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여 년 전의 여행을 함께하는 방법

옥시아나로 가는 길
로버트 바이런 지음, 민태혜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4월

요즘과 같은 시대에 여행기는 그리 각광받는 장르는 아닙니다. 대신 우리는 생생한 여행 영상을 담은 유튜브나 그림 같은 사진들로 가득 채운 블로그 등을 언제, 어디서나 쉽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로버트 바이런의 <옥시아나로 가는 길>은 다릅니다. 단순히 90여 년 전의 여정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여행지들의 특별함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 시리아, 이라크, 이란(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 상상이 되시나요? 네,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 가운데 하나입니다. 위험할수록 더 매력적이지요.

하지만 로버트 바이런의 <옥시아나로 가는 길>이라는 책이 빛나는 이유가 단순히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여행지라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국의 유서 깊은 도시들과 찬란한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유적지, 시끄럽고 혼란스럽지만 나름의 질서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은밀하게 느껴지는 정치적 위험 등등. 이 모든 일들을 생생히 묘사하는 로버트 바이런의 문장들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사진과 영상을 뛰어 넘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바람에 날리는 먼지가 제 입속까지 들어온 것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로버트 바이런의 <옥시아나로 가는 길>을 읽으며 함께 1933년부터 1934년 사이의 팔레스타인, 시리아, 이라크, 이란(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나봅니다. 맛있는 음식을 꼭꼭 씹어먹으며 줄어드는 남은 양이 아쉽듯이 한 장씩 넘기며 읽는 동안 줄어드는 남은 문장들이 아쉬워지네요.

그리고 로버트 바이런의 비잔틴과 이슬람의 역사, 건축, 예술에 대한 방대하고 깊이 있는 지식에 감탄합니다(이런 사람이 겨우 36년밖에 살지 못했다니…)

사진이나 영상만으로는 표현되지 않는 90여 년 전, 로버트 바이런이 보았던 그리고 느꼈던 황량하지만 신비로운 자연과 까마득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부터 비잔틴과 이슬람, 카톨릭과 정교회 등을 여러 문화와 종교가 남기 인류의 유산을 <옥시아나로 가는 길>을 통해 함께해 보았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여전히 남아있을지, 그리고 앞으로도 무사히 남을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인문학의 눈으로 본 우리나라 도시, 그리고 부동산’

한국 도시의 미래 - 인문학자가 직접 탐사한 대한민국 임장 보고서
김시덕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1월

우리가 사는 곳은 땅과 집으로 대표되는 ‘부동산’ 위에 있습니다. 그리고 ‘부동산’이라는 단어는 이미 자본주의적 요소를 깊게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때문에 모두는 아니겠지만 우리나라의 도시화율이 90%가 넘는 상황(2005년 기준) 부동산에 대한 관심은 각 도시와 그 지역에 부동산 가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부동산 가격에 대한 관심만큼 자료도 차고 넘치네요).

그러나 그 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김시덕 작가의 <한국 도시의 미래>는 시각을 넓혀 인문학의 관점에서 우리나라의 도시와 지역의 미래를 예측하고 있습니다.

인문학자인 작가는 현재 위기로 거론되는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이 전쟁, 정책, 산업의 쇠퇴 등등의 여러 원인으로 계속적으로 반복되고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현재 상황이기는 하나 현재만의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또 인구 감소가 반드시 소멸로 이어진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근본적으로는 인구 감소가 문제라는 명제 자체에 대해 생각해보게 합니다. 때문에 해결책도 다르겠지요.

또한 작가는 국토에 대한 더 넓은 시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신냉전의 시작과 남북 화해와 같은 국제정세와 안보가 한국 도시를 성장시키는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이해한다면 부동산을 알기 위해서 경제 뉴스가 아닌 국제 뉴스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인구와 교통, 메가시티와 소권역이라는 큰 줄기를 따라 2부의 각 지역을 돌다 보면 한국의 도시들의 큰 그림이 그려집니다. 물론 100% 정확한 미래 예측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천편일률적인 땅값 논쟁에서 벗어난 김시덕 작가의 <한국 도시의 미래>와 같은 책이 현재 필요하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남기는 이들과 기억하는 이들.

