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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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의 삶이란 것은 인연과 운명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동안 짧은 생을 살아오면서도 인연과 운명이란 것의 묘한 힘을 경험하고 느낀 적이 있다. 이 책을 읽게 된 것 역시 작가와 나와의 어떤 인연이었다고 생각한다. <달>은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여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끝이 났다. <달>에 등장하는 나비들..물론 모두 같은 나비라는 확실한 언급은 없지만 이 나비는 현실에서 꿈으로, 꿈에서 현실로 돌아가게 해 주는 존재로 생각된다. <달>을 읽으면서 나는 주욱 꿈과 현실로 오가는 아름다운 나비 한 마리를 따라 가고 있는듯 했다.<달>은 기타무라 토코쿠라는 일본의 낭만주의 시인의 생을 모델로 하였고, 그 위에 작가의 재해석과 상상력이 더해져 소설을 이루었다. 그는 지극히 감상적인 낭만주의자였으나 그로 인해 삶의 실패를 맛보고 27세의 나이에 자살한 인물이었다. 그는 '정열'을 현실로 표출하지 못한 것에 대한 비탄과 괴로움에 못이겨 자살을 한 것이다. 작가도 이 소설에서 그의 그런 '정열'을 말하고 있다. 마사키의 삶 역시 몸속에 남겨진 '정열'의 잔재를 어떻게든 스스로 불사르려던 노력의 끊임없는 반복이었다.치밀한 구성, 그리고 읽는 이들을 빨려들게 하는 그의 독특한 문체 때문에 손을 뗄수 없게 만든 책.그리고 곳곳에서 일본의 역사적 흐름과 일본인 특유의 정서를 느낄 수 있었고, 그가 묘사한 자연과 달밤의 정취는 달빛의 은은하고 신비스러운 기운이 내 몸 속으로 스며든다고 느껴질 정도로 아름답고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또한 절정으로 치닫는 부분의 극적인 재미와 마사키와 다카코의 처음이자 마지막인비장한 아름다움을 지닌 사랑의 대화는 매우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그들의 사랑은 비록 아주 짧은 한 순간이었고 그 한순간조차 죽음과 맞바꾼 것이었지만 그 사랑이 오랜 시간의 사랑보다 더 무의미하고 가벼운 것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이 글을 읽다 보면 무엇이 꿈이고 현실인지 혼란스러워지기도 한다. 잠에서 깨어나 절방에 누워있는 자신을 보며 마사키는 생각한다.'어쩌면 이 순간도, 아직 깨어나지 않고 이어지는 꿈은 아닐까?'이 말은 삶이란 것도 현실의 눈을 감는 순간 즉 죽음의 눈을 뜨는 순간 깨버리고 마는 결국 조금 더 늦게 깨어날 뿐인 꿈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꿈은 잠을 잘 때만 꾸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살다보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힘든, 그 두 공간을 헤매며 허우적대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가끔 그런 순간에 부딪히게 되면 생각한다. 우리는 완벽한 현실주의자도, 이상주의자도 될 수 없으니 현실 때문에 이상을 포기하고, 이상 때문에 현실을 이탈해서도 안 된다.<달>..사랑이야기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 이야기에서 사랑이란 것은 단지 정치, 예술,학문 등 그의 '정열'을 쏟아낼 많은 선택사항 중 하나였기에 그저 그런, 다른 진부한 사랑 얘기와는 다르다. 사랑은 그가 이루고자 했던 참된 낭만, 절대적인 것과의 순간적인 일체, 찰나적 진실의 정열과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그것들을 충족시켜 줄수있는 최상의 선택이었던 것이다.우리는 죽음이라는 것에 의해 영원할 수 없는 삶을 살면서 결국 영원한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원을 말하는 노래나 시도 영원이란 것이 실재할 수 없기 때문에 존재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마사키는 그런 것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지속되지 못하고 추괴한 덩어리를 남기며 식어 가는 정열을 참을 수 없었기에 영원이 아닌 한순간의 진실된 정열 표출을 꿈꾸었고 또 그것을 이루고 만 것이다.사실 이 세상엔 처음부터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태어난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인간이 그런 아무것도 아니었던것에 특별한 의미를 하나하나 부여하는 것을 즐기므로.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나도 무의미하게 느껴질 세상에서 살아갈 의미와 힘조차 사라질지 모르니까 그러는 것일지도. 나 역시 그렇다. 무의미하고 별 것 아닌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찾아주기 위해서 내 삶에 빛을 비춰줄 그 '무언가'를 찾고 싶다. 마사키처럼 내'정열'을 고스란히 바쳐도 아깝지 않을 그 무언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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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시
게오르규 지음 / 중앙출판사(중앙미디어) / 199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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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시......무슨 미스테리물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겨나는 책제목은읽기 전부터 나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25시...그것은 인간 문명이 사라지고 기계 문명에 지배되어 모든 것이 파괴되어 버린 후의 최후의 시간 다음의 시간이라고 게오르규는 말했다. 기계라는 것이 처음 등장하고 난 뒤 인간이라는 존엄한 존재는 그 인간이 만들어 놓은 고철덩어리에 의해 짓밟히고 지배당하는 그런 시대임을 느낄 수 있다. 기계의 발명으로 전쟁이라는 것은 더 튼 잔혹함으로 세계적으로 퍼져 나갔고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인간이 보여준 잔인함은 극에 달했다.

