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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인의 시선 - 연대보다 강력한 느슨한 연결의 힘
김민섭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9년 10월
평점 :
올해 가을 후반기에 읽은 의미 있었던 이 책은 일단 제목이 마음에 닿았다. 카뮈의 '이방인'이 아예 낯선 인물이라면, '경계인'은 한 발은 이 사회에, 한 발은 어정쩡하게 들고 있는 그런 인물일 것이고, 이런 부류는 어디서나 존재하는 인물일 것이다. 어느 편인지, 심지어 어느 색깔을 가진 사람인지까지 즉시 결정해서 꼬리표를 매기는 가끔씩 이해가 가지 않는 이 사회의 이상한 분위기 속에서, 경계인은 오히려 친근하게 느껴지며, 아마도 숨어서 소극적으로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집단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단정 짓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기회주의자, 회색분자라고 함부로 또 단정 짓지 않는다면, 아메바처럼 크기를 임시로 그때그때 증식하며 어디든 존재감을 드러낼, 흔한 분포의 사람들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비교적 젊은 나이의 작가이다. 하지만 세상을 보는 통찰력이 정확하고 예민하고, 선입견 등이 없어 오히려 신선하다고 느꼈다. 대학 강사를 하면서 느꼈던 부조리를 책으로 내서 화제가 되기도 했고, 대리운전을 한 경험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경계인의 시선'은 전반부는 대학 강사들의 처우 개선에 관한 그간의 경험을 좀 더 소개하고. 후반부에는 젊은 층과 기성 층 사이의 세대, 혹은 사회에서 을의 처지를 통과하는 경계인로서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부분들을 아프게 꼬집으면서도 여러 수긍 가능한 본인의 대안적인 각들을 책으로 쓴 것이다.
사회에서 지위, 부, 명예, 나이 등등 무엇이든 이미 많이 가진 세대들은 알더라도 그다지 관심 없는 그 어떤 예민한 부분들이, 그 몇 배나 되는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절실한 문제일 것이다. 그런 부분들은 밑에서부터 겪어온 사람이 정확하게 기술해지 않으면 계속 반복되며 개선되지 않고 누적될 뿐이다. 그러기에 저자는 기성세대가 '내가 젊었을 때는 말이지... "하며 힘든 시절을 '추억'하는 것을 아주 경계한다. "난 그런 것들을 다 통화해서 누릴만한 사람이지, 내가 얼마나 잘해 왔는지." 하고 지난 과거의 추억을 후배들에게 늘어놓고 끝에는 결국 나는 그래서 존경받을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는 대다수 사회의 선배들은, 그 힘든 시절을 그냥 흥미롭게 추억하기만 하는 것을 그만두라고 강조한다. 최소한 똑바로 직시하고 어떤 점이 문제였고, 불합리했으며, 어떤 점이 꼭 기억되어야 할 것들인지 명확히 경험치에서 복원하여, 자신은 그것들을 밟고 올라가는 기존 기성세대와는 같아지지 말고, 명징하게 그것들을 '기억'할 것을 제시한다.
이는 크게 보면, 참으로 인류사에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도 이런 포인트가 바로 조금이라도 인간이 서로 더 잘살게 되는 부분이다. 사회의 큰 문제나 개인의 행복을 크게 좌지우지 하는 인간관계 등에 많은 부분이 사실은 근본적으로 크게 개선되지 않고 결국은 누적되고 곪은 이유가 무엇인가? 많은 복합적인 부분들이 얽혀 있겠지만, 개인들이 결국 사회를 바꾸는 구성원이기에, 이미 경험한 개인이 안이하게 그 사회를 방관하고 자신의 추억거리로만 방치한다면, 그 밑 세대들은 고스란히 그 모습을 보며 절망감을 느끼고, 그것을 이어받은 채 또 무기력하게 문제들을 반복할 것이다. 조선 시대 임진왜란이 끝난 후, 편하게 전공을 누리며 여생을 보내도 되었을 류성룡이 징비록을 쓰며 후손에게 잊지 말아야 할 뼈저린 것들을 남기고 눈을 감으신 것도 이런 점을 경계하며 책을 쓰신 것이다. '추억하지 말고 기억하라'가 이 저자가 강조하는 한 문장인데, 정말 기억할 만한 문장이라 생각된다.
그 외에도 예리한 시점들이라 짚고 넣어가야 할 부분이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글들이 책 중반부터 많이 나와 있었다. 저자가 말하는 경계인의 시선은 통과해서 잊혀져야 할 시선이 아니라, 늘 새롭게 모든 세대와 모든 측면에서 우리가 지켜야할 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이 저자가 초심을 잃지 말고, 앞으로 더욱 사회에 곯은 부분들을 서서히 하나하나 깨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으면 하며 기대와 뿌듯한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