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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링크로스 84번지
헬렌 한프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혹 채링크로스 가 84번지를 지나가게 되거든, 내 대신 입맞춤을 보내주겠어요? 제가 정말 큰
신세를 졌답니다."
아주 특별한 만남에 대한 이야기, 20년간(1949년에서 1969년) 영국 채링크로스 84번지의 헌책방 주인과
미국의 한 작가가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놓은 책. 둘의 관계를 언뜻보면 주인과 고객, 둘 사이에 주문서와 청구서라는 상업적인 문서로, 상업적인
관계가 될 수 있었을텐데, 구하기 힘든 것, 희귀한 것을 구하는 자의 절심함과 그 절심함을 이해하기에 성실하게 구해주려는 주인, 까다롭고
저돌적이면서 정 넘치는 가난한 작가와 점잖고 진지하면서도 여유를 보여주는 책방 주인이 주고받는 편지 속에는 생활에 대한 푸념, 고마움, 그
시대의 상황들이 녹아내려 있었다.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되어 있고, SNS를 통해 정보를 구하고 많은 것들을 알 수 있다. 그래도 아직 직접
손글씨로 적는 편지보다는 별로라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에 글을 쓰는 것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며 글을 쓰고, 그 순간 만큼은 상대방을 생각하며
설레는 마음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이년전 쯤 한참 편지를 많이 주고 받던 그 때가 기억났다. 이 책 처럼 '책'을
통해 인터넷으로 만난 인연들이었고 스쳐지나갈 수 있는 인연이었지만 책 보다 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우체통에는 고지서가 아니라 정성스레
적은 편지가 있었고 그것을 기다리는 재미도 있고, 때론 치유받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만약 그 당시 책을 구하기 쉬운 환경이었다면, 지금처럼 해외여행도 자유롭게 이루어지던 상황이었다면, 이 작가가
유명한 작가였다면, 그 기다림과 간절함, 그 속에서 느끼는 따뜻한 정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고 이런 책도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사이의 인연은
한 찰나에 이루어진다. 처음 이 둘의 서점주인과 작가의 만남은 따뜻한고 호기심 많은 주위 사람들을 빨아들였고 이들은 하나의 원 같은 관계를
이어나갔다. '책'이라는 매개로 20년간 변함없이 편지로 우정을 나눈 그들이 아름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