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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지성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 의식, 실재, 지능, 믿음, 시간, AI, 불멸 그리고 인간에 대한 대화
마르셀루 글레이제르 지음, 김명주 옮김 / 흐름출판 / 2023년 4월
평점 :

이 책에 담긴 대담들은 존 템플턴 재단으로부터 자금을 받아 설립한 다트머스 학제 간 참여 연구소Institute for Cross-Disciplinary, ICE가 펼친 활동의 일환이었습니다.
저자 글레이제르는 17세기 부터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오며 이해의 간극이 벌어진 과학과 인문학이 서로 협업할 필요가 있음을 말합니다. '건설적 협업'이라 부르는 자리에 과학자와 인문학자를 불러 모아 우리 시대의 가장 도전적인 질문들에 대해 토론하고 논쟁하는 8번의 대담을 열었고, 그 대담의 결과물을 모아 한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만일 인간의 마음이 세계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는 데 명백한 한계가 없다면 신비가 남아 있을 여지가 있을까요? 영적 질문들은 어떨까요? 만일 세계가 정말 기계 같아서 엄밀한 수학적 논리에 따라 작동한다면 의심이나 자유의지가 남아 있을 여지가 있을까요?
서문의 이 질문을 읽으며 과학의 방법인 측정과 실험, 데이터 만으로는 이 시대의 인류가 당면한 빅 퀘스천에 답을 할 수 없음을 말하고자 함이 흥미롭게 느껴져서 빠져들고픈 욕구가 생겼습니다.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은 서로 다른 분야의 대담자가 한 가지의 주제를 놓고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경학자와 철학자가 의식에 대해 논한다거나, 불교학자와 이론물리학자가 실재의 본질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말합니다. 각 주제에 맞춰 불러놓은 전문가의 분야만으로도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대담자의 구성들이야말로 과학자와 인문학자의 상반되는 시각을 볼 수 있는 멋진 경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8장의 구성 중에 불교학자와 이론물리학자의 불꽃튀는 대담이 되었던 2장이 재미있었고, 6장도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해 깊이 이해해볼 경험이 되어 좋았습니다.
흥미로운 주제였던 '의식'에 관한 1장의 내용을 조금 들여다보자면,
신경과학자는 의식의 실체를 이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제게 "마음과 의식이 뇌만으로 생긴다고 생각하십니까? 하고 묻는다면, 제 대답은 분명히 "아뇨, 뇌만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일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완전할 뿐만 아니라 몸의 알맞은 자리에 들어가 몸과 온전히 상호작용하는 신경계입니다.
마음은 뇌만의 산물도, 신경계만의 산물도 아닙니다. 마음은 생명을 효율적으로 조절하기 위해 신경계와 몸을 적절히 결합하는 기능적 통합의 결과물입니다.
그에 대해 철학자의 입장을 살펴보면, 의식이란 주체가 마음과 세계에 대해 1인칭 시점으로 겪는 주관적 경험이라고 정의합니다. 뇌과학, 의식과학, 신경과학의 측정을 통해 얻어진 3인칭 데이터와 인간 내면에 일어나는 주관적 경험이라는 1인칭 데이터를 통합한다면 의식의 정체를 밝힐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1인칭 데이터를 얻는 방법으로 동양의 방법론을 거론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계가 전부 마음속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3인칭 데이터를 1인칭 데이터로 환원하려고 시도합니다.
이 부분을 통해 그 동양적 방법론이라는 것의 구체적 언급이 없었지만, 동양 종교의 수련이나 득도를 통한 불가사의한 영적 체험 혹은 의식의 세계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서양의 세계적인 석학이 의식을 밝히는 방법으로 동양의 방법을 언급한 것이 이색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주관적 판단으로는 이 대담들의 사회를 맡은 저자 글레이제르의 관점은 '과학적 방법에 회의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을 나타내는 발언들이 있습니다.
제 생각에 이 사진(약 900억 개의 뉴런과 뉴런당 시냅스에 대한 일종의 사진 혹은 뇌의 지하철 노선도)의 문제는 우리가 필요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가정한다는 겁니다. 과학의 본질은 항상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불완전한 정보를 얻는 거예요. 우리는 전체적인 그림을 결코 얻지 못합니다.
그들은 뇌에 대해 가장 낮은 수준의 정보까지 얻어 시뮬레이션 한다 해도 그 결과는 여전히 인간의 뇌와는 같지 않을 것이라고 말함으로 신경학자와 철학자 모두 과학의 환원주의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입니다.
덧붙혀 신경과학자는,
과학의 일은 기본적으로 메커니즘을 이해하기 위해 구성 요소를 분해하는 일이죠. 하지만 우리는 메커니즘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데 신경 써야 합니다.
이 말은 대상을 분리해(환원하여) 구성 요소를 속속들히 다 파악한다고 해서 그 대상을 100% 파악하였다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성 요소들 간의 창발 현상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창발(創發)또는 떠오름 현상은 하위 계층(구성 요소)에는 없는 특성이나 행동이 상위 계층(전체 구조)에서 자발적으로 돌연히 출현하는 현상이다. 또한 불시에 솟아나는 특성을 창발성(영어: emergent property) 또는 이머전스(영어: emergence)라고도 부른다. 자기조직화 현상, 복잡계 과학과 관련이 깊다.
대담의 마지막에 신경과학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의 놀라운 두뇌에 애초에 하도록 설계되지 않은 일거리를 많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의식을 논하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건강하게 살아 있고 하루를 마무리할 때 에너지가 남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인간은 절대로 의식의 메커니즘을 모두 밝힐 수 없다' 라고 들렸습니다. 이 말은 철학자가 아닌 신경과학자의 말입니다. 아이러니한 결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이러한 관점은 이 책을 읽는 내내 자주 목도하게 되는 관점입니다.
물론 과학적 방법이 최선이라 여기는 과학자들도 있습니다.
2장은 그러한 이론물리학자와 불교학자의 대담인데 서로 상반되는 관점을 팽팽하게 다투어서 긴장감이 있습니다.
저자는 서문에서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질문이 다양한 만큼 그 질문에 답하는 데 진전을 이루려면 서로 다른 앎의 방식들을 결합하는 다원적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그 취지에 적합하게 다양한 참가들이 참여하여 의견을 나누고 반대대는 의견이 있을 때조차도 건설적으로 대화를 이끌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참가한 석학들의 전문적인 이론을 이해하기가 수월하진 않지만, 그 내용을 세세하게 다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대담의 주제를 풀어가는 흐름을 놓치지 않고 각각의 대담자의 입장이 무엇이고 이야기하는 논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며 읽어나간다면 어렵지 않게 빠져들 수 있습니다. 오히려 읽어나가며 모르는 그 분야의 지식을 습득할 수 있어 알아가는 즐거움 또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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