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유령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12
가스통 르루 지음, 정지현 옮김, 규하 그림 / 인디고(글담)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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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25주년 내한 공연 온다는 소식에, 보러 가고 싶었지만, 보는 대신 책으로 함께하게 되었다. 오페라의 유령은 중3 음악시간에 선생님이 보여주셨던 영상의 한부분이 내 기억 속에 남아있었다. 꽤 강렬히 내게 남아있었나보다. 독서모임 때까지 읽어야해서, 조금은 급하게 읽었지만, 인디고 책 특성상 중간 중간 이쁘게 그려진 일러스트들이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그것이 단점이 되기도 했는데, 내가 상상해 볼 수 있는 부분들을 놓친 것이다.

 

참, 읽을땐 이 책을 완독하고 가야겠다는 생각 아래, 읽기에만 집중했는데 책을 읽고 독서모임을 하고, 나오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집에와서도 자꾸 생각이 났다. 오페라의 유령, 에릭이. 잘 못 느꼈는데, 생각할수록 불쌍한 느낌이 든다. "(...) 언제까지 이렇게 굴속의 두더지처럼 살 수는 없어! <돈 쥐앙의 승리>가 드디어 완성됐으니까 나도 이제 다른 사람들처럼 살고 싶어. 다른 사람들처럼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고 일요일마다 같이 외출도 하고 싶어. 보통 사람처럼 보이는 가면도 만들었어. 밖에 나가도 힐끔거리지 않을 거야.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가 되겠지. 우리는 황홀감에 빠질 때까지 함께 노래 할 거야. 당신, 울고 있군! 난 두려워하는 건가. 하지만 난 사악하지 않아. 날 사랑하면 당신도 알 수 있을거야! 내가 원하는 건 내 모습 그대로 사랑받는 거야. 날 사랑해준다면 양처럼 순해질게. 당신이 바라는 대로 뭔든 될 거라고." (p.357) 오페라의 유령, 에릭은 알고 있었다. 자신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을 수 없는 얼굴이라는걸. 그렇기에 내 재능도 그대로 비춰질 수 없다는걸. 아무리 사람들은 외모로 모든걸 판단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첫인상으로 기억되는 건 그 사람의 외모, 그 사람의 표정이다. 그런데 이미 두려움에 가득 차 있는 사람의 표정이 밝을 수가 있겠나. 그렇기에 자신을 조금 다르게 봐주었던 크리스틴에게 더 집착할 수 밖에 없었고, 협박을 해서라도 붙잡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녀를 잃는다면, 다시 자신은 혼자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놓고 싶지 않은 것이다. 세상과 연결되는 끈을. 그 방법은 서툴지라도.

 

크리스틴은 언제나 2인자였다. 그렇기에 오페라의 유령, 에릭의 도움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신분적 한계, 그리고 2인자에서 1인자 사이엔 어떤 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벽을 에릭이 허물어주었다. 그래서 목소리를 찾을 수 밖에 없었고 그를 쉽게 버리지 못한 것이다. 누구나 최고가 되길 원하지만, 나는 여기까지 밖에, 생각하며 두려운 마음에 더 못 올라가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그 기회를 만들어주니 얼마나 좋겠나. 그렇다고 라울을 버릴 수도 없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둘 다 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은 영악하게 보일 수 있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결국 자기 이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을까?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고, 그렇기에 자신의 욕망에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모두 퇴임을 앞둔 두 관장이 즐거워 보인다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파리의 방식이었다. 슬플 때 명랑해 보이는 가면을 쓰지 못하거나 기쁠 때 슬픔이나 지루함, 무관심의 가면을 쓰지 못하면 진정한 파리지앵이 아니었다. 이를테면 곤경에 빠진 친구가 있어도 위로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벌써 괜찮다고 말할 테니까. 하지만 엄청난 행운을 만난 사람을 축하해 줄 때는 조심해야 했다. 행운을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에 오히려 축하받는다는 사실에 놀랄테니까. 이처럼 파리지앵들의 생활은 가면무도회와 같았다. 드비엔느와 폴리니처럼 '알 만한' 사람들은 슬픔이 아무리 커도 무도회장 같은 자리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실수 따위는 하지 않았다.(p.55)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 이건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sns, 카톡 등을 통해 소통 할 수 있는 기회는 늘어났지만 그 양에 비해 질은 현저히 떨어지는 느낌이다. 점점 더 드러낼수록 한편으론 점점 더 숨어들어간다. 모두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을 하고 싶지만, 이 말을 하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내가 되려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 오페라의 유령은 자신의 외모 때문에 가면을 썼지만, 우리는 또 다른 이유로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다. 소통을 원하지만, 제대로 이뤄지지는 않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에릭이 불쌍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나와 닮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넌 언제 연애해볼래? 라고 물으면, 이것이 혼자되는 것이냐고, 나는 이것이 우선순위가 아니라고 말한다. 우선 그 두려움보단 지금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지 두렵고, 내가 이 길을 가고 있는 동안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건 아닐지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해본적이 없기에 두려운 것이다. 그 관련된 모든 것이, 누가 나를 좋아해줄까?부터, 언제까지 함께 할 수 있는 것인가?까지. 경험이 있다면, 그 속에서 배워나가고 이겨나갈텐데 그 경험이 없으니 마냥 두렵기만 한 것이다. 그래서 서툰 것이고, 방법이 잘못되기도 하는 것이다.

 

한 사람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는 절절한 사랑, 아마 이 사람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나를 바라봐주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에, 더 매달렸는지도 모르겠다.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리고 나는 그렇게 흐름을 잡고 읽어나가 그런지, 추리소설이라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 아마 비극적으로 끝나지 않았다면, 이렇게 기억되지 않았을까? 가슴 아프고 절절했기에 더 많이 생각하게 되고,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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