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월드 -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디자인
앨리스 로스손 지음, 윤제원 옮김 / 안그라픽스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디자인은 전공 분야가 아닙니다.’

‘요즘은 상업 영역에 자리 잡은 개념 아닌가요?’

‘있어 보이는 사유의 결과물일 테죠.’

 

 

디자인을 전문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은 나와 같이, 이와 비슷한 견해를 어렴풋이 떠올릴 것이다. 디자인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기에는 너무 광범위하고, 체감하는 디자인이란 주로 상업 제품군이며, 디자이너들은 박학다식하고 자기 철학이 있는 지식․전문인으로 느껴진다.

 

 

디자인 영역에서 공부하고 일하지 않는 이상 디자인은 그들의 영역이고, 우리(디자인 비전문가)는 그들의 결과물이 자아내는 소유욕과 편안함을 만끽하며 지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견고한 줄만 알았던 디자인 영역이 점점 문을 열고 여러 분야에 손을 내밀고 있다. 이 책도 그중 하나다.

 

 

‘헬로 월드’는 유명 디자인 평론가인 앨리스 로스손이 8년간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에 기고한 칼럼들을 재정리한 책이다. 디자인 입문서, 역사서, 에세이, 사례집과 같은 느낌을 준다. 새로운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개발에 성공하면, 프로그래머들은 작동 여부를 확인할 때 ‘헬로 월드 프로그램’으로 새 언어를 테스트한다고 한다. 두 단어가 새로운 프로그램의 시작을 알리는 셈이다. 저자는 이에 비유하여 디자인 또한 새로운 무언가를 여는 시작이라고 설명한다.

 

 

 

 

 

 

p.37 디자인은 계속해서 변화의 주체라는 역할을 수행하며, 인간의 필요와 바람에 따라 삶을 구성하도록 도와주고 생활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변화의 주체, 이 문구가 계속해서 디자인을 이해하는 좌표 역할을 해 주었다. 13개의 장과 프롤로그, 에필로그, 저자의 말을 순서대로 따라 읽다 보면 결코 온전히 머리에 맴돌지 않는다. 내용은 어렵지 않으나, 방대한 사례와 텍스트의 양 때문이다. 저자가 공감을 얻고자 하는 바를 뒷받침하기 위해 동서고금의 여러 디자인 사례가 등장한다. 고대 중국의 진시황제부터 18세기 해적, 산업혁명 시대에 대량제품을 제작한 장인은 ‘디자이너’로 바라본다. 무기, 깃발, 가구, 전자기기뿐 아니라 소외된 이웃을 돕고 자연파괴를 막는 기술과 캠페인도 디자인으로 소개하는 이유를 디자이너 모호이너지의 글을 인용한 대목에서 확인하였다.

 

 

 

p.54 디자인은 모든 문제는 궁극적으로 ‘일상 디자인’이라는 하나의 문제로 수렴한다. 건전한 사회에서는 일상 디자인이 널리 퍼지면 어떤 직업군에 속한 사람이든 디자인에 기여하려 할 것이다. 디자인 활동은 모두 문명을 발달시키는 데 기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디자인을 일상으로 소환하였다. 이는 디자인을 특별한 영역에서 생활 곳곳으로 확장한, 우리 삶이 디자인이라는 사고와 행동, 제작 방식이 결합하여 있음을 나타낸다. 그렇다고 좋은 사례로만 디자인을 예찬하지는 않는다. 불편함과 환경 문제를 초래하는 ‘나쁜 디자인’들도 소개한다. 디자인을 인간의 일이며 역사의 과정으로 인지하였기에 가능한 평론이라고 생각한다.

 

 

 

p.92 ...우리는 디자인의 편리함보다는 불편함을 더 쉽게 체감한다. 뛰어난 디자인은 눈에 띄지 않는다. 디자인이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하면 우리는 디자인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 채 문제를 해결하거나 성과를 내고 자신에게 공을 돌린다. (중략) 디자인이 잘 됐다면 깊이 생각하지 않고 결과물을 직관적으로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디자인은 외관의 미학과 기능의 우수성을 넘어 우리의 행동을 관장한다. 그 때문에 디자인된 대상을 평가할 때, 사용자들이 불편함을 가장 먼저 발견하는 현상이 잦은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의족, 지하철 노선도, 제약 등이 이러한 현장의 ‘불편한 목소리’에 디자이너들이 귀 기울여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렇듯 일상으로 다가온 디자인은 문명의 발전, 수공업, 대량생산, 제품 경쟁시대를 지나 더욱 크고 중요한 미션을 갖게 되었다. 요약하자면, 유용성, 독창성, 협업 (정보 공유), 지속가능성 (친환경)이다. 이 중에서 기본 중의 기본은 예나 지금이나 유용성임을 강조한다. 책의 한 장을 차지할 정도로 큰 비중을 두고 소개한 ‘애플’사도 같은 입장이었다고 한다.

