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을 말해줘
이경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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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을 벗으면

한 번도 버림받지 않은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오랜만에 읽는 SF소설이었다. 20대 이후에는 소설을 잘 읽지 않았지만 이 책은 국내 최초 재난, 공포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있어 내용이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다. 책은 단숨에 읽혔다. 몸에 허물이 자라나는 사람들, 거북이 등껍질같은 허물안에서 죽는 사람들의 대한 얘기는 충격적이었다.

차라리 죽었기를. 그녀는 빌었다.

버려진 것보다는 나았다.

허물 같은 양막을 뒤집어쓴 아이가

낯선 병실에서 혼자 울부짓는 상상은,

끔찍했다....(중략) 그녀는 허물 입은 여자의 자궁에서 태어났다.

p.23

물난리로 인해 동물원에서 탈출한 비단뱀이 사람들에게 발견되자마자 방역센터는 총을 쏴서 뱀을 죽인다. 하지만 뱀이 총을 맞는다고, 몸이 잘린다고 죽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주인공인 "나"는 그 비단뱀이 차라리 죽었기를 바랬다. 그 잘라진 몸에서 살아있는 몸들이 주인공 본인 같음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 책에서 허물은 중의적인 뜻을 가지고 있었다. 뱀이 허물을 벗는것과 사람들의 몸에서 자라는 허물 이 두가지 속에서 허물이 가지는 의미 또한 매우 상징적이었다.

허물을 벗고 싶다.

엄마가 버린 허물 같은 아이,

버림받아도 좋다는 표식 같은

이 허물을 벗어버리고 싶다.

p.26

허물 입은 엄마에게서 태어난 주인공은 태어나자마자 허물을 벗기위해 떠나버린 엄마때문에 보육원에서 자라난다. 자신의 몸에 허물이 생겨나자 주인공인 "나"는 이 허물이 엄마에게 버림받은 자식의 표식으로 느껴져 더 좌절한다.

"예로부터, 롱롱이 허물을 벗으면

세상의 허물이 죄다 벗겨진다고 했거든."

p.61

허물을 벗기위해 방역센터에 입소한 그녀는 방에 있던 사람들과 방역센터 퇴소 후 신비의 뱀 롱롱을 찾아 허물을 벗고 다시는 허물을 입지 않기를 소원했다. 그녀는 그리고 D구역의 사람들은 롱롱이 허물을 벗는 순간 세상의 허물이 벗겨지고 다시는 허물을 입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롱롱을 찾으면 정말 허물을 벗을 수 있을까.

영원히 허물을 벗으면

한 번도 허물 입지 않은

사람처럼 살 수 잇을까.

한 번도 버림 받지 않은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p.72

이 부분은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부분이었다. 허물을 벗는다고 허물입은적 없던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이 부분에서 왠지 작가가 이렇게 묻는거 같았다. "지금 이 상처를 치료한다고 한번도 상처입지 않은 사람처럼 살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상처가 낫고 새살이 돋아나도 한번 입은 상처를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우리는 온전히 치료하고 상처입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미 그 상처를 알아버렸는데 그 상처가 얼마나 아픈지 알았기에 아마 우리는 그 상처를 다시 입지 않기 위해 몸부림 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우리는 이미 상처입기 전의 내 모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상처에 대해 상처입지 않은 것처럼이 아니라 그 상처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혹은 그 본질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도시에서 공포는

거짓을 진실로 뒤바꾸는 알리바이입니다.

공포는 실재하니까 거짓은 없다는

논리입니다. D구역은 이 거대한

알리바이의 중심에 있습니다.

D구역 없이 이 도시는 존재 할 수 없습니다.

백신이 개발되면 D구역도 사라집니다.

방역 센터가 공들여 만든 시스템을

제 손으로 무너뜨릴 리 없습니다.

p.154

'롱롱'을 사육하면서 그녀가 마주한 진실은 너무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D구역에 백신없이 허물이 계속 남는 이유가 T프로틴을 팔기 위해서라니. 도시 자체가 D구역의 허물을 이용해 경제활동을 밑거름삼아 발전하는 계획구조이기 때문에 허물을 없애지 않으면서 적당한 인구를 관리하기 위해 방역센터를 만들고 프로틴을 판다니. 이게 사람의 목숨, 한 사람의 생을 이용할 수 있는 일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보험 영업이란게 말입니다,

실은 불안을 퍼뜨리는 일입니다.

허물에 대한 불안을 수치로 증명하고,

만일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고

고객을 설득하죠.

허물이야말로 이 도시에 존재하는

제일 큰 불안이지 뭐겠습니까.

p.179

보험회사 직원의 말은 아마도 이 책에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불안을 퍼트려 영업을 하고 돈을 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불안과 걱정 중에 실재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을 믿고 무엇이 사실이며 무엇을 대비하고 있는 것일까. 보험사, 제약회사의 이야기는 단지 소설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만들어내는 공포는 누가 어떤 이익에 의해 만들어내는 것일까. 그 중에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건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이 생겨났다.

전설은 전하는 입마다 다르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을

다음 사람에게 전하기 때문이야.

믿음은 저절로 싹을 틔우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믿을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는 게야.

p.201

신비의 뱀, '롱롱'의 허물을 벗기를 기다리는 동안 소원기도를 올리던 노파는 주인공인 내가 말하는 허물에 대한 이야기에 이렇게 말한다. '롱롱'이 허물을 벗으면 세상의 모든이의 허물이 벗겨지고 다시 허물을 입지 않는다는 주인공의 말에 노파는 모든 전설은 본인이 믿고 싶은대로 만들어지는 것이며, 무엇을 믿을것인지는 나의 선택이라고 말이다.

공포가 이념이 되고,

이념이 공포를 강화시켰다.

그 불행한 순환 속에 유일하게 실재하는 건 허물뿐이었다.

p.277

결국, 이 소설에서 실재하는 건 "허물" 그 하나였다. 공포는 허상이었고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한 도구였으며 이익을 취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낸 허물이라는 공포속에서 사람들은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갈 기회를 읽었으며 꿈도 없이 살았던 것이다.

단숨에 읽히는 소설에서 한가지 아쉬운 점은 '롱롱'이 잡혔다가 다시 궁으로 돌아가는 부분이었는데 이 부분에 대한 묘사가 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읽은 흥미로운 SF소설이었고, 만약에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면 그 또한 엄청난 재난공포영화가 될 거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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