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뱀에게 아이는 넌지시 이야기해준다. 뱀을 감싸고 있었던 많은 이야기를.
그 따뜻함을 풀어내는데
뱀의 몸이 길었던 것처럼, 소년의 여정이 길었던 것처럼,
그 이야기도 당연히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림은 하나 없고 글씨만 뱀의 몸처럼 구불구불 이어진 이 장면은
여태까지 넘겨온 앞장들을 다 그려낸 것과 같다. 이미 이 장면에 머무른 순간 앞장들을 머릿속에서 그려본다.
흘러온 2020년 우리는 많이들 허무하다고 말한다.
무기력해졌고, 자꾸 기분도 처지기 마련이고, 한 해를 송두리채 도둑맞은 것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그럴 때 이 소년이 톡톡톡 나를 치며 말한다.
'아니야.
무관심한 도시의 거리에서, 너는 어떤 연인을 하나로 묶어 주었어. 가냘프고 어린 풀들을 행인의 발길로부터 보호해 주었어. 누군가에게 비를 피할 우산이 되어주었잖아...'라고.
내가 어디선가 이 뱀과 같은 존재였고, 또 누군가 나에게 이 뱀과 같은 존재였겠지.(사실 뱀은 싫지만.;)
작고 선한 영향력들을 떠올리니,
허무한 마음이 가시고 힘이 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켜켜이 쌓아올린 시간 속 따스함들.
나도 소년과 같이 엑스를 새겨본다.
나에게도. 당신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