 

 

 

p.133 잡스는 제품을 보기만 해도 사용법을 짐작할 수 있게 만들지 않는다면 아이팟이나 아이폰 같은 새로운 제품은 과거에 출시했던 제품처럼 고객에게 외면당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애플 제품(대량생산 이후 가격대는 저렴하면서도 디자인과 성능은 우수한, 대중의 흥미와 구매를 자극하는 제품들이 대거 등장하였는데 이를 ‘알파 제품’이라고 한다.)을 처음 사용하였을 때 많이 헤매거나 데이터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어서 애플이 추구하는 ‘설명서 없이도 직관적으로 인지하고 쉽게 사용하는 제품’에 대해 미심쩍기는 하나, 서구권에서 애플 제품이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강하기에 일단 수긍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저자는 애플의 장점만을 부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뛰어나고 우수한 제품일지라도 이제는 윤리적이고 친환경적인 디자인 요소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오늘날 좋은 디자인을 규정하는 데 협업과 지속가능성을 새로이 강조하는 것도 이와 맥락이 맞닿아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12장 ‘나를 드러내는 디자인’, 13장 ‘소외된 90퍼센트를 위한 디자인’ 그리고 에필로그에 잘 나타나 있다. 디자인 또한 규격에서 교감으로 성격이 변화하며 유용함을 기본삼아 삶에 관여하고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디자이너가 결정하기보다는 디자이너에게 개인의 의견을 반영하는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p.249 ... 시간이 흘러 대중이 규격화의 장점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잡음이 생기고 대중은 개성 있는 제품을 갈망하게 된다. 빈티지 패션이 인기를 끌고 수공예와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고 휴대전화에 다는 액세서리가 유행하는 현상은 모두 소유물에 대한 자신의 특성을 반영하려는 시도의 결과이다.

    

 

 

이처럼 디자인이 소수의 권력에서 대중으로 그리고 개인에게 다가가면서, 디자인은 ‘응용미술’, ‘제품 제작’을 넘어 사람을 바라보며 사람을 위한 디자인을 과감히 확장하고 있다. 13장은 이익창출에서 공익 창출로 변화한 디자인 사례를 소개한다. 낙후지역인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윈저의 버티얼리컬리지 고등학교에서 진행한 디자인 수업 ‘스튜디오H', 런던의 빈곤한 자치구 서더크의 노인들의 활력을 되찾아낸 활동을 디자인한 그룹 ‘파티시플’, 빈곤 국가 어린이들에게 직접 제작한 저가 컴퓨터를 판매하고 캠페이를 벌인 ‘OLPC프로젝트’ 개발도상국 출신 디자이너들이 자국에서 진행한 친환경 프로젝트 등 다양하다. 물론 남아프리카 현장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고 제작하여 실패한 ‘플레이펌프’ 프로젝트 사례도 나온다. 저자는 파티시플을 창립한 사회학자인 힐러리 코탐의 말을 인용하여 이와 같은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의 특징을 설명한다.

 

 

p.268 디자이너는 인간의 동기와 염원, 욕구를 잘 이해해요. (중략)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필수적인 수평적 사고에 능하고 의사소통 능력이 뛰어나 사람들의 참여를 도할 수 있죠. 디자인은 여러 도구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지만 매우 특별한 결과를 이끌어냅니다.

 

 

 

디자이너가 제품에서 지역으로, 사람으로 시선을 넓히면서 가속이 붙고 있는 인도주의 디자인에 대한 자가 점검도 동시에 면밀히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한 때, 1704년 판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 디자인을 ‘교모한 장치’ 혹은 ‘상대를 해하기 위해 꾸민 책략’으로 소개할 만큼 디자인에 대한 개념이 부정적인 적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디자인은 상업 영역에 묶여 있지 않고, 종합 디자인으로써 사회 곳곳에 유익함을 전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이 책을 통해 디자인은 익숙한 삶에서 다른 점을 발견하고, 인내하며, 겸손한 자세로 이해를 주고받으며 교감을 통해 유용성을, 추억을,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사고와 행동방식이라고 나름의 정의를 얻었다. 저자는 디자인 예찬보다 디자인의 오해를 풀며 누구나 참여 가능한 영역임을 알리고 싶었던 것은 아니겠느냐는 추측을 해보았다.

 

 

 

(재미있게 읽는 방법)

이외에도 애플의 사례, 미술과 디자인의 구분, 로고의 기능, 스토리텔링과 인포그래픽의 시효, 친환경 디자인의 어려움도 상세히 소개하였다. 단, 내용이 시공간과 단락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이 기술되어 있어서 종종 맥락을 놓치기 쉬우니 한 번에 몰아서 읽기보다는 한 장씩 나눠서 읽는 것을 권한다. 흥미로운 점은 페이지 곳곳에 관련 사진들이 실려 있는데, 장과 상관없는 내용이 많았다. 그러나 읽다 보면 이 내용이 이전에 나온 사진과 연관이 있음을 알게 되고 되돌아가 사진을 살피는 경우가 많았다. 때때로 사진이 실린 장을 다시 읽는 경우도 있었다. 어쩌면 이 사진들은 저자가 글과 이미지에 지치지 말고 천천히 음미하며 여러 차례 읽어보라는, 흥미로운 책갈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르 코르뷔지에의 동방여행
르 코르뷔지에 지음, 최정수 옮김, 한명식 감수 / 안그라픽스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세이] 르 코르뷔지에의 동방여행

 

 

이 책은 프랑스의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여행 기록입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한 문장만 던져놓고 싶은 충동도 생깁니다.

