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원제 : The Sense of An Ending (by Julian Barnes)

 

서점에 가는 대신 편리하게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한 지 오래,

그러면서도 아직 E-book은 익숙하지 않은 걸 보면 약간은 이상하다.

어쨌든 직접 서점에서 책을 후루룩 넘기며 읽어볼 만한지 소위 '간'을 볼 수 없으니

결국 주문 여부를 결정하는 건 리뷰의 역할이 가장 크다.

 

 

책 띠에 적혀 있듯이

2011년 영어권 최고의 문학상 부커상 수상작이라는 문구

그리고,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한 편지 한 통이 사십여 년 전 자신의 친구였던 에이드리언을

자살까지 이르게 했다는 사실을 40여 년이 흐른 후 알게 된다는

스토리 소개에 솔깃해서 선택한 소설이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가 줄리언 반스와의 첫 만남이다.

 

여러 권의 책 중 먼저 읽는 목록에 올린 건

순전히 이 책의 두께때문. (단순의 극치다. ^^)

두께가 상대적으로 얇고 작다보면 왠지 읽기가 부담스럽지 않다.

물론  첫 장을 펼치자마자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음을 즉시 깨닫게 되었지만...

 

책을 읽기 전, 그러니까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번역서를 읽기 전,

제일 먼저 하는 건 원제목과 번역된 제목을 비교하는 일.

The sense of an ending과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라는 제목은 처음부터 독자를 긴장하게 만든다.

줄거리를 이어나가는 내내 에이드리언의 죽음과 나의 편지가 무슨 연관이 있었는지,

책의 말미에서는 왜 베로니카가 에이드리언의 일기를 건네주길 한사코 거부하는지 등등

화자인 앤서니 웹스터가 풀지 못하는 의문을 함께 풀고 있으려니 머리에 쥐가 날 정도.

아무튼  똑똑한 독자라면 진작에 알아차렸을 그때의 진실을 나 또한 웹스터와 마찬가지로

거의 마지막에서야 알아차렸으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나같이 무딘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 제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차라리 원제의 뉘앙스가 더 맞는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나 결국 기억하게 되는 것은, 실제로 본 것과 언제나 똑같지는 않은 법이다....."

 

첫 페이지의 이 문장만 보더라도

결코 가벼운 소설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줄거리 자체가 복잡한 건 아니다.

하지만, 앤서니의 입을 빌어서 표현되는이 글의

문장 하나 하나의 깊이를 가늠하는 건 대단히 어렵다.

그러면서도 소설은 아주 빠르게 전개된다.

마치 미스터리 추리 소설을 보는 듯한 착각에도 빠지게 하지만

또한 중간중간 앤서니의 독백 아닌 독백은 너무나 철학적이라

스쳐 지나가면서 이해하기에는 난해하기까지 하다.

그만큼 줄리언 반즈의 이 소설은 탄탄하게 짜여져 있으며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고 안절부절 못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역사와 철학, 문학의 세계에 깊이 빠진 고교생 앤서니와 앨릭스, 콜린

삼총사 틈에 어느날 전학생 에이드리언이 들어오게 되고,

명석한 두뇌와 지적 능력이 뛰어난 그는 단숨에 세 친구를 압도하게 된다.

졸업후 각자의 길을 가게 된 네 친구,

앤서니는 대학교에서 베로니카라는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지만

그녀앞에 서면 늘 작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만큼

쉽게 가까워지기 힘든 존재

어느 주말 그녀의 집에 초대받은 앤서니

가족들에게서도 크게 환영받지 못하고

베로니카와의 관계는 진전이 없다.

앤서니 패거리와 베로니카와의 만남.

왠지 베로니카와 에이드리언과의 대화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앤서니

이미 불길한 예감은 시작된 건가?

"우리의 관계가 어딜 향하고 있는 건지 생각을 하긴 해?"

라는 베로니카의 물음에서 이미 그녀는

그들의 관계에 대해 회의를 느꼈던 것 같다.

 

결국 그들은 헤어지게 된다.

'헤어진 후에야, 베로니카는 나와 잤다.'

 라고 앤서니는 소설에서 말하지만, 베로니카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그건 강간이나 다름없어" 라고...

그리고

"넌 너만 아는 나쁜 놈이야" 베로니카는 앤서니에게 독설을 퍼붓는다.

"네가 생각하는 것, 네가 느끼는 것, 아, 이젠 입이 다 아프네,

진심만 말하면 돼"

라는 말에서 베로니카가 왜 앤서니를 떠나는지 말해준다

 

그리고 그 후, 앤서니는 에이드리언에게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베로니카와 데이트를 해도 되냐고 묻는...

"마침내 제대로 갖추어 답신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예의 바보같은 '서간체' 따위는 일절 쓰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아 베로니카가 공동으로 느낄 윤리적 가책을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꽤 많은 얘기를 했다. 또 나는 베로니카가 오래전에 받은

괴로운 상처가 있다고 받기 때문에 그에게 신중할 것을 권했다.

그런 다음 그에게 행운을 빌었고, 그의 편지를 텅 빈 벽난로 속 쇠살대에 넣고 태운 후,

이제부터 그 두 사람을 내 인생에서 영원히 내치기로 결심했다."(p.78)

 

앤서니는 특별히 뜻이 없이 '상처'라는 말을 했다. 그냥 짐작으로.

 

그리고 마침내 에이드리언의 자살 소식을 접한다.

욕실에서 손목을 그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또 시간은 흐르고

'그의 죽음은 '비극적'이라기보다는, 전형적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빠르다 싶을 만큼

우리에게서 멀어져 시간과 역사의 틈새 속으로 사라져갔다.'(P.97)

 

그러는 사이 나, 앤서니는 결혼했고, 또 이혼하고, 은퇴를 했고

혼자 그럭저럭 얼마간은 성취를, 얼마간은 실망을 맛보며 살고 있다.