망우역사문화공원 101인 - 그와 나 사이를 걷다
김영식 지음 / 파이돈 / 2023년 7월

작년 말 ‘낙이망우’ 전시연계 강좌에서 소개받은 책입니다. 2009년 망우역사문화공원에 묻힌 이들에 대한 책을 출간한 김영식 작가는 이후 내용을 추가하여 23년 네 번째 개정판을 냈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예전 망우리 공동묘지에 묻힌 유명인들을 소개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대학생이었던 김영식 작가는 우연히 방문한 망우리 공동묘지에서 영감을 얻은 이후 20여년 만에 다시 찾아 직접 이곳을 누비며 찾아낸 인물과 이야기들을 책으로 엮었습니다(그 이후 수차례의 개정판을 내고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이름을 바꾼 이곳을 보존하고 알리기 위한 김영식 작가의 노력을 알면 그 진심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혹시 화가 이중섭에 대해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네 근현대미술에서 가장 사랑받는 화가들 가운데 한 명입니다. 그의 작품이 포함된 대규모 전시회는 매번 성황리에 열리고 있습니다. 제주도에는 있는 이중섭 거리와 생가, 이중섭 미술관을 방문하신 분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그의 묘는 1956년 이후 망우역사문화공원에 계속 있었습니다(그의 인기에 비하면 그의 묘는 초라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외국의 ‘묘지 투어’처럼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유명인들의 묘지를 공적 공간으로 보는 문화가 생소한 우리에게 묘지는 타인은 쉽게 찾기 힘든 사적인 공간입니다(주로 가족, 친지, 친구들이 찾는 장소이지요). 하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남긴 사람들이라면 좀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기념관에서, 박물관에서, 미술관에서 그들의 기록과 유물, 작품들을 보면서 말이지요.

망우역사문화공원에서 잊혔던 유관순 열사의 묘를 찾은 일은 우리가 정말 기억해야 하는 이들이 누구인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시인 박인환을 비롯한 문화예술인들과 과학자들 정치가와 언론인, 그리고 독립운동가 등등.

김영식 작가가 망우리를 곳곳을 뒤지며 발품으로 찾아낸 수많은 이들은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남긴 그 무언가는 기억한다면 새로운 눈으로 망우역사문화공원을 방문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여행에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우주여행 무작정 따라하기 - 어쩌다 시작된 2주 동안의 우주여행 가이드북
에밀리아노 리치 지음, 최보민 옮김 / 더퀘스트 / 2024년 1월

여행이 빈번해지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원하는 새로운 여행지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고 이제 지구 위, 구석구석에 그들은 발자국을 남겼습니다. 그렇다면 하늘 위는 어떨까요?

오랫동안 우주는 여행자보다는 과학자나 탐험가 혹은 기술자들의 영역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우주여행에는 물리적, 시간적, 금전적으로 많은 난관들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언젠가 우리 인류를 그 불가능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입니다(요즘 우주개발 상황을 보면 그리 멀어보지도 않네요). 그리고 그 시작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태양계가 될 듯합니다.

에밀리아노 리치의 <우주여행 무작정 따라하기>는 바로 그 언젠가를 위한 책입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할까요? 무엇보다 여행지에서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를 찾아봅니다(인터넷 검색으로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입니다), 미리 준비해야 여행에 후회가 없겠지요. 여러 개의 선택지 가운데 고민이라면 가이드북을 따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에밀리아노 리치의 <우주여행 무작정 따라하기>는 여러 취향의 사람들에게 각자에 맞는 우주여행을 추천합니다. 멋진 경치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지구의 오로라보다 크고 화려한 목성의 오로라를,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높이가 22킬로미터가 되는 화성의 올림포스산을 소개합니다(경사가 5도 밖에 되지 않는 평탄한 곳이라 좀 더 힘든 등산을 원한다면 금성의 맥스웰산맥 화산 지역이 좋겠군요). 목성의 위성 유로파에서 수십 또는 수백 킬로미터의 얼음 썰매를 타거나 토성의 아름다운 고리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장소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주여행 무작정 따라하기>에 나오는 각 행성에서 주의할 사항에 대해서도 꼼꼼히 챙겨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행에서의 안전이니까요.