 

100여 년 전, 동유럽, 젊은 건축학도, 미학, 역사, 문화......

 

어디에도 2014년 동북아시아의 작은 반도에서 살아가는 청년과의 접점이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혈기왕성한 청년의 글은 하나의 글 안에 여러 주제와 소재를 오고가기에 다음 문장을 따라가기에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근대 건축의 대표주자 중 한 사람이라는 르 코르뷔지에, 오스트리아, 루마니아, 세르비아, 불가리아, 터키와 같은 나라들에 대한 기본 정보가 없으면 즐거운 독서를 하기 어렵습니다. 별도의 주석과 연보가 길잡이 역할을 해 주기는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여행자의 느낌으로 책에 몰입하기에는 부족합니다. 작가 연보를 보면 여행 당시에 수첩 여섯 권 분량의 데생과 크로키, 메모, 수백 장의 사진을 촬영했다고 적혀있습니다. 이 시각자료들이 책에 풍성히 실렸으면 일반 독자들의 조금 더 ‘감성적인’ 이해를 도울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책에는 딱 두 장의 그림이 실려 있는데, 그 외의 정보가 없어서 감을 잡기 어려웠습니다. / 파르테논 신전 사진이 담긴 엽서가 한 장 들어있습니다. 이것은 조금 참고가 될 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저는 제 나름의 두 가지 기준을 놓고 천천히, 느린 호흡과 흐름으로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하나는 ‘이십대 중반의 르 코르뷔지에의 이미지만 떠올리며 읽기’, 그리고 ‘그 청년이 예술에 대한 생각을 엿보기’였습니다.

 

 

 

이 사진이 청년 르 코르뷔지에입니다. 말수가 적고 조용해 보이는 인상이지만, 글을 보면 생각과 감정이 넘칩니다. 사색을 많이 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대비 덕분에 글로 (그림으로) 풀어낸 저자의 열정은 거침이 없습니다.

 

 

 

20세기 초반은 상품화된 여행보다 유랑하는 여정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여행이 관광산업이 된 오늘날에는 저자와 같이 타국의 생활 깊숙이 스며드는 일을 경험하기는 어려워졌죠.) 더디고 불편한 이동과 숙박임에도, 약 5개월 간 미술사를 공부하던 친구 오귀스트와의 여행은 청년 예술가가 무언가에 눈을 뜨고도 넘치는 귀중한 경험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다, 회의적인 아가씨들이여. 여행이라는 것을 싫증이 나지 않는다. 우리는 여행에 대한 사랑 속에서 조금씩 더 고귀해진다. 내 신념에 따르면, 여행은 모든 것이 사회주의화하는 요즈음 찬양받아 마땅한 일이다. (p.20)

 

 

 

여행이 가져 올 것들에 대한 믿음으로, 자느레 (본명)이자 르 코르뷔지에라는 프랑스 청년은 오래 이어 온 전통, 감성, 조화로운 세계와 문화에 극찬합니다.

 

 

 

농부들의 예술은 변함없고 따뜻한 애무로 대지를 감싸 안고, 인종, 기후, 장소에 상관없이 조화롭게 피어나는 꽃처럼 대지를 덮지. 농부들의 예술은 아름다운 동물로서 살아가는 기쁨을 제한 없이 드러내. (p.25)

 

 

 

이곳 사람들은 집을 지나칠 정도로 정성 들여 돌본다. 그들은 자기 집이 깔끔하고, 즐겁고, 편안하기를 바란다. 그들은 집을 꽃으로 장식한다. 또한 삶의 기쁨을 나타내주는 환한 색깔로 수놓인 옷을 입는다. 식기에는 꽃무늬가 장식되어 있고, 예술적 향기가 넘쳐난다. 세심하게 관리하는 마룻바닥에는 여자들이 오래된 전통에 따라 직조한 양탄자가 덮여 있다. 매년 봄이 되면 그들이 사랑하는 집은 새 옷으로 갈아입는다.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얀 옷이다. 하얗게 칠한 집은 여름 내내 나뭇잎과 꽃 속에 미소 지을 것이다. (p.59-60)

 

 

 

저자는 요란하고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한 것보다 자연과 어우러져 오래토록 이어 온, 쉽게 인지되는 직관을 갖춘 단순한, 생명력으로 넘치는 삶의 현장에서 예술을 발견하고 예찬합니다.

 

   

 

나는 그저 사물의 장관을 눈으로 보고 느끼면서, 내가 만난 아름다움을 진실한 말로 여러분에게 전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p.59)

 

   

 

낯선 세계의 사람들이 만든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알리려는 그와 현재의 독자를 공감시키는 대목이 눈에 띕니다.

