물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부부의 공력이 담긴, 그야말로 육수중의 육수다. 짤막한 글과 풍성한
사진은 보는 이로 하여금 내 몸에게 미안한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막 자란 내 몸아,
지못미' 사진이 예쁘고 먹음직스럽게 화려해서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이런 곳을 보통 사람들이 갈 수 있는거야? 음,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맛집마다 주요 메뉴의 가격을 표시해 놓았는데, 놀랍게도 몇몇 집을 제외하고는
주 메뉴가 5천원에서 1만원 사이의 저렴한 가격이기 때문이다. 그건 이들이 그저
인테리어가 화려하고, 비싼 고급 음식점들을 나열하는 책을 만들지 않았다는 증거다.
부부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을 하나 짚고 가야겠다. 맛집을 찾아 소개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임을 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보기도 전에 흥미롭게 생각했고, 기대했다.
전국의 맛집을 찾아서 어떤 식으로 소개했을까, 란 기대였다. 그런데 막상 책을 열어보니
소개된 맛집은 수도권에 한정되어 있었다. 통제라!
몇 번 서울을 들락날락한 경험에 비추어 어디 갔던 곳 없나하고 찾아봤지만 허사였다.
나는 소개된 맛집 중 단 한 곳도 가본 적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내게 이 책은
새로운 시선과 자세를 가다듬게 만들어 준 좋은 책이다. 이런. 끝까지 칭찬이다.
그리고 진짜 마지막으로. 책 중간중간 부부만의 레시피가 소개되어 있다. 꼼꼼하게
설명이 되어있으니,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주면 좋을 듯 싶다. 한 권의 책에 많은 내용을
담으려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이 책, 쉽게만 생각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