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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군중
유성식 지음 / 드러커마인드 / 2026년 5월
평점 :
뇌가 멈춰버린 아이들 앞에서 — 『디지털 군중』을 읽고
쉬운 문제 앞에서 아이가 멈춘다.
모르는 게 아니다. 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냥, 멈춘다. 생각하는 과정 자체가 작동을 안 하는 것처럼.
그 장면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말을 잃는다. 이게 무엇인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디지털 군중』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도파민이 설계한 교실
저자는 디지털 중독의 구조를 이렇게 도식화한다.
접속 → 즉각적 자극(도파민 효과) → 강박적 사용 → 집중력·인내·관조의 상실 → 사유의 중단 → '팝콘 브레인'
팝콘 브레인. 짧고 자극적인 것에만 튀어오르고, 조금이라도 지루하면 꺼져버리는 뇌.
나는 이 단어를 읽는 순간 교실이 떠올랐다.
수업 중 멍하니 앉아 있는 아이들,
문제를 보고 5초도 안 돼 포기하는 아이들,
선생님이 설명하는 동안 눈은 칠판을 향하고 있지만 어디에도 없는 아이들.
게으른 게 아니다. 뇌가 그렇게 훈련된 것이다. 유튜브 쇼츠와 틱톡이 매일 수백 번씩 즉각 보상을 줬으니, 2분 이상 혼자 생각하는 근육이 만들어질 틈이 없었던 것이다.
플랫폼은 아이들의 주의력을 팔아 수익을 창출하고, 그 대가는 교실에서 치러지고 있다.
📒혼자 있는 능력을 잃어버린 세대
책에서 가장 마음에 남은 문장은 일본의 사이토 다카시의 말이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없다면 자신의 샘을 파내려갈 시간도 없다."
아이들이 혼자만의 시간을 오롯이 즐길 줄 알게 되길,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멍하게 창밖을 보거나, 별 이유 없이 낙서를 하거나, 아무 생각 없이 걷거나 — 그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사실은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그러나 지금 아이들에게 그 시간은 없다. 잠깐의 공백도 스마트폰으로 채운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는 법을 배운 적이 없으니, 혼자 있는 것이 두렵고, 두려우니 더 깊이 접속한다. 저자의 말처럼, 소셜 미디어는 고독을 피하게 해주는 것 같지만 결국 더 외롭게 만든다.
📘연결되었지만, 사유가 없다
책은 디지털 군중이 개인의 뇌를 넘어 사회 전체를 어떻게 바꾸는지까지 추적한다. 디지털 아비투스가 팬덤 정치와 반지성주의로, 다시 민주주의의 타락으로 이어지는 구조. 숙의와 협치가 사라진 자리에 분노와 말살의 정치가 자리잡는 과정.
교실에서 사유가 멈춘 아이들이 자라면 어떤 시민이 될까. 쉬운 문제 앞에서 멈추는 뇌가, 복잡한 세계를 마주했을 때 어떤 선택을 할까. 그 질문이 책을 덮고 나서도 오래 남았다.
📚그래도, 바라는 것
나는 매일 그 멈춤을 마주한다. 그리고 매일 그 멈춤을 깨우려 애쓴다. 쉽지 않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이유도 거기 있다.
『디지털 군중』은 불편한 책이다.
읽는 내내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싶어지고, 동시에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이들이 안쓰러워진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책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아이들이 언젠가,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곳에서 혼자 깊이 생각하는 법을 알게 되길. 그 시간이 두렵지 않고 오히려 풍요롭다는 것을 느끼게 되길. 아이들과 함께하는 한, 나는 그것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