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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모험
이진경 지음 / 푸른숲 / 200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철학은 모든 학문을 사랑하는 학문이고, 모든 것의 뿌리를 다지는 학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엔 뭐든지 의심하려고 했다. 데카르트처럼. 예술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 돈은 나에게 무엇인지, 성공이란 무엇인지, 공부란 무엇인지 등 나만의 답을 찾으려고 생각을 열심히 했다. 생각하는 건 내 취미였으니까. 그런데 아무리 의심해도 이 세상이 만들어진 원리와 이유 등 최초의 기원으로 되돌아가 생각하려고 보니 신 밖에는 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 신입생 때는 신을 믿어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가 겨우 신의 간지에 놀아나는 존재라는 생각에 동의할 수 없었다. 동의하기 싫었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다. 그래서 억지로 신을 믿으려는 건 포기하기로 했다. 근데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절대선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믿는 절대선을 향해 세상이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칸트처럼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절대선은 있지 않을까 믿으며 고집스럽게 나의 생태주의를 관철시키려고 했다. 생각만으로는 무엇도 되지 않을 걸 알기에 실천까지 같이 하며, 말만 앞서는 가짜 생태주의자에 대한 분노에 치밀며 가끔씩 약하게 비판하던 내가 있었다.
그러다 다시 생각이 바뀌었다. 내 생각을 의심해보기로 했다. 내 생각이 옳기를 바라지만 그건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바라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자, 내가 생각하는 절대선이란 게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관을 바꿀 정도로 타당한 건지 의심해보기로 한 것이다. 니체처럼 선과 악의 기준에 대해 회의하고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잘 알지 못해 고민해본 것이다. 하지만 니체처럼 치열하지 않았기에 나는 그저 방황중인 꼬마에 불과하다.
책을 읽기 전부터 나는 내가 철학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일상에서 하고 있는 게 철학이라 생각했고, 가끔씩 접하게 되는 철학적인 이야기들이 내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철학을 배우진 않았지만, 철학책을 따로 읽진 않았지만, 내가 경험한 인생 속에서 나는 이미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철학을 조금씩이나마 맛보았을 것이고, 내가 시련을 겪을 때마다 난 그 철학들로 인해 나를 구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성장하여 지금의 내가 있다. 마치 인류의 역사가 철학의 역사랑 그 길을 함께한 것처럼, 나라는 한 사람의 인생 역시 나만의 철학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여담으로 재밌는 비유를 하자면, 생명의 진화나 철학의 진화 과정도 비슷하다. 더 복잡하게, 그리고 더 다양하게 뻗어나가고 있으며, 시대의 환경에 따라 그에 맞게 진화하여 적응하는 것도 비슷하다. 생명의 진화는 DNA에 이루어졌다면, 철학의 진화는 말과 언어에 의해서 지식이 전달되어질 수 있어서 가능했다. 더 재밌는 건 인간은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태초의 생명체였던 단세포부터 다세포를 거쳐 어류, 양서류, 파충류 등을 거쳐 최종적으로 인간의 형태로 발생의 단계를 거친다고 하는데, 인간의 생각의 흐름이라 불리는 철학사 역시 발생의 흐름처럼 힘이 지배했던 태초부터 인간 개개인의 행동뿐만이 아니라 생각마저 자유로운 현대까지 이르러 발전하게 되는 건 아닌가 생각한다.
여담은 끝내고 다시 나의 철학으로 돌아오면, 나의 생각 역시 현대에 이르렀다. 지금의 내 머릿속엔 현대 철학자들의 사유가 있다. 때로는 나도 모르게 하게 되는 무의식적인 행동들에 대해서 그러한 무의식이 형성된 이유를 밝히기 위해 과거로의 회상여행을 하기도 하고, 가장 흔히 하는 건 사회에 만연한, 내가 일상 속에서 일상이라 여기는 당연한 모든 것들에 대해 의심해보곤 한다. 하지만 너무나 큰 자유는 오히려 감옥이라는 말처럼 생각의 자유가 커지자 나는 어느 것도 선택할 수 없는 혼란이라는 감옥에 갇혀버렸다. 결국 모든 것은 옳은 수도 있고, 그를 수도 있다. 그걸 판단하는 주체는 나다. 근데 그 나라는 존재는 끊임없이 변한다. 영원회귀사상따위 믿지 않아도 나는 내가 가만히 있지 못하는 존재란 걸 안다. 그래서 지금 내리는 판단을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지금까진 그리 큰 선택을 할 필요가 없었기에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는데, 나의 인생의 미래를 선택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3년 안에 결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다시 마흔 살까지로 생각의 선택기한을 늘려줘야 할 것 같다.
사실 난 지금 지젝이 말하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이미 철학에 의해 절대적인 것이 모두 해체되어버린 지금의 세계에서 나는 자꾸 내가 바라는 방향으로 사람들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려고 한다. 나는 신이 아니기에, 나를 따르지 않는 이들을 비판할 자격이 없는데도 말이다. 이미 신의 권력은 개개인에게 분산되어 나뉘어져 버렸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철학사가 뒤집힘의 역사이기에 현재의 철학은 언젠가 뒤집혀질 것이다. 그리고 그때 세상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로 변해있을 것이다. 지금의 사회는 그래서 변하지 않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기존에 발견된 것에 대해서만 사고하고 있기에 말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이론은 존재하나 마르크스의 말마따나 실천이 부족해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에서 유가 나오진 않는다. 나에게 철학적 지식은 거의 무에 가깝다. 이제 겨우 입문책 하나를 뗀 정도다. 진정 새로운 세상을 바란다면 새로운 철학을 할 수 있도록 이제 정말 사놓기만 하고 읽기 않고 있는 철학책들 좀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