 

 

 

“관광객들과 마주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어느 날 나는 내 여행 수첩에 이렇게 기록했다. 관광객들은 떼로 몰려다니며 속물스러운 행동을 일삼는다. 평소에 지내던 환경 밖으로 나오면 격에 맞지 않는 행동을 쉽게 하는 법이다. 사람들은 관광객들을 바라본다. 아니, 그들의 소리를 듣는다. 그들은 갖가지 명소 이름을 큰 소리로 떠벌리며, 요란한 발소리를 내며 여기저기 성큼성큼 돌아다닌다. ....... 그들은 예술작품을 보고 경탄하지만 예술가에 대해 성찰하는 법은 없다. (p.183)

 

 

 

스스로 경험하기를 원하는 젊은이의 여행은 좀 더 천천히 이뤄지는 성찰을 지향하기에, 돈과 시간만 있으면 어디든 다니며 지식을 뽐내고 무언가를 배우고 깊이 느끼지 않는 이들의 여행 방법과는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요란스러운 관광객에 대한 불편함은 시작되었네요.

 

 

 

 

청년 르 코르뷔지에는 자신이 아는 지식으로 여행에서 만난 아름다움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시골 마을의 집과 도자기를 만나고, 이국의 오래 살아남은 건물들을 보고, 그 안에서 넘치는 생명력을 자아내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풍습에 감동받고 존중합니다. (여행지에서 겪은 불쾌감과 실망감도 숨기지 않습니다. 그럴 때는 어쩐지 친근감이 들었습니다.^^; 여행의 판타지와 현실의 괴리감?)

 

  

 

지명, 지리, 역사, 건축 양식과 관련된 정보들에 익숙하지 않다면, 인터넷 검색으로 해당 이미지를 찾아보면서 읽으면 좋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정보와 공들일 시간에 주눅들 필요는 없습니다. 우선 책만 읽어보세요. 원래 일기, 여행일지는 내 자신이 첫 번째 독자입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여행, 미학서적 이전에 한 예술가의 생각과 교감하는 에세이에 가깝습니다. 빛나는 문장, 망설이는 문장, 확고한 문장, 끊임없이 되묻는 문장으로 가득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난 뒤 ) 동유럽 여행을 가고 싶다는 쪽보다는 여행지, 낯선 곳에서 무엇을 어떻게 관찰하며 느끼고 내 감성과 삶의 원동력으로 삼을 지에 대한 예시를 얻고 싶으시다면, 이 책을 추천합니다. 르 코르뷔지에 자신에게도 54년이 지나 출간한 당신의 책을 보며 에너지를 많이 얻었을 것이라 짐작해봅니다.

 

 

 

 

 

하렘은 한 편의 시와 같은 궁전이며, 모방할 수 없는 우아함을 지녔다. 역광을 받은 빛의 안개들이 바다 위에서 녹고 있었다. 마리마흐까지 펼쳐진 역광이 투명함이 사라진 하늘에 뚜렷이 부각되었다. 이런 엄청난 장관은 두 번 다시 볼 수 없으리라! (p.16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음을 연결하는 집 - 더불어 사는 공동체, 지역사회권
야마모토 리켄 지음, 이정환 옮김, 성상우 감수 / 안그라픽스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7년 째, 주택청약저축을 하고 있다. 꽤 많은 액수를 보며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무슨 집을 사고 싶지? 아니, 어떤 가족을 원하지?’

집 구매가 가족계획을 앞서는 시대에서 나는 원하는 집이나 가족상이 없음을 깨달았다. 

막연한 사람이 집을 사야 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보험.



집의 유무와 형태가 사람의 능력을 판가름하는 기준 중 하나가 된 지금,

1가구 1주택-옆집은 물론 가족끼리도 집 안에서의 사생활을 당연시하는 오늘,

순조롭지 않은 성장과 복지를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하는 요즘.


집을 소유하기란 점점 어려워진다. 이 시대에서 집은 보금자리보다는 투자에 가깝다. 

투자이기 때문에 사람과 지역을 고려하지 않은 집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렇듯 집을 향한 맹목적인 욕망을 진단하고, 본래 집다운 집,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공간의 필요성을 느끼던 때에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일본 건축가들은 ‘지역사회권’이라는 개념과 건축을 제안한다.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과 동료들의 4년간의 연구와 사례 모음집이다. 칼럼, 사례, 대담과 함께 이미지들이 가득하다. 눈여겨 볼 점은 건물 설계도면이 아닌, 디자인한 집의 일상을 담은 일러스트이다. 여러 사람들의 대화가 함께 실려 있어 ‘지역사회권’이 잘 와 닿았다.




'이제 집에 틀어박혀 있지 않아도 돼.', '안녕 단독주택, 안녕 내 집 정책', '분양이 아닌 임대', '혼자서도 즐겁게 생활할 수 있어.'

