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아한 관찰주의자 - 눈으로 차이를 만든다
에이미 E. 허먼 지음, 문희경 옮김 / 청림출판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는 관찰력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추리력(상상력)은 우리가 셜록 홈즈에게 매료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한번쯤 탐정을 꿈꾸기도 한다. (결국 한국에서 탐정은 불법이란걸 알게 되지만..) 이 책의 제목을 보고 곧바로 읽고싶어진 것은 아직 완전히 포기하지 못한 탐정에의 꿈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지은이는 미술사가이자 변호사이다. 그리고 지금 그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더 명확히 지각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변호사로 일하면서 목격자를 무조건 신뢰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지각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지각의 수수께끼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미술계로 돌아와 의대생들에게 미술작품을 분석하여 환자를 관찰하는 능력을 교육하게 되고, 큰 성과를 올리면서 이후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고 강의를 하고 있다.
사실 약간의 착오로 일이 크게 번거로워진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카푸치노 주문이나 백만 달러짜리 계약, 살인 사건 수사를 망칠 수 있다." (15쪽) 나아가 오늘날 성공한 사람들(빌게이츠, 오프라 윈프리 등)을 생각해보면 그들은 남이 못보는 것, 있어야 하는데 없는 것, 무엇이 문제인지 같을 것을 잘 보았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 아닌가. 스티브 잡스는 "창조적인 사람들은 어떤 일을 어떻게 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아마 조금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사실 그들은 그 일을 한 것이 아니라 그냥 보기만 했기 때문이다."(26쪽)라고 말했다고 한다. 새삼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는 오래된 경구가 떠오른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는 미술을 통해 관찰력을 키울 수 있다고 쓰고있다. 관찰과 지각과 소통 기술을 연마하는데 필요한 모두가 미술에 담겨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일상적인 것들을 보고 처리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미세한 차이나 세세한 부분을 더이상 보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오히려 아이들은 그림책 속 그림에서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찾아내기도 한다. "미술은 우리를 일상에서 벗어나게 하여 평소 보고 지각하고 소통하는 방식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34쪽) 잘 보려면 서두르지 않는 태도도 중요하다. 급하게 서두르면 미묘한 차이와 새로운 정보를 간과할 수도 있다. 관찰은 그저 '본다'는 수동적인 행동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이고, 두뇌활동까지를 포함한다. 그래서 셜록 홈스는 왓슨 박사에게 '자네는 보기는 하지만 관찰하지는 않아'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관찰은 "똑같은 것을 보며 의식적이고 신중하고 진지하게 생각하면서 기록하는 과정이다." (52쪽)
여느 기술처럼 관찰력도 연습으로 연마할 수 있다.
이 책의 기본 전제는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누구나 자신만의 지각 필터로 현실를 보기 때문에 그 필터를 보완해야 한다.즉 개인적 경험에 영향을 받고, 이것은 우리의 보는 방식을 왜곡하거나 향상하는 필터가 된다는 것이다. 가장 흔한 지각 필터는 '보고 싶은 것을 보기'라고 한다. 내용을 읽으며 임신 중일 때 임산부가 유독 눈에 많이 띄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이런 과정은 무의식 차원에서 일어나지만 특정한 결과를 기대하면 그 기대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더 열심히 찾게되는 것도 같은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의외로 쉽게 음모론에 빠지는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 이런 현상은 사실 보는 일에서 뿐 아니라 듣거나 읽는 일에서도 늘 일어나는 지각의 오류인 것 같다. 또한 '보라는 말을 들은 것을 보기' 역시 제대로 관찰하는데에 방해요소가 된다. 여러 정보가 보는 일에 도움이 되긴 하지만 작가는 그전에 먼저 직접 보아야한다고 강조한다. 먼저 보고나서 기존의 다른 정보나 의견을 참조한 후에 다시 봄으로써 최대한 다양한 관점으로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사한 사례나 사람을 처리해 보았을 뿐인데도 현재의 상황을 안다고 착각하는 경우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똑같은 나무도 날씨와 습도와 빛이 동일하지 않으면 모두 다르게 보이지만 우리는 그 변화에 무심하기 쉽다. "똑같은 폐렴, 똑같은 2학년생, 똑같은 사업 거래는 없다. 모든 사람과 상황은 그 나름대로 고유하다. 모두를 똑같이 대하는 것은 상대는 물론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94쪽)
책 중간중간 관찰력 연습에 사용된 그림들 중에 내가 애정하는 화가들, 르네 마그리트나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들이 있어서 반갑고 즐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제껏 그들의 그림을 그리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는 조금 놀라웠다. 화가들이 얼마나 섬세하게 대상을 관찰하고 표현하는지, 그런 그림을 우리가 얼마나 허술하게 보아넘기는지를 알 수 있었다. 멋진 그림을 그리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잘 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관찰의 기술은 결국 세상을 바르게 읽는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알고 있다고, 이미 경험했다고 착각하고 이른바 '꼰대'가 되어가지만, 작가가 언급했듯이 모든 사람과 상황은 그 나름대로 고유한 것이다. 늘 새롭게 보고, 제대로 보고, 선입견이라는 지각 필터를 인식하면서 보는 일은 우리가 주변을 바라보는 공정하고도 바른 자세를 배우는 일이 아닐까.
'한눈에 모든 것을 기억하는 FBI 관찰수업'이라는 다소 딱딱한 문구의 띠지가 둘러져 있던 이 책을 덮으며 내게 떠오른 것은 시 한 구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