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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동안 두 발로 누빈, 구석구석 이스탄불 - 한 도시, 두 대륙의 보물을 찾다 ㅣ 처음 맞춤 여행
원광우 지음 / 처음북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거의 평생 서울에 살았지만 여전히 낯선 곳이 많다. 한 도시에서만 일년이나? 하지만 곧바로 한 도시를 다 보기에 일년이 어쩌면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펼쳐들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작가의 이력이다. 뭔가 소박하다. 여행작가도 사진작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학과 인연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성실한 시민'의 이력이었다. 공대를 졸업하고 샐러리맨으로 지냈던 것이 전부라면 전부이다. 그리고 이스탄불에서 100킬로쯤 떨어진 곳에 근무하게 되면서 주말마다 이스탄불을 여행했던 이야기이다. 밥벌이를 위해 평일에는 직장일을 하고, 나름대로 '보람차고 계획적인' 날들을 보내기 위해 주말마다 다닌 여행기. '행복한 주말여행자의 기록'이라는 부제를 붙이고 싶은 책이었다. 전체적으로 굉장한 사진이 실려있는것도 아니고, 매끄러운 서정성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조금은 투박한 사진과 글들이자만 개인적으로 잘 아는 누군가의 여행담을 듣는 기분으로 편안하고 가볍게 읽혔다.
역사와 지리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라도 매혹되지 않을 수 없는 여행지가 바로 터키의 이스탄불이 아닐까, 생각된다. 무려 1600년 동안 수도였던 곳, 아시아와 유럽대륙을 모두 품고 있는 곳,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오스만 제국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유적이 분포해 있는 곳. 외계인에게 인류 문명을 소개하려면 가장 먼저 방문해야 할 곳인지도 모르겠다. 이 곳을 주말마다 여행할 수 있었다니, 작가는 정말 행운아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여건이 주어졌다고 모두 그렇게 구석구석 발품을 팔며 돌아다니고, 생생한 현재를 기록하고, 그곳의 과거를 탐구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작가는 그렇게 했고, 그것들이 책이 되었고, 이로써 작가가 에필로그에서 썼듯이 "시공을 초월해 터키에 닿아있을 타임머신을 장만"(301쪽)한 셈이다.
전체적인 구성은 작가가 다닌 이스탄불과 주변 지역을 크게 7개 지역으로 나누고, 각 지역별로 자세한 시작에 앞서 지역소개, 볼거리, 가는 길, 먹거리, 살거리를 간단히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지역의 여기저기를 찾아다니며 본 것, 먹은 것, 느낀 것들을 편안하게 풀어나간다. 지역별 소개는 짧지만 충분한 정보를 담기도록 정리가 잘 되어 있어서 실용적인 가이드북으로도 사용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일반적인 여행책자에서는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생략되거나 한 줄로 지나가버릴 작은 박물관이나 거리에 대해서도 감상과 소개가 적혀있는 점이 좋았다.
그 곳, 이스탄불에서의 생활은 어떨까? 어쩌면 도시에서의 삶은 비슷비슷한 것인지도 모른다. 때론 전혀 다른지도 모른다. 책을 읽다보면 거창한 부분이 아닌, 소소한 부분에서 정말 비슷하구나 싶다가도, 정말 의외라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었다. 궁정 근처에서 총을 든 무장경찰들을 발견하지만, 그 옆 공원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화롭게 산책하는 나들이객들을 보기도 한다. 박물관들과 그 유명한 그랜드 바자르는 하필 일요일이 휴일이라고 한다. 손님들이 몰릴만한 주말에는 문을 열고 월요일에 주로 쉬는 우리와는 생각하는 방식이 다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아무리 관광객이 몰러다녀도 매몰차게 일찍 문을 닫아거는 유럽의 가게들이 생각난다. 손님만 있으면 밤샘영업도 불사하는 우리네랑은 역시 다르다.
중간중간 작가가 자신의 급한 성격을 탓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그 곳 사람들이 얼마나 잘 웃는지도 자주 언급된다. 사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급한지, 얼마나 무표정한지 말 모른다. 우리끼리는 모른다. 하지만 그들을 보면 알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여행이란 바깥 세상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잘 보기 위해서 가는 것인지 모르겠다.
작가는 말한다. "이스탄불은 화수분처럼 끝없이 볼 것이 생겨나는 도시인 것 같다."(108쪽) 왜 아니겠나. 세상 어디도 보고자 한다면 볼 것이 없는 곳은 없겠지만 문명과 역사의 집합소 같은 곳이니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일단 그의 안내대로 책으로 여행한 이스탄불, 읽으며 그 곳에 며칠이라도 머물게 된다면 나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을까를 상상해 봤다. 아마도 참깨가 고소한 시미트를 먹으며 알록달록 히잡을 쓴 여인들이 있는 거리를 천천히 걷다가 오르한 파묵을 만나기 위해 순수박물관을 찾게 되겠지.
특별한 여행기나 꼼꼼한 정보를 기대한다면 살짝 실망할수도 있다. 하지만 방 구석 혹은 카페 구석에 앉아서, 그리 까칠하지 않은 편안한 동반자와 이스탄불 곳곳을 걷는 기분을 느껴볼 수 있는 책이었다. 다만 지도가 전혀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