그러나 게오르규는 제 2차 세계 대전의 페단을 유럽인들의 시각으로 펼치기 보다는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약소 국가의 순진한 농부 요한 모리츠를 통해 이끌어 나갔다. 또한 '트라이안 코루가'라는 25시를 주제로 글을 쓰고 있는 작가를 등장시켜 게오르규의 생각을 풍자스러운 필체로 꾸며 나갓다.

나는 트라이안의 그 문체와 고뇌를 통해 나오는 그의 정신 세계가 좋았다. 그렇기에 그가 겪은 아픔이나 정신적인 고통에 공감할 수 있었고, 그가 자살을 결심하고 금지선을 넘어 철조망을 향해 다가갈 때에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느낀 안타까움은 그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백 다섯 군데의 수용소를 전전하면서 고문과 기아에 허덕이던 요한 모리츠는 겨우 석방되어 아내와 아이들의 품으로 돌아가지만 그는 불과 8시간의 자유를 누린 채 합법적이고 인도적인 것처럼 위장하고 있는 미국 소속의 수용소에 다시 감금된다. 그의 감금은 또 다른 시각을 의미하고 있는 듯했다. 끝나지 않은 인간과 기계 문명사이의 전쟁

<25시>라는 책은 내가 충분히 이해하기는 어려운 책이었다. 따라서 게오르규가 말하고자 한 것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25시를 읽으면서 게오르규가 세계의 미래를 그렇게 부정적으로 볼 수밖에 없었던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그 당시의 미래는 분명 절망적이고 미래의 희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세계는 게오르규의 말처럼 구원이나 희망의 길마저 막혀버린 절망적인 시간은 아니다. 아직 세상에는 사랑이라는 것과 희망이라는 것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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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9
장 코르미에 지음, 김미선 옮김 / 실천문학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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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그는 아침 이슬 같이 맑고 빛나는 눈동자를 지녔으며, 이슬처럼 짧은 생애를 산 아주 매력적인 한 남자이다.

20세기를 바꾼 인물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는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의 의사 출신인데 59년 쿠바 혁명의 여웅으로 카스트로와 나란히 입성하게 된다.그러나 게바라는 혁명가란 인간적인 존재로 머무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혁명영웅으로서의 화려하고 보장된 생활을 버리고 새로운 혁명의 전장으로 떠난다.그리고 1967년 10월 9일 볼리비아 군대에 체포되어 처형을 당한다. 그가 죽은 지 30년 만에야 그의 유해응 볼리비아의 밀림 속에서 발굴되었으며, 그의 유해가 발굴된 97년 당시 우리나라에의 신문들도 게바라에 대해 크게 보도를 하였다.

20세기 유럽 최고의 지성으로 일컬어지는 사르트르는 60년 쿠바 방문 당시 만난 게바라에게 '체, 당신은 우리 시대의 완전한 인간입니다'라고 말했다.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순수한 인간애, 끊임없는 독서와 일기 쓰기를 통해 자기 완성의 노력, 신념을 실현하는 강인한 행동력, 완벽한 외모, 이런 것들에 이끌려서 저는 게바라를 흠모하게 되었다.
아침 이슬을 보면 영롱하게 빛나는 게바라의 눈빛이 떠오른다. 모든 억압과 속박으로부터 해방을 꿈꾸던 혁명가, 우리 시대의 완전한 인간....그가 바로 체 게바라 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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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정원 - 상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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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데 있는 그리운 이에게서 오랜만에 편지가 오면 선뜻 뜯을 수가 없다.<삼포 가는 길>부터 참 좋아하게 된 작가 황석영이 <무기의 그늘> 이후 12년만에 새 소설을 내놓았는데도 선뜻 읽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동서남북으로 안팎으로 역사의 소용돌이를 온몸으로 다 겪은 큰 작가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으로 서성이다가 그러다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귀하고 맛나는 것을 아껴서 먹는 아이처럼 한 줄 한 줄 천천히 읽어 나갔다.