'편하게 모일 수 있는 장소가 있어.'......표지에 이 곳, 집합주택에 사는 사람들의 말들이 담겨 있다. 내지에는 더욱 생활에 가까운

말들이 있다. 그러한 대화들이 오가는 집과 마을이 정말 가능할까?




‘지역사회권’은 집의 집합체이자 개방공간(공용공간)과 침실(전용공간)이 섞인 집합주택으로, 기존 집보다 개방공간의 비중을 넓혀, 공동사용(부엌, 욕실, 수납실 등), 교류를 도모한다. 이와 함께 개인의 공간은 최소한만 갖추고, 대체 에너지, 지역 내 경제활동 활성화를 추진한다. 이 구조에는 참 많은 특징이 있으나, 간단히 언급하자면,



가족 단위에서 개인으로,

소유/분양에서 임대로,

관리운영주체가 외부에서 내부로,

사생활 영역에서 공동체로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맞춤별 조립식 주택과 기존 주택단지의 리모델링을 제시하는데, 공통점은 개방공간과 상부상조이다. 

새로운 주거 형태 제안에서 나아간, 근대, 자본, 사회주의와 같은 것들에 갇힌 문제들을 풀어보고자 하는 ‘삶’의 디자인으로 다가왔다.



큰 것보다는 작은 것을, 작은 것 사이에 흐름을, 흐름이 있기에 고립 대신 어울림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집, 마을이 정말 가능할까? 

이 건축가들의 작은 출발, 정책이나 제도가 아닌 집 자체의 변화를 살피다보면 아직까지는 막연한 이상향으로만 여겨지는 대목도 있다.  그러나 위대한 무언가의 시작은 언제나 이러하였다. 책을 읽고 두근거렸다. 나 역시 막힌 집보다는 열린 집을 어렴풋이나마 원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우리 정부에서는 주택정책과 지역공동체정책을 분리해서 시행한다. 무엇이 먼저이며, 이 책의 내용처럼 꼭 결합시켜야한다고 묻거나 주장하지는 않겠다. 그저 ‘요구하기에, 좋은 게 좋은 것이기에’ 당장 시행하는 것보다는 이 건축가들처럼 근본적인 것부터, 긴 호흡을 갖고 사회 전반을 연구하며 하나씩 도입했으면 좋겠다. 그 흐름들이 싹터야 목숨 걸고 집에 얽매여 있거나 막연히 집부터 구하는 신드롬에서 벗어나, 가족, 친구, 사람들과 사는 온전한 한 사람을 실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지역사회권은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스템디자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지역사회권은 대규모 집합주택을 중심으로, 가족을 대신하는 사회의 중간체를 형성함으로써 다양한 사회문제의 해결을 도모하는 구조이며 시스템디자인의 실례로 매우 특징적이다. (p.1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일의 건축
이토 도요 지음, 이정환 옮김, 임태희 감수 / 안그라픽스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원제 'あの日からの建築'는 '그 날로부터의 건축'이라는 뜻이다. 그 날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 중 한 사람인 이토 도요는 모든 것이 무너진 이 날을 계기로 건축에 대한 생각과 작업 사례를 책에서 소개한다. 건축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여도 읽는 데 큰 문제는 없다. 저자는 건축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흐름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고해, 진심 그리고 감사함의 마음을 담아 숨김없이 드러내었다. 한 원로 건축가의 압축과 반복의 키워드들은 사회에 대한 올바른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책은 대지진 피해지역 방문, 피해지역 복원 프로젝트, 건축 교육, 건축가로서의 자신, 앞으로의 건축에 대한 생각, 그리고 짧은 인터뷰로 이루어져있다. 각 주제 안에 짧은 소주제로 나뉘어져 있으며, 종종 에세이를 읽는 기분도 들었다. 그러나 어렵지 않은 단어들로 쓴 문장에는 오랫동안 경험하고 생각하며 얻은 개인의 세계관이 보편적인 언어로 다가왔다. 에세이에서 나아간, 특히 젊은 세대에게 지침이 되는 '인생 가이드'로 여겨도 좋다.

 

 

  *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책에 등장하는 사진과 설계도면들이 모두 흑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대비도 높아서 자세히 알아보기 힘든 이미지도 있다. 어떠한 의도인지는 자세히 모르나 추측하건대 건축물의 외향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건축가의 가치관에 집중시키기 위한 장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인을 보고 감탄하는 데 그치지 말라는 의도일까?

 

 

 

  다음의 세 가지 항목은 이토 도요가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한 모든 내용의 핵심이다.

 

 

'복구에 임하는 나의 세 가지 자세'

첫째, 비판하지 말 것.

둘째,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행동으로 옮기는 것.

셋째, 건축가로서의 '나'를 초월한 경지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 (p.40)

 

 

 

  쓰나미 피해 지역을 마주하며 당장 항복하고 싶었으나, 건축가로서의 권위 대신 복구하는 현장 공동체의 일원임을 선언한 것이다. 이 마음가짐은 피해 지역 복구 프로젝트는 물론 건축 전반에 대한 입장으로 자리매김하는 반석이 된다.

 

 

 

  또한 저자는 스스로에게 가슴 아픈 질문을 던진다.

