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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정원 - 상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5월
평점 :
먼 데 있는 그리운 이에게서 오랜만에 편지가 오면 선뜻 뜯을 수가 없다.<삼포 가는 길>부터 참 좋아하게 된 작가 황석영이 <무기의 그늘> 이후 12년만에 새 소설을 내놓았는데도 선뜻 읽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동서남북으로 안팎으로 역사의 소용돌이를 온몸으로 다 겪은 큰 작가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으로 서성이다가 그러다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귀하고 맛나는 것을 아껴서 먹는 아이처럼 한 줄 한 줄 천천히 읽어 나갔다.
재밌는 이야기에 끌려서 책장을 넘기노라면 시원시원한 묘사에 아름다운 우리말 문장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딱 들어맞는 예쁘고 고운 우리말을 골라서 정성스럽게 엮어나가는 작가의 혼을 느낄 수 있다.
감나무며 밤나무 소나무 오리나무 등 우리 마을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정겨운 나무들이 서 있고 나팔꽃 분꽃 채송아 봉숭아 과꽃 등 온갖 풀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어 푸근한 뜨락이나 호젓한 오솔길을 거니는 것 같다. 길을 걷다 큰 나무를 만나면 그 그늘 아래 느긋하게 쉬어가는 것처럼 소설을 읽으면서도 나무나 풀꽃 가까이 서면 마음이 느긋해진다.
군데군데에 따끔따끔하게 꼬집기도 했지만 작중 인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눈빛, 아픈 역사를 보듬어나가는 넉넉한 품이 작품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다. 어쩌다 내가 아는 사람이나 작품,나와 비슷한 생각이 나오면 작가와 공유하는 것이 있다는 것에 뿌듯하기도 하다.
미술을 가르치고 있던 한윤희는 오현우에게 무릉도원이라고 갈뫼를 소개했다. 이 곳 갈뫼에서 현우와 윤희는 꿈결같은 사랑을 나눈다. 촛불로 세상에서 멀어진채 고무신을 신었으며 냇가에서 윤희가 빨래를 하는동안 현우는 낚시하여 먹거리를 마련하는가 하면,텃밭을 가꾸어 갖가지 싱싱한 푸성귀를 먹고 아궁이에 불을 때며 살았다. 폭력이나 억압의 공포가 없을뿐만 아니라 가까운 땅에서 스스로 기른 푸성귀를 밥상에 올리는 작은 삶이야말로 황석영이 <오래된 정원>에서 꿈꾸는 삶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삶, 이런 사랑을 꿈꾸어 본다.갈뫼에서 지낸 작고 짧은 삶은 '전쟁의 폭력과 굶주림과 억압의 공포가 없던 태곳적 아름다운 아시아의 무릉도원'이었다. 그것을 작가는 <오래된 정원>이라고 이름 붙였다.
우리들은 대개 오래된 정원을 꿈꾸어 볼뿐 그것의 실현이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실현시켜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폭력과 굶주림과 억압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은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며, 자기의 신념을 위해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그리고 생명까지도 던진다.
<오래된 정원>은 '삶에 대한 꿈을 추구한 세상'을 그린 소설이다.작가는 윤희가 죽기 전에 쓴 마지막 편지의 마지막 구절-힘든 적도 많았지만 우리 이 모든 나날들과 화해해요.-을 통해서 지난 20년을 정리한다. 작가라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야 있겠는가마는, 이 작품에서도 작가는 참 많이 절제하고 누그러뜨렸다는 것을 알겠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상을 위해 그는 화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부드럽고 따뜻한 문체로 화해를 말한다.윤희가 현우를 감싸안고 사랑한 것처럼, 현우의 딸 은결이를 정희부부가 사랑으로 길러내는 것처럼,서로 받아들이고 감싸안고 사랑하고 화해해야 <오래된 정원>을 찾을수 있다고 말한다.광주에서,서울에서,평양에서,베를린에서,뉴욕에서 그리고 감옥으로 이어지며 20년동안 온 몸으로 겪은 역사를 정리하며 그는 화해를 말한다.
<삼포 가는 길>에서 이미 삼포를 잃어버린 것처럼, 이제 우리에게는 갈뫼도 없다. 현우가 찾아 나선 '오래된 정원'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갈뫼는 사라져도 갈뫼의 딸 '햇빛이 강물에 반짝이는 것'을 뜻하는 은결이는 이제 열여덟 소녀로 자라나고 있다.
건강하고 당당하게 자라고 있다. 내 곁에서도 수많은 은결이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이들이 어른이 되면, 우리 역사의 강물에도 환하게 햇빛이 비치겠지. 케테의 석판화에서 '세 아이를 외투자락에 가리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우리는 이들을 이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