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건축
이토 도요 지음, 이정환 옮김, 임태희 감수 / 안그라픽스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원제 'あの日からの建築'는 '그 날로부터의 건축'이라는 뜻이다. 그 날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 중 한 사람인 이토 도요는 모든 것이 무너진 이 날을 계기로 건축에 대한 생각과 작업 사례를 책에서 소개한다. 건축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여도 읽는 데 큰 문제는 없다. 저자는 건축을 중심으로 우리 사회의 흐름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고해, 진심 그리고 감사함의 마음을 담아 숨김없이 드러내었다. 한 원로 건축가의 압축과 반복의 키워드들은 사회에 대한 올바른 방향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책은 대지진 피해지역 방문, 피해지역 복원 프로젝트, 건축 교육, 건축가로서의 자신, 앞으로의 건축에 대한 생각, 그리고 짧은 인터뷰로 이루어져있다. 각 주제 안에 짧은 소주제로 나뉘어져 있으며, 종종 에세이를 읽는 기분도 들었다. 그러나 어렵지 않은 단어들로 쓴 문장에는 오랫동안 경험하고 생각하며 얻은 개인의 세계관이 보편적인 언어로 다가왔다. 에세이에서 나아간, 특히 젊은 세대에게 지침이 되는 '인생 가이드'로 여겨도 좋다.

 

 

  *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책에 등장하는 사진과 설계도면들이 모두 흑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대비도 높아서 자세히 알아보기 힘든 이미지도 있다. 어떠한 의도인지는 자세히 모르나 추측하건대 건축물의 외향에 대한 관심을 줄이고, 건축가의 가치관에 집중시키기 위한 장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자인을 보고 감탄하는 데 그치지 말라는 의도일까?

 

 

 

  다음의 세 가지 항목은 이토 도요가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한 모든 내용의 핵심이다.

 

 

'복구에 임하는 나의 세 가지 자세'

첫째, 비판하지 말 것.

둘째,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행동으로 옮기는 것.

셋째, 건축가로서의 '나'를 초월한 경지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 (p.40)

 

 

 

  쓰나미 피해 지역을 마주하며 당장 항복하고 싶었으나, 건축가로서의 권위 대신 복구하는 현장 공동체의 일원임을 선언한 것이다. 이 마음가짐은 피해 지역 복구 프로젝트는 물론 건축 전반에 대한 입장으로 자리매김하는 반석이 된다.

 

 

 

  또한 저자는 스스로에게 가슴 아픈 질문을 던진다.

 

 

'우리 사회에 건축가는 정말 필요한 존재일까?' (p.29)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명확한 구분을 짓는 '근대주의'를 불러왔고, 특히 건축에서 가장 뚜렷이 드러난다. 기능, 관리, 안전, 표현(상징)을 실현하는 데 있어서 건축만큼 좋은 분야도 없다. 이는 사용자보다 제작자, 관리자에게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번 피해 지역 복구 과정 중에도 '안전'을 내세우며 주민들의 바람보다 단기간 지원에 집중하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 일본 도호쿠 지역에서 세 개의 현에 조성하고 있는 가설주택은 약 5만 호로, 대부분이 컨테이너 타입의 철골 조립식 구조물이다. (중략) 이 평등주의와 획일주의는 가설주택 문제뿐 아니라 오늘날 일본의 정신적 빈곤을 상징한다. (p.76)'

  '그들은 지진 피해를 당하기 전까지 커다란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좁은 가설주택에 큰 충격을 받은듯했다. 낮에도 집 안에 있으면 답답해 좀 더 개방적인 장소가 필요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p.80)

 

 

 

  피해 지역 주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들은 이토 도요는 폐쇄된 개별 공간 대신 더불어 살아가는 집합주택을 제안하고, 실제로는 주민들의 마음을 연결하는 건축물, '모두의 집' 프로젝트를 추진하였다. 자원봉사자와 주민, 행정가들이 한 마음으로 주민들이 모여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마을별 맞춤집들을 지었다. 마을회관보다 좀 더 유연한 형태로 보였다.

준공식 때 주민들이 조촐한 잔치를 열어 함께 한 이들과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이야기들도 실려 있다. 망연자실하기보다는 강인하고 밝은 모습으로 서로를 위하는 주민들을 보며 이와 같은 건축에 더욱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이토 도요의 진심은 통했다. 리쿠젠카타카라는 지역에서 젊은 건축가들과 사진작가, 주민과 함께 추진한 '모두의 집' 프로젝트는, 2012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체건축전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였다.

 

 

 

 ▲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미지. 리쿠젠타카타 모임에서 지역주민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이토 도요와 프로젝트 참가자들. 건축을 공동체의 영역으로 이끌고자 한 저자의 실천,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대화'였다.

    

 

 

   '나는 설계를 시작한 이후 건축물을 만드는 측과 그곳에서 생활하는 측이 이렇게 진심으로 하나가 된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중략) 설사 한 순간이라 해도 이런 경험을 한 것은 건축가에게 더할 나위 없는 행복이었다.' (p.88)

 

 

 

  이후에는 건축 교육, 작업에 대한 이야기들이 다양한 사례와 함께 나오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설계안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수업 중인 공립 초등학교의 6학년생 교실을 찾아가 이 도서관 설계안을 설명해준 적도 두 차례 있었다. 그 초등학교의 학생들은 자신만이 아닌 남을 생각하는 매우 우수한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고령자와 자신의 여동생이나 남동생처럼 더 어린아이들도 생각해달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다른 사람을 배려했다. 커뮤니티를 만드는 매우 초보적인 사회성이라 할 수 있는 요청과 제안이었다.' (p.122)


 

  기후 시의 새로운 도서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아이들에게 들은 의견이라고 한다. 가장 본질적인 개념인 '커뮤니티 관념'을 이토 도요는 건축의 가장 주요한 가치관으로 인식한다. 이처럼 건축가가 아닌 아이들도 알고 있는 것을 요즘 건축가들이 많이 놓치고 있음에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내일을 위한 건축'은 '(사용하는) 사람을 위한 건축'과 같은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당연한 말이 전문가가 되면서 행정, 이력, 예술 작품 등에 얽매여 과시형 건축물들을 만들어내고 있음에 저자는 날카로운 지적을 숨기지 않는다. 예술과 자본주의의 시각화 대신 건축가 개인을 초월한 공동체의 결과물인 건축물을 지향한다.

 

 

  근대주의의 건축물들이 재해에 너무도 쉽게 무너진 현장을 목격한 건축가가 초심으로 돌아가 건축물, 만드는 사람, 지원하는 사람, 사용하는 사람과 지역의 특성을 연결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한 여정이 바로 이 책이다. 건축은 결과만 있으면 될까? 아니면 설계와 건설 과정, 완공 이후의 활용도 건축에 포함되어야 할까? 전자를 지지하는 것으로 보이는, '건축물의 정체성이나 건설 과정의 문제에 있어 나는 책임이 없다.'고 답한 건축가 자하 하디드와 비슷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입장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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