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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작가 10주기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0년 12월
평점 :
오래 행복하고 싶다.
오래 너무 수다스럽지 않은 너무 과묵하지 않은
이야기꾼이고 싶다.
죽을 때까지 현역 작가로 남는다면 행복할 것 같다는 작가의
말에 글 쓰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작가에게 어떤 의미 인지 짐작이 간다.
이렇게 글 쓰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 쓴 글들은 어떤 느낌일까?
소박하고, 진실하고, 단순해서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 작가라는 소개답게
작가의 글들은 일상 속에 묻어 있는 소박하고 정겨운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분명히 전하는 메시지가 있었다.
작가가 살아온 일생을 담담히 써 내려간 글들을 읽으면서 나는 어디선가
봄 향기가 느껴지는 기분이 들었다.
조용한 곳에서 불어오는 봄바람 같은 글들이었다.
손자의 특별한 선물을 위해 백화점을 갔었지만 막상 선물을 고를 수 없었던
작가... 작가라는 이름 말고 그냥 평범한 외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나의 친정 엄마가 생각났다.
늘 손자, 손녀에게 하나라도 더 해 주고 싶은 마음이 그 나이 되면 드나 보다.
하지만 가끔씩 세월을 잘 못 보내서 그런지 아니면
그 사람의 본성이 원래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대접받으려는 노인들이 많다.
하나를 주면 생색내고 두 개를 받고 싶어 하는....
그런데 작가가 써 놓은 글을 보고 나도 이렇게 제대로 늙어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 손자야, 너는 이 할머니가 너에게 쏟은 정성과
사랑을 갚아야 할 은공으로 새겨둘 필요가 없다...
나 또한 사랑했을 뿐 손톱만큼도 책임을 느끼지 않았으므로 "
이 또한 노후의 축복이라고 표현하는 작가.
어린 시절 물질 적으로 부족했고 아버지마저 일직 여의였다
그렇지만 작가의 기억은 사랑 많이 받고 한 번도 맞아본 적도 없고
오로지 귀여움 많이 받은 어린 시절 기억밖에 없다고 했다.
나는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작가의 삶이 부럽기도 했다
물질적으로 너무나 풍요로웠지만
맞벌이 부모와 늘 1등만 강조하시는 부모님..
늘 불 꺼진 집에 혼자 들어가 밥을 먹고 동생을 챙겼던 기억...
항상 티브이 옆에 있던 만 원짜리 지폐..
그렇다 나는 사랑 빼고는 다 있었던 같다....
이 또한 부모님의 사랑방식이라고 이해하기엔 내가 아직 어린 거 같다...
내 아이는 작가처럼 사랑 가득한 어린 시절을 주고 싶다.
하지만 작가에게도 어머니라는 존재는 애증의 관계였던 거 같다.
시골에서 모두에게 사랑받고 살았던 작가를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 시켜 더 나은 환경에서
살게 하겠다는 엄마의 욕심으로 작가를 무작정 서울로 데려와
작가의 의사와 상관없이 집과 먼 학교를 다니며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유년시절이 외로워 보였다.
하지만 그 엄마가 서울로 데려왔기 때문에 글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남편과 아들을 먼저 보낸 작가의 이야기에서는
마음 한편이 너무 아려왔다.
특히 아들을 먼저 보낸 작가의 심정...
아들을 따라가고 싶은데 죽을 용기가 없어 그냥저냥 살아가야 하는 심정.
그런데 시간이 지나 자신이 기력이 쇠하니 그게 반갑단다..
아들을 만날 수 있어서 말이다.
시간이 많이 지나도 여전히 작가의 가슴에는
아들이 그리움, 아픔 그 자체로 박혀 있었겠지??
그래서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는 수식어가 없다고 하겠지.....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관계 속에서 남의 좋은 점을 발견해 버릇하면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어 나를 행복해 주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모든 건 다 지나가게 돼 있다"
작가의 글 속에 이런 글들을 읽으면 그냥 나의 외할머니가 해 질 녘 마루에 앉아
나의 손을 잡고 조용히 말해주는 거 같이 느껴졌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우리 외할머니의 오래된 일기장을 몰래 훔쳐본 느낌이 들었다.
그 속에 할머니의 어린 시절의 설렘뿐 아니라 나이 들어 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인생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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