 

 

'우리 사회에 건축가는 정말 필요한 존재일까?' (p.29)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명확한 구분을 짓는 '근대주의'를 불러왔고, 특히 건축에서 가장 뚜렷이 드러난다. 기능, 관리, 안전, 표현(상징)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건축만큼 좋은 분야도 없다. 이는 사용자보다 제작자, 관리자에게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번 피해 지역 복구 과정 중에도 '안전'을 내세우며 주민들의 바람보다 단기간 지원에 집중하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 일본 도호쿠 지역에서 세 개의 현에 조성하고 있는 가설주택은 약 5만 호로, 대부분이 컨테이너 타입의 철골 조립식 구조물이다. (중략) 이 평등주의와 획일주의는 가설주택 문제뿐 아니라 오늘날 일본의 정신적 빈곤을 상징한다. (p.76)'

  '그들은 지진 피해를 당하기 전까지 커다란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좁은 가설주택에 큰 충격을 받은듯했다. 낮에도 집 안에 있으면 답답해 좀 더 개방적인 장소가 필요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p.80)

 

 

 

  피해 지역 주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들은 이토 도요는 폐쇄된 개별 공간 대신 더불어 살아가는 집합주택을 제안하고, 실제로는 주민들의 마음을 연결하는 건축물, '모두의 집' 프로젝트를 추진하였다. 자원봉사자와 주민, 행정가들이 한 마음으로 주민들이 모여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마을별 맞춤집들을 지었다. 마을회관보다 좀 더 유연한 형태로 보였다.

준공식 때 주민들이 조촐한 잔치를 열어 함께 한 이들과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이야기들도 실려 있다. 망연자실하기보다는 강인하고 밝은 모습으로 서로를 위하는 주민들을 보며 이와 같은 건축에 더욱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이토 도요의 진심은 통했다. 리쿠젠카타카라는 지역에서 젊은 건축가들과 사진작가, 주민과 함께 추진한 '모두의 집' 프로젝트는, 2012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체건축전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였다.

 

 

 

 ▲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미지. 리쿠젠타카타 모임에서 지역주민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이토 도요와 프로젝트 참가자들. 건축을 공동체의 영역으로 이끌고자 한 저자의 실천,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대화'였다.

    

 

 

   '나는 설계를 시작한 이후 건축물을 만드는 측과 그곳에서 생활하는 측이 이렇게 진심으로 하나가 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중략) 설사 한 순간이라 해도 이런 경험을 한 것은 건축가에게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었다.' (p.88)

 

 

 

  이후에는 건축 교육, 작업에 대한 이야기들이 다양한 사례와 함께 나오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설계안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수업 중인 공립 초등학교의 6학년생 교실을 찾아가 이 도서관 설계안을 설명해준 적도 두 차례 있었다. 그 초등학교의 학생들은 자신만이 아닌 남을 생각하는 매우 우수한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고령자와 자신의 여동생이나 남동생처럼 더 어린아이들도 생각해달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다른 사람을 배려했다. 커뮤니티를 만드는 매우 초보적인 사회성이라 할 수 있는 요청과 제안이었다.' (p.122)


 

  기후 시의 새로운 도서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아이들에게 들은 의견이라고 한다. 가장 본질적인 개념인 '커뮤니티 관념'을 이토 도요는 건축의 가장 주요한 가치관으로 인식한다. 이처럼 건축가가 아닌 아이들도 알고 있는 것을 요즘 건축가들이 많이 놓치고 있음에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내일을 위한 건축'은 '(사용하는) 사람을 위한 건축'과 같은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당연한 말이 전문가가 되면서 행정, 이력, 예술 작품 등에 얽매여 과시형 건축물들을 만들어내고 있음에 저자는 날카로운 지적을 숨기지 않는다. 예술과 자본주의의 시각화 대신 건축가 개인을 초월한 공동체의 결과물인 건축물을 지향한다.

 

 

  근대주의의 건축물들이 재해에 너무도 쉽게 무너진 현장을 목격한 건축가가 초심으로 돌아가 건축물, 만드는 사람, 지원하는 사람, 사용하는 사람과 지역의 특성을 연결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한 여정이 바로 이 책이다. 건축은 결과만 있으면 될까? 아니면 설계와 건설 과정, 완공 이후의 활용도 건축에 포함되어야 할까? 전자를 지지하는 것으로 보이는, '건축물의 정체성이나 건설 과정의 문제에 있어 나는 책임이 없다.'고 답한 건축가 자하 하디드와 비슷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입장도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인생 첫 번째 Classic - 세계적인 클래식 음악가와 아름다운 명곡을 만화로 만나는 클래식 입문서
강모림 글.그림 / 컬처그라퍼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대중문화예술] 내 인생의 첫 번째 Classic (글/그림 강모림) 


리뷰 : 혜 

                                                                                                                           


클래식이라는 서양 음악은 참 알게 모르게 생활 가까이 있습니다. 
과거의 비중이 높은 클래식이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받는 건 보편적인 감성이 오늘날에도 많은 감동을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 동네, 이웃인 피아노 선생님께 이름 모를 작곡자들의 악보를 따라 곡을 배운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종종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보면 귀에 익은 클래식 음악을 듣게 되죠. 
클래식을 소재로 한 작품들도 꽤 많아졌고요. 
(최근에 종영한 드라마 '밀회'를 시청하셨다면, 더욱 친밀감을 느끼시리라 예상합니다.) 

