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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가 ‘Measure for measure’인 이 작품은 지금까지 ‘이척보척(以尺報尺)’이란 생소한 말로 옮기곤 했다. 이는 성경을 모르던 일본인들이 축자적으로 옮긴 것을 아무 생각 없이 답습한 결과이다. 하지만 ‘Measure for measure’는 글자 그대로 ‘자에는 자’, 혹은 ‘말은 말로 되는 되로’라는 뜻이 아니다. 세상에 이런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말은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라는 마태복음 5장 38절에 나오는 격언을 가리킨다. 따라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정도로 옮겨야 마땅하다.

한마디 더 덧붙이면 역자 신정옥 교수는 전반적으로 셰익스피어 번역에서 기존의 한국어 번역본을 거의 그대로 따라 간 흔적이 역력하다. 새로운 관점과 참신한 표현을 시도하려는 모험 정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오늘날 셰익스피어 번역의 대세인 운문 번역이라도 시도해 보았다면 나름대로 그 가치를 인정해 줄 텐데……. 특징이 없는 번역이 특징이 되어 버린 형국이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셰익스피어에 관한한 완벽한 번역이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미 학계에서 널리 인정되거나 권위 있는 학설을 수용하여 번역하려는 성의라도 보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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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2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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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철 교수의 셰익스피어 번역은 오늘의 실정에 맞는 우리말 번역을 하겠다는 민음사의 세계문학 시리즈 기획 취지와 부합하지 않는 경우이다. 억지로 율격을 맞추려다 보니 번역해서는 안 되는 관사 같은 것을 번역하는가 하면 자연스러운 우리말 어순과도 배치되는 요령 부득의 번역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번역문을 여러 번 읽어도 그것만 가지고는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부지기수이다. 특히 예전에 출판되었던 <햄릿>은 의미 전달이라는 측면만 놓고 보았을 때 거의 최악의 번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오래 전에 출간된 정음사와 휘문출판사 번역본을 옆에 놓고 비교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그때 정말 이 책을 집어던질 뻔했다.) 이제 그런 헛수고는 절대 하지 않으련다. 원전이 운문으로 되어 있다고 하여 번역본도 반드시 운문으로 옮길 필요가 있는가. 물론 운문으로 옮기면서 의미를 고스란히 살린다면 그야말로 최상의 일이겠지만 의미 전달을 훼손하면서까지 운문 형식을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서점에서 잠깐 <한여름 밤의 꿈>을 살펴보았는데, 예전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얼른 덮어버리고 말았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생각해 봐야 할 점은, 과연 우리말에 율격이란 것이 존재하기나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물론 시조나 가사 같은 장르가 자수를 고려한 음보율로써 율격을 형성한다고 하지만, 오늘날 그것이 우리에게 계승되어 가슴 깊이 다가오는 형식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한국 현대시에서 시를 시답게 하는 형식적 요소는 글자 수의 인위적 조정이 아니라 표현의 반복과 병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굳이 오늘날 그것도 번역 작품에서 글자 수를 고려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따져볼 일이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셰익스피어는 이미 김재남, 신정옥 두 사람의 초인적인 노력에 의한 개인 전집과, 많은 영문학자들의 공역에 의한 훌륭한 전집이 출간되어 있다. 특히 동국대 교수였던 김재남 선생의 세 번에 걸친 셰익스피어 번역은 후학들이 감히 따를 수 없는 고봉준령의 전설이 되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그 전집은 오래 전에 번역되었지만 오늘날 읽어도 쉽게 이해가 되는 좋은 번역본의 전범이다. 안타깝게도 이미 절판된 지 오래라서 이제는 헌책방에나 가야 찾을 수 있게 되었지만.

마지막으로 민음사에 한 마디 하면 이미 많은 번역본을 가지고 있는 유명 작품의 출간에 급급해하지 말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예전에, 그것도 시리즈 초창기에 내겠다고 예고한 작품들(예컨대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은 감감무소식인 채 거의 완벽하게 현대어로 옮겨진 <삼국유사> 같은 책을 내는 일은 이제 그만두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도 규모가 되었으면 예전에 절판된 책을 재계약하여 새 책인 양 내는 얌체 짓도 삼가기 바란다. 대중성과 수익성을 떠나 미련스럽게 처녀지만 개척하려는 문학과지성사의 유사 시리즈를 본받으라는 말은 아니다. 세계문학 시리즈로 돈을 벌었으면 그에 상응하는 투자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아쉬움을 전할 뿐이다.

그나 저나 언제가 돼야 유르스나르 누님의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이 번역되어 나오려나. 생각건대 번역자인 곽광수 선생의 직무유기가 큰 몫을 하는 것 같은데. 이것도 예전에 이휘영 교수가 번역한 것만 못한 것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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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01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 너무 공감합니다.. 오죽했으면 서점 한구석에 앉아 민음사 최종철 역과 다른 번역본들을 일일이 비교해 보다가 결국 전예원 신정옥 역으로 구입했겠습니까. 전에 민음사 햄릿을 샀다가 뜨악한 적이 있어서요. 이게 한글인지 외계어인지 몰라서--; 내용 파악이 안 되니 읽은 건지 만건지 모르겠더라구요. 번역은 어렵지만, 그래도 심사숙고해 번역본을 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완전 공감~^^;;
 
원미동 사람들
양귀자 지음 / 살림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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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귀자는 비문과 악문을 잘 쓰기로 '정평'이 나 있는 작가이다. 이런 작가의 글이 현재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와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버젓이 실려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이다. 잘 알려진 <한계령>이라는 작품에 이런 문장이 보인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마다 실패할 수 없도록 이를 악물게 했던 힘은 그가 거느린 대가족의 생계였었다." 이 문장은 '힘은'이라는 주어가 '생계였었다'는 서술어와 호응을 이루고 있는데, 논리적으로 허술하고 주술 호응이 되지 않는 어설픈 구조를 취하고 있다. '생계이다'라는 말 자체도 우리말의 조어법으로 보아 어색하지만 이것은 결코 서술어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에서 비롯되었다'나 '~로부터 나왔다'라는 식으로 바꾸어야 자연스러운 문장이 된다. 또 "우리 형제들은 물론, 조카들까지 제 아버지에게 이사를 하자고 졸랐었다."라는 문장은 우리 형제들(아버지의 형제들)과 조카들이 모두 '제 아버지'의 자식으로  해석되어 가족 관계를 뒤죽박죽으로 만들고 있다. '물론'이라는 말 다음에 쉼표를 사용한다고 해도 애매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소한 실수를 가지고 트집을 잡는다고 할 수도 있지만, 생각 있는 작가라면 이런 문장은 쓰지 않을 것이다.

    이익섭 선생의 글을 보면 그녀의 글에서 어법적인 잘못은 비단 이것뿐이 아니라 허다하게 발견된다. 나는 작가에게 모국어를 정확하게 쓰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런 작품을 마치 우리 시대의 정전인 양 선전하는 일부 몰지각한 평론가와, 교과서 저자, 나아가 교육부 관계자들의 한심한 안목이 문제라는 것이다. 잘못된 문장을 우리말의 전범으로 알고 공부할 학생들이 안쓰럽기 때문이다. 문학적인 가치를 따지기 이전에 우리말을 심각하게 훼손시키는 작가를 교과서에서 추방시켜야 한다는 데에는 이론이 없을 줄 안다. 실상 문학적인 가치란 것도 말의 적확하고 창의적인 쓰임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사상누각이겠지만.

   작가는 모름지기 한 문장을 쓰기 위해서도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이다. 이를 위반하는 작가는 아마추어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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