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라비아의 친구 파졸리니는 1950년에 이 소설을 읽고 어떻게 생각했을까? 18년 뒤 파졸리니는 <테오레마>에서 하녀를 땅에 깊이 파묻었고, 아버지를 광야에 유배 보냈다. 전후 당시에는 파시즘이 하나씩 뿌리채 뽑을 수 있는 것으로 보였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