재밌는 이야기에 끌려서 책장을 넘기노라면 시원시원한 묘사에 아름다운 우리말 문장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딱 들어맞는 예쁘고 고운 우리말을 골라서 정성스럽게 엮어나가는 작가의 혼을 느낄 수 있다.

감나무며 밤나무 소나무 오리나무 등 우리 마을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정겨운 나무들이 서 있고 나팔꽃 분꽃 채송아 봉숭아 과꽃 등 온갖 풀꽃들이 여기저기 피어 있어 푸근한 뜨락이나 호젓한 오솔길을 거니는 것 같다. 길을 걷다 큰 나무를 만나면 그 그늘 아래 느긋하게 쉬어가는 것처럼 소설을 읽으면서도 나무나 풀꽃 가까이 서면 마음이 느긋해진다.

군데군데에 따끔따끔하게 꼬집기도 했지만 작중 인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눈빛, 아픈 역사를 보듬어나가는 넉넉한 품이 작품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다. 어쩌다 내가 아는 사람이나 작품,나와 비슷한 생각이 나오면 작가와 공유하는 것이 있다는 것에 뿌듯하기도 하다.

미술을 가르치고 있던 한윤희는 오현우에게 무릉도원이라고 갈뫼를 소개했다. 이 곳 갈뫼에서 현우와 윤희는 꿈결같은 사랑을 나눈다. 촛불로 세상에서 멀어진채 고무신을 신었으며 냇가에서 윤희가 빨래를 하는동안 현우는 낚시하여 먹거리를 마련하는가 하면,텃밭을 가꾸어 갖가지 싱싱한 푸성귀를 먹고 아궁이에 불을 때며 살았다. 폭력이나 억압의 공포가 없을뿐만 아니라 가까운 땅에서 스스로 기른 푸성귀를 밥상에 올리는 작은 삶이야말로 황석영이 <오래된 정원>에서 꿈꾸는 삶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삶, 이런 사랑을 꿈꾸어 본다.갈뫼에서 지낸 작고 짧은 삶은 '전쟁의 폭력과 굶주림과 억압의 공포가 없던 태곳적 아름다운 아시아의 무릉도원'이었다. 그것을 작가는 <오래된 정원>이라고 이름 붙였다.

우리들은 대개 오래된 정원을 꿈꾸어 볼뿐 그것의 실현이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실현시켜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폭력과 굶주림과 억압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은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며, 자기의 신념을 위해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그리고 생명까지도 던진다.

<오래된 정원>은 '삶에 대한 꿈을 추구한 세상'을 그린 소설이다.작가는 윤희가 죽기 전에 쓴 마지막 편지의 마지막 구절-힘든 적도 많았지만 우리 이 모든 나날들과 화해해요.-을 통해서 지난 20년을 정리한다. 작가라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야 있겠는가마는, 이 작품에서도 작가는 참 많이 절제하고 누그러뜨렸다는 것을 알겠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상을 위해 그는 화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부드럽고 따뜻한 문체로 화해를 말한다.윤희가 현우를 감싸안고 사랑한 것처럼, 현우의 딸 은결이를 정희부부가 사랑으로 길러내는 것처럼,서로 받아들이고 감싸안고 사랑하고 화해해야 <오래된 정원>을 찾을수 있다고 말한다.광주에서,서울에서,평양에서,베를린에서,뉴욕에서 그리고 감옥으로 이어지며 20년동안 온 몸으로 겪은 역사를 정리하며 그는 화해를 말한다.

<삼포 가는 길>에서 이미 삼포를 잃어버린 것처럼, 이제 우리에게는 갈뫼도 없다. 현우가 찾아 나선 '오래된 정원'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갈뫼는 사라져도 갈뫼의 딸 '햇빛이 강물에 반짝이는 것'을 뜻하는 은결이는 이제 열여덟 소녀로 자라나고 있다.

건강하고 당당하게 자라고 있다. 내 곁에서도 수많은 은결이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이들이 어른이 되면, 우리 역사의 강물에도 환하게 햇빛이 비치겠지. 케테의 석판화에서 '세 아이를 외투자락에 가리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우리는 이들을 이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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