 아쉽게도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은 여행에서 중요한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는 사실입니다(여행지에 먹거리가 시원찮다는 정보를 미리 알았으니 지구에서 철저히 준비해 출발해야겠군요).

<우주여행 무작정 따라하기> 여행의 종점인 해왕성에서 돌아오면서 비처럼 내리는 다이아몬드를 여행 기념품으로 가지고 와도 좋을 것 같네요(매력적인 명왕성이 왜 여행지에서 빠졌는지는 책에서 충분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집을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지요. 긴 우주여행에서 지친 우리에게는 모두의 고향인 ‘창백한 푸른 점’, 지구가 있다는 사실이 참 다행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우주여행 무작정 따라하기>의 뒷부분 힌트처럼 다음은 우리 은하계, 그 너머가 될 것 같습니다. 그때도 우주여행을 위한 준비는 필요합니다.

2권, 3권이 기대되는 책입니다.

이종선 관장이 말하는 이건희 컬렉션 - 어느 수집가의 찬란한 결실
이종선 지음 / 김영사 / 2023년 11월

제가 책을 오래 붙잡고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예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저의 지식수준에는 맞지 않는 책이거나(부끄럽네요) 혹은 물과 기름처럼 글쓴이의 감정에 동화되지 못하는 경우, 마지막으로 좋아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쉽게 읽어버리기가 아까워서 한 문장, 한 문장을 천천히 음미하며 글 속의 주석이나 등장하는 자료 등을 모두 찾아가며 읽는 경우입니다.

네, <이종선 관장이 말하는 이건희 컬렉션 (어느 수집가의 찬란한 결실)>은 바로 마지막 경우였습니다(물론 이는 제 취향과 깊은 관련이 있겠지요). 백자 달항아리는 모티브로 디자인한 책의 표지조차 오래 보며 감상하게 됩니다.

국가에 기증된 대규모의 ‘이건희 컬렉션’ 가운데 대표 69점을 엄선해 소개하는 <이종선 관장이 말하는 이건희 컬렉션 (어느 수집가의 찬란한 결실)>은 글쓴이가 컬렉션의 수집을 함께한 이종선 관장이라는 점에서 책을 읽기도 전부터 믿음직스러웠습니다.

청자 양각죽절문 병으로 시작되는 한국고미술, 한국 근현대미술, 외국 미술 작품들에 대한 소개는 작품 자체에 대한 설명과 시대를 대표하는 각 작품의 뛰어남, 또 그 작품을 수집하기까지의 관련된 사람들과 사연들이 엮여 각각의 작품마다 하나씩 스토리텔링을 완성시켰습니다(비록 작품 사진이기는 하지만 기억과 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충분하네요).

직접 본 적이 있었던 작품들의 경우에는 작품이 마주했던 생생했던 기억과 현장에서 해설사가 들려주는 재미있는 설명과 같은 글이 마치 오버랩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네요. 여기에는 분명 리움이나 호암미술관이 아닌 다른 이름의 전시장에서 보았던 작품인데 이제야 ‘이건희 컬렉션’ 가운데 하나임을 확인한 것도 있었습니다.

천천히 읽었지만 마지막 페이지는 찾아왔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다시 읽을 수도 있지만 글의 중간중간에 등장했던 ‘이건희 컬렉션’의 다른 작품들은 이 책의 제2권, 제3권을 기대하게 만듭니다.

아마도 ‘이건희 미술관’이 건립되면 모두 만나볼 수 있겠지만 이 책 속의 글처럼 작품에 숨을 불어넣는 이야기들은 그리 쉽게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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