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자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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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받았을 때 표지가 담백하니 참 마음에 들었다. <기술자들>이라는 첫 작품의 제목이 페인트 롤러와 어우러져 흔한 롤러조차 오브제와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이 단편집의 키워드를 꼽자면, '가족', '가난'을 꼽고 싶다. 물론 이 두 가지가 모두 들어간 이야기도, 하나의 키워드에만 걸쳐져 있는 작품도 있다. 그런데 인상 깊은 작품들이 모두 해당 키워드를 포함하고 있어서 그런가 이 2개의 단어가 머릿속에 맴돈다. 실제로 처음 등장하는 단편인 <기술자들>에서는 노숙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볼 수 있다. 작업판에서 사용되는 기술을 내걸고 가게도 냈으나 운영난과 빚으로 인해 이를 넘기고, 거리 생활을 하며 근근하게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담담하게 묘사되어 오히려 그 특이함이 조용히 묻힌다. 마치 우리 옆집에 사는 그저 그런 아저씨의 모습을 글로 풀어낸 것 같다.

그런 길거리 생활 속에서 주인공인 두 사람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지만, 지속된 거리 생활은 그들을 가족으로 엮어준다. 가족이 별 건가. 마음 나누며 서로를 의지하면 그게 가족이지. 마치 소설 속 최 씨와 조 씨가 말하는 듯하다. 작품 속 부부의 서툰 모습과 대조적으로 파트너로서 죽이 척척 맞는 이 둘을 보면 형제인가 싶을 정도다. 반면, <세입자>는 이와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진다. 실제로 혈육관계임에도 불구하고 남보다 못한 가족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너무 사실적임에도 비현실적이라 나에게 만약 저런 가족이 있었다면? 하는 마음에 무섭기까지 하다. 여기에서 내가 주목한 부분은 비장상적인 가족의 형태와 이로인해 겪는 극심한 가난이다. 요즘 시대에 더부살이가 웬말인가 그마저 제대로 된 대접조차 받지 못한다. 돌릴 수 없는 난방과 한 공간안에 있지만 사용할 수 없는 가구 및 가전들. CCTV까지 달았음에도 수많은 상황을 묵과한 집주인의 비정함이 무서울까 아님 상한 미역국을 먹고, 힘들게 돈을 벌어 남의 집 더부살이를 하는 딸의 돈을 탐내는 가족이 무서울까. 가족은 남이 아니라지만, 남보다 못하다는 말 역시 그 대상이 가족이니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작가님은 바로 이러한 비정상적인 가족의 모습을 최대한으로 담백하게 그리고 무심하게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무심함으로 인해 오히려 이런 기이한 가족의 형태로 인한 비극은 더욱 강조된다. 이젠 놀랍지 않을 정도로 숱하게 있을, 이러한 가족의 일상과 가난의 흔적이 우리를 무디게 만든 것 같다. 그런 와중에 나름의 행복한 마무리를 갖는 <오해의 숲>은 인상깊었던 작품이라 따로 인덱스 표시도 해두었다. 사실 여기서 가난과 가족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내가 하나 짚어보자면 주인공의 오해가 바로 가족, 아빠의 말로 인한 것이라는 점이다. 가장 가까운 이의 말 한 마디가 주인공의 삶을 송두리째 흔든 것이다. 게다가 주인공이 하는 고민은 현대인이라면 언제든 한 번은 겪어봤을 상황에서의 고민인지라 읽는 내내 마음이 답답하고 먹먹했다. 나 역시 나 스스로를 오해로 만든 성 안에 가둔 적이 몇 번이고 있었기에 밑바닥으로 떨어진 너덜한 마음을 안타깝게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오해가 해소된 채 끝을 마무리한 이 결말이 퍽이나 인상 깊다. 언젠가 문학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것을 기대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마도 이러한 통쾌한 해결의 장이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을 꿈임을 알기에 나는 기대하고 있었나보다.

몇몇 인상깊은 에피소드를 가져와 내가 작품을 통해 받은 감상을 나눠보고자 몇 자 적어보았다.

우리의 일상을 이리도 핍진하고 담백하게 담아낼 수 있는 작가님이 김려령 작가님 말고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 작품 하나하나가 참 귀하게 느껴졌다. 단편임에도 긴 여운과 울림을 남겨주는 작품들을 세상에 내 준 작가님께 감사드리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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