이토록 가까이 클래식이 있음에도 막상 누가 작곡한 곡인지, 제목이 무엇인 지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워낙 많은 작곡자와 작품(작품명들도 꽤 어렵죠. 작품번호 몇 번, 교향곡, 무슨 장조, 애칭...)들이 전해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암기 위주로 공부해 온 지난 학창시절의 음악수업 때문은 아닌 지 아쉬움을 품어봅니다. 

클래식 관련한 입문서들은 이미 많이 나와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택한 이유는 지식으로 접하는 방향 대신 
21세기 동양의 평범한 청년이 클래식을 향유하는 방향을 터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1. 기본소개 

이 책은 만화가이자 에세이스트로 활동 중인 강모림 작가의 그림과 글로 이뤄져있습니다. 
클래식을 좋아하지만 전문가는 아닌 작가가 스스로 자료를 수집하고 공부하면서 
본인 나름의 클래식을 소개하고 즐기는 방법을 비교적 쉽게 풀어놓았습니다. 

클래식을 대표하는 음악인들의 일화, 클래식이 형성되어 온 역사적 배경, 
영화에 나오는 클래식,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클래식을 소개하며 
겁내지말고 마음 편히 즐기기를 권장합니다. 

사실 제목이나 부제 '세계적인 클래식 음악가와 아름다운 명곡을 만화로 만나는 클래식 입문서'라는, 
실용서적 느낌 나는 내용이 그다지 마음에 와닿지는 않지만 
이러한 제목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방면으로 클래식과 음악인에 대한 소개와 
클래식을 삽입한 영화들까지 제법 알찬 내용들을 담았습니다. 

*만화는 첫 번째 챕터인 '클래식 음악가 이야기'에만 음악인별로 나옵니다. 
그리고 요즘 우리나라 생활상을 배경으로 한 유머가 종종 등장합니다. 
이 정서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조금 당황스러움을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2. 디자인 

연한 오렌지빛이 감도는 표지 위에 책에 소개한 대표 음악인들이 
앙증맞은 모습으로 옹기종기 모여있습니다. 
덕분에 딱딱하고 재미없는 교양서적일 것이라는 편견을 한 꺼풀 벗겨줍니다. 

내지도 올 컬러여서 색상이 주는 이미지닏 마치 음악인들의 특징을 뒷받침 해 주는 느낌입니다. 
예를 들면 낭만주의 시대에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얄궂은 별칭으로 불리면서도 
명성이 자자했던 파가니니는 매서운 인상과 보랏빛 뒷배경 덕분에 초절정 기교가

기괴함까지 자아냈다고 하는 그의 연주법을 짐작하게 됩니다.


음악인들의 특징을 간결하게 잡아낸 일러스트 초상화들과 
재미난 만화들이 친근감을 더하고, 
줄간격에 여유를 둔 큼지막한 본문 내용과 
적절한 위치에 배치한 주석 덕분에 부담없이 읽었습니다. 



3. 구성 

대표 음악인 소개로 시작하여 클래식 역사, 많은 사랑을 받은 영화와 클래식을 소개하는 흐름은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클래식 역사부터 나왔으면 초반부터 지쳤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내용이 아니었기에 (중학생이 이해할 내용) 
어떤 순서이든 흥미로웠을 것입니다. 

또한 이 책 곳곳에 QR코드가 있습니다. 
챕터 에서 음악인들의 대표작들과 
귀에 익은, 쉽게 좋아하게 될 클래식 소개 부분에 삽입되어 있습니다. 
스캔을 하면 유명한 음악인들의 연주 실황 영상이 나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선율을 스마트폰으로 듣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음질좋은 음원 다운로드나 CD (샘플링이어도)를 추가한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싶지만 
이 책의 글과 그림으로 클래식에 얽힌 내용들을 참고하여 
스스로 찾아 듣는 즐거움에 눈뜨는 것이 이 책이 추구하는 목표로 느껴졌습니다. 

