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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평점 :
첫 번째 상처!
초등학교 2학년을 다닐 때 일이다.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함께 학교 교문을 막 나섰을 때, 어디선가 ‘삐약삐약’ 울고 있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서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렸을 때, 내 눈앞에 들어온 한 아저씨의 모습과 아저씨 앞에 놓여 있는 큼지막한 상자가 그 소리의 진원지임을 어렵지 않게 직감할 수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소리가 들리는 그곳으로 가서 조심스럽게 상자 안을 보았다. 그곳에는 수 십 마리의 병아리들이 작은 날개를 퍼떡거리며, 매력적인 자신을 데려가 달라며 나를 유혹하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병아리들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 갖고 있던 돈을 아저씨께 지불하고, 병아리 한 마리를 작은 봉투에 넣어서 집으로 데려 왔다. 그날부터 병아리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나의 가족이 되었다. 모이도 주고, 물도 주며, 병아리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학교에 있는 내내 병아리의 안부가 걱정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병아리를 집으로 데리고 온 지, 10일이 되었을 무렵에, 갑자기 병아리가 죽었다. 갑작스런 병아리의 죽음은 나에겐 큰 슬픔이었으며, 상처가 되었다. 병아리를 장사 지내 준 후에, 하염없이 흘러내리던 눈물을 훔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어린 나에게 친구와 같았던 병아리의 죽음은 첫 번째로 겪었던 이별이면서 아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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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치유하는 방법!!
‘요시모토 바나나’라는 작가의 이름은 예전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작품을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키친』, 이 책은 저자의 처녀작이면서 독자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불러 일으켰던 작품이다.『키친』,『만월』,『달빛 그림자』, 이렇게 총 3편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이 책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별과 아픔 그리고 이러한 상처들로부터 새로운 희망을 보여 주고 있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들로 이루어 진 책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키친』에서는 ‘미카게’의 아픔과 상처를 키친이라는 작은 공간으로부터 치유해 가는 과정을 그린 내용을 담고 있다.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의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던 ‘미카게’는 중학교에 들어 갈 무렵 할아버지를, 그리고 성년이 된 지금 그동안 든든한 버팀목이셨던 할머니를 여의게 된다. 할머니를 여읜 상처로 괴로워 할 무렵, 동네 꽃집 아르바이트생 이었던 ‘유이치’가 ‘미카게’를 찾아와 자신과 함께 살자는 제의를 한다. ‘유이치’와 함께 간 그의 집에서 ‘미카게’는 부엌이 마음에 들어, ‘유이치’의 제안을 수락하게 된다. 물론 ‘유이치’와 ‘미카게’ 단 둘이 사는 것은 아니었다. ‘유이치’의 엄마이면서 아빠인 ‘에리코’와 함께 셋이서 동거 아닌 동거가 시작되는데…. 『만월』은『키친』의 후속편으로 ‘미카게’가 ‘유이치’의 집에서 나온 후, ‘에리코’의 죽음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갑작스런 ‘그녀’ 아니 ‘그’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에리코’의 죽음은 ‘유이치’에게 큰 슬픔을 안겨준다. 그런 ‘유이치’를 이번엔 ‘미카게’가 아픔과 슬픔을 극복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준다.『달빛 그림자』, 이 단편 역시 주인공 ‘사츠키’가 사랑하는 남자친구를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잃은 후에, 슬픔을 잊기 위해 매일 아침 조깅을 한다. 그런 ‘사츠키’ 에게 ‘우라라’ 라는 신비한 여성을 만나게 되고, 비록 현실인지 환영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죽은 남자친구와 해후하며, 마지막 이별을 나누게 되면서 ‘사츠키’가 갖고 있던 아픔의 상처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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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키친』, 이 책은!!!
내게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던『키친』. 이 책은 어느 일본 소설들과는 다른 느낌을 갖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지닌 소설이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해 주는 소설이란 생각이 들었다. 순수하고, 깔끔한 느낌의 소설이라고나 할까? 일본 소설에서 황순원의 ‘소나기’와 같은 느낌을 오래간만에 느낄 수 있어서 색다른 경험이었던 것 같다. 또한 간결하고 깔끔한 문장이 매력적이게 생각되는 소설이다. 군더더기 없는 맛깔스러운 문장으로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이 한껏 책 속에 배어 있어 책을 읽는 내내 지루하지도 않았다. 2010년 새해에 이렇게 ‘요시모토 바나나’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은 나의 커다란 행운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의 또 다른 작품들이 몹시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