 

에이드리언이 줄곧 인용했던 말이 무엇이었나?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P.106)

- 라그랑주를 인용-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 날아온 한 통의 서류 봉투

베로니카의 어머니가 유산을 남겼다는. 그리고 에이드리언의 문서

(일기를 포함해서)를 남긴다는 것.

다 읽고 보니 그녀의 편지에서 이미 예감을 했어야 했다.

(물론 나는 그 부분에서는 몰랐다. 앤서니와 마찬가지로)

 

앤서니는 왜, 베로니카가 아닌, 베로니카의 어머니가

에이드리언의 유품을 가지고 있는지,

왜 오백 파운드를 보냈는지,

그런 편지를 보냈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지만,

에이드리언의 일기를 보면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베로니카가 일기를 양도해주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베로니카에서 받은 사십 여 년 전 자신이 보낸 편지 내용을

확인한 앤서니....

두 사람에 대한  저주와 욕설의 편지.

 

그의 사과 편지에 대한 그녀의 답장

'좀처럼 이해를 못하네? 하긴 언제 한 번이라도 그랬던 적이 있냐?

 

결국 그들은 다시 만나고,

베로니카는 그를 데리고 어떤 젊은이를 만나러 간다.

" 아직도 전혀 감을 못 잡는구나, 그렇지? 넌 늘 그랬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그리고 마침내,

앤서니는 그 젊은 장애인이 에이드리언의 아들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는 자신의 편지 내용을 상기한다.

'사실 마음 한 켠으론 너희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기길 바라고 있어.

이유인즉 내가 시간이 대대손손 이어지며 복수를 가한다는 걸 굳건히 믿는 인간이라 그래.

그러나 복수의 과녁은 그 조준이 정확해야 하는 법.

너희 둘이 딱 그에 해당된단 말이지."

 

화가 나서 무심코 던진 말처럼 그들의 아이는 장애를 갖고 태어난 것이다.

또다시 사과 편지를 쓰는 앤서니

그런 그에게 다시 날아든 베로니카의 답장

'아직도 전혀 감을 못 잡는구나, 그렇지? 넌 늘 그랬어, 앞으로도 그럴 거고.

그러니 그냥 포기하고 살지그래'

 

앤서니는 다시 에이드리언의 아들을 만나러 가고

그를 돌봐주는 간병인의 입을 통해 너무나 뜻밖의

진실을 듣게 된다.

 

베로니카가 알려주려고 했던 것.

왜 그녀의 어머니가 그에게 유산을 남기고

에이드리언의 유품을 가지고 있었는지...

왜 에이드리언의 아들이 그렇게 되었는지..

 

우리는 기억을 얼마만큼 신뢰하는가?

아니 이 책을 읽고 나면, 신뢰의 주체는 우리가 아니라 기억이 더 맞을 수도 있겠다 싶다.

기억은 우리를 얼마나 신뢰하는가?

 

앤서니(토니)는 정작 자신이 배신감과 상실감으로 인해

치졸하고 파렴치한 내용의 편지를 보냈던 기억은 전혀 없었다.

기억은 그를 배신하였지만, 결국 그로 인해 그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야기하고 말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의 말대로 이제는 바꿀 수도, 만회할 수도 없음을.

또한

'인간은 생의 종말을 향해 간다. 아니다, 생 자체가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 그 생에서 가능한 모든 변화의 닫힘을 향해.

우리는 기나긴 휴지기를 부여받게 된다.

질문을 던질 시간적 여유를.

그 밖에 내가 잘못한 것은 무엇이었나? (p.254~255)

 

접은 책 귀퉁이를 펼치며...

 

나는 살아남았다. '그는 살아남아 이야기를 전했다.'

후세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 과거, 조 헌트 영감에게

내가 넉살좋게 단언한 것과 달리,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 아니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을.    ---p.101

 

 

기억이란 사건과 시간을 합친 것과 동등하다고. 그러나

그것은 그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하다.

기억은 우리가 잊어버렸다고 생각한 것이라고 말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또한 시간이 정착제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용해제에 가깝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백히 알아야만 한다. ---p.112

 

어쩌면 이것이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미래를 꾸며내고, 나이가 들면 다른 사람들의 과거를 꾸며내는 것 --p.141

 

 

그러나 시간이란..... 처음에는 멍석을 깔아줬다가가 다음 순간 우리의 무릎을 꺾는다.

자신이 성숙했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저 무탈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책임감 있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다만 비겁했을 뿐이었다. 우리가 현실주의라

칭한 것은 결국 삶에 맞서기보다는 회피하는 법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란....우리에게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면, 결국 최대한의 든든한 지원을 받았던

우리의 결정은 갈피를 못 잡게 되고, 확실했던 것들은 종잡을 수 없어지고 만다. --- p.162

 

 

이십대에는 자신의 목표와 목적이 혼란스럽고 확신이 서지 않는다 해도, 인생 자체와,

또 인생에서의 자신의 실존과 장차 가능한 바를 강하게 의식한다.

그후로... 그후로 기억은 더 불확실해지고, 더 중복되고, 더 되감기하게 되고,

왜곡이 더 심해진다. 젊은 때는 산 날이 많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온전한 형태로 기억하는게 가능하다.

노년에 이르면, 기억은 이리저리 찢기고 누덕누덕 기운 것처럼 돼버린다.

충돌사고 현황을 기록하기 위해 비행기에 탑재하는 블랙박스와 비슷한 데가 있다....--p.182

 

 

 

2014.1.25 겨울비 촉촉한 토요일 오후 by 게으름뱅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