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나라, 브라질 빠우-브라질 총서 2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김창민 옮김 / 후마니타스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학교를 다닐 때 방학이 되면 두 달의 시간 동안 똑같은 일상을 지내는 게 지루해 해외여행 가는 게 취미가 된 적이 있다. 당시엔 책을 읽는 걸 좋아하지 않아 가이드북에 짧게 나오는 그 나라의 역사, 문화 등의 소개조차 읽질 않았다. 책을 좋아하게 된 이후로도 막상 읽으려고 하니 가고 싶은 나라는 많아지고, 한 나라만 가도 인도 같은 나라의 경우 어떤 책을 읽어야 될 지 몰라서 결국 몇 권 읽지도 않고 여행을 떠났다.

 근데 브라질에 대해서는 책을 읽고 싶어졌다. 가고 싶은 나라는 많은데, 콕 집어서 어딜 딱 가고 싶은 나라가 없었다. 남미를 여행가고 싶었지만 어느 나라에 꼭 가서 뭘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다. 다만 한 나라에 오래 머물러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을 뿐이었다.

 삼바춤과 축구 밖에 떠오르지 않는 나라, 그 나라가 궁금해져 책을 펼쳐 보니 삼바와 축구 얘기는 하나도 없었다. 역사를 좋아하질 않아 역사 부분이 맨 첫 장이었을 땐 다른 부분부터 읽을까 고민도 했지만, 막상 읽어 보니 굉장히 흥미로웠다.

 처음 발견된 시점엔 포르투갈이 무관심했던 나라, 하지만 예수회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예수의 왕국을 세울 수 있는 나라였던 곳. 비약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예수회 사람들의 놀라운 선교에 대한 열정 덕분에 지금의 브라질이 있었다고 말하는 저자의 주장을 반박하기에는 책 속에 그려지는 브라질은 너무나도 이상적인 사회가 되어가고 있었다.

 인종차별이 만연한 시대에 인종차별이 근거 있다는 주장을 그냥 무시해버린 나라, 그래서 평등한 현실을 만들어내어 비하적인 단어가 국어사전에 존재하지 않는 나라.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데에는 끊임 없는 새로운 인종(인종을 나눈다는 것 자체가 가능한 건지 생각해봐야겠지만)의 유입과 사회적으로 인종차별이 용인되지 않았던 문화 덕분에 순수한 혈통과 그렇지 않은 혈통을 구분짓기 어려웠던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브라질은 전쟁을 증오하는 나라이고, 전쟁을 모르는 나라라고 한다. 이러한 박애주의적 태도는 대중들의 성격과 브라질인의 타고난 관용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이는 역사적으로 종교적 박해가 없었고 내부 분란이 적었던 덕분인지도 모르지만, 점점 더 브라질의 문화를 직접 경험해보고 싶어졌다.

 설탕, 카카오, 담배, 고무, 금, 다이아몬드, 커피 등 넘쳐나는 자연자원으로 위기가 오기도 하고, 그 위기를 극복하기도 했던 브라질, 과연 그 풍요로운 대지와 기후가 형성한 느긋한 문화가 지금도 그곳에 있을까? 지금도 있을 거라고 기대하기엔 70년이라는 세월 동안 신자유주의가 브라질에 미쳤을 영향 때문에 실망이 클 것 같다. 세바스티앙 살가두의 사진을 통해 바라본 브라질, 숲이 사라지고, 수백미터의 땅굴이 파져 있는 광산에 신분과 관계 없이 너도나도 일확천금을 얻기 위해 몰려든 사진. 그래도 어쩌면 하는 마음으로 인터넷으로 검색해 본 브라질은 이미 책에 나와 있는 브라질이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브라질에도 책에서 묘사한 이상적인 유토피아적 문화가 남아 있다면, 그것은 정말로 예수회 덕분일까? 아니면 츠바이크가 몰랐던 다른 무언가가 있었던 것일까? 1984년에 쓰여진 호베르뚜 다마따의 <브라질 사람들>(빠우-브라질 총서 01)도 읽어보고, 앞으로 나올 브라질 책들을 읽고 실제로 브라질로 여행까지 간다면, 어떤 경험을 하게될 지 궁금해진다. 한국의 유교적 문화하는 상당히 달라 보이는 브라질의 문화를 느끼고, 빠져보고, 취해보고, 변해 있는 나를 만나보고 싶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