클래식 초보가 귀를 열게 되면서 
주위 사람들과 함께 클래식을 즐기고픈 마음에 이 책을 만들게 되었다는 작가의 고백에 공감한다면, 
클래식 마니아의 길로 가는 출발선에 이 책의 내용과 QR코드 속 영상들은 
클래식 초보들의 좋은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4. 감상 

인터넷서점에선 이 책을 '대중문화예술'로 분류하였습니다. 
그만큼 클래식은 소위 일부 교양인의 영역에서 대중에게 사랑받는 예술 영역으로 확장되었습니다. 
대중 영화나 드라마에 곧잘 등장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입문서를 통해 얻은 관점은 '사람' 그리고 '배경'입니다. 
어째서 바흐가 수많은 곡을 작곡하였는 지 , 
자살을 결심한 베토벤이 다시 재기할 수 있었는 지, 
쇼팽의 작품들 중에 소규모의 연습곡들이 많은 지, 
브람스는 교향곡을 좋아했고 바그너는 오페라를 좋아했는 지, 
드뷔시의 음악에서 인상파 화가들의 색채가 느껴지는 지, 
스트라빈스키 음악에서 유독 작곡자의 심리가 드러나지 않는 지, 
비록 전기가 아닌 짧은 일화를 통해 알게 되지만 
음악인들의 작품 세계를 알게 되는 중요한 열쇠임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역사 부분의 내용들도 흥미로웠습니다. 
클래식과 관련한 역사나 지식 대신 
어째서 그러한 음악과 음악인들이 출현하게 되었는 지 
간결하면서도 알찬 내용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신대륙 발견과 식민지 건설로 부를 얻은 기득권 (왕, 귀족, 교회)의 세력 과시를 위해 출발한 클래식이 
인쇄술의 발달로 음악이 더욱 널리 보급되고, 자유분방한 창작과 표현의 시대 (바로크)와 
자본주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예술에 투자하여 오페라와 같은 공연사업을 벌였습니다. 
이후 월급을 받는 음악인들의 시대, 자급자족을 하며 살아가는 음악인들의 시대를 지나 시민혁명, 산업혁명을 
겪으며 클래식을 더욱 대중의 품으로, 그리고 개인의 창작 영역에 집중하였습니다. 
이 낭만주의를 지나 20세기에는 과학의 발전(음반)과 세계대전(망명) 중에 더욱 더 많은 이들에게 
퍼져 나갔습니다. 이처럼 클래식 또한 시대에 맞춰 부름을 받고, 변화하고, 독립하며 
자신의 가치를 견고히 다져왔습니다. 

덕분에 그저 무슨 시대이며 어떤 음악인이 있고, 대표작들이 무엇이 있는 지 기억하던 때보다 
선명한 시대적 배경을 살피며 클래식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습니다. 


작가가 주목한 영화와 클래식들도 흥미롭습니다. 
덜 알려진, 숨은 명작들과 클래식도 소개하였으면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만화로 까불거리며 웃음도 주고, 
생각 외로 상세한 역사를 알려주고, 
친숙한 영화나 유명한 동시대 연주가들의 대표 연주곡들을 소개하는 이 책은 
요즘 클래식이 낯설고 어려운 젊은 세대를 위한 첫 번째 책으로 
가볍게 읽지만 깊이 빠져들게 될 구심점이 되기에 적합한 입문서입니다. 



<덧붙임> 
5. 기억에 남는 구절 

제가 주목한 구절은 그 동안 잘 몰랐던 음악인들의 어두운 경험이나 감정을 소개한 부분들입니다. 
위대한 음악인으로 알려져있는 것과 달리 당신들도 숱한 어려움과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제까지 어렴풋이 알았지, 자세한 사정은 모른 채 작품들만 좋다며 감상해 왔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들을 읽고난 뒤 음악을 들으니 
고귀하게만 여겨졌던 클래식이 한층 더 가까이, 사람들의 구슬픈 삶의 한 조각로 다가왔습니다. 
힘든 상황을 극복하거나 견뎌내며 위대한 예술가가 되었다는 점보다는 
그러한 현실 속에서도 예술이 끊임없이 맥을 이어온 점에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어쩌면 예술은 작품에 대한 지식과 감상 포인트보다도 
작품을 만든 한 사람을 이해하려하는 데에서 교감이 시작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얻는 것 만큼 잃은 것도 많았다. 여행 도중 어머니가 사망했고, 여행의 피로감에 어린 모차르트의 건강도 
악화되었다.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한 모차르트는 청년이 되자 기괴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참을성도 없고 괴팍한데다가 여자에 빠져 돈을 펑펑 써댔다. p.32 

하지만 일정한 거처가 없고 피아노를 살 형편조차 안 되었던 슈베르트는 모든 작곡을 기타로 해결했다. p.54 

리스트에게는 인간적으로 모순된 면이 많았다. 가족들에게는 무심한 반면 친구들이나 후배들에게는 언제나 친절했다. 또 화려한 여성 편력을 보이는 한편 성직자 같은 생활을 동경하기도 했다. p.79 

스물 여섯살의 바그너는 여배우 민나 플라너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으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다. 민나는 정숙하지 못했고 바그너는 낭비벽이 심했다. 3년 후 바그너는 민나와 빚쟁이를 피해 파리로 도망쳤고 가난한 파리 생활이 이어졌다. p. 114 

유달리 감성적이고 예민했던 차이코프스키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았고 평생 그 후유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p.122 

슈만은 젊은 시절 걸린 매독 때문에 정신병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정신이상과 환청, 환각 등을 수반하는 매독은 슈베르트, 보들레르, 마네. 고흐 등 당대 많은 예술가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p.20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