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 - 일러스트로 만나는 감성 여행에세이
봉현 지음 / 푸른지식 / 201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보통 여행기 책을 볼 때면,

그 사람이 겪은 에피소드에 빠지거나,

그 사람이 찍은 사진 혹은 그린 그림에 빠진다.

하지만 둘 다 빠지는 경우는 흔치 않으며,

둘 다 깊게 빠진 경우는 아예 없었다.


깨달음이 있는 글을 읽을 때면

뭔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문장들로 느껴졌고,

그림이나 사진을 볼 때면

나도 저렇게 그리고 싶다

나도 저런 사진을 찍어 보고 싶다는 부러움만 느꼈다.


하지만 막상 여행을 해보고 나니 나에게 남은 것은

책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내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여행기에서 신나게 떠들던 에피소드들,

재밌는 인연과의 사진들,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풍경들,

그런 것들이 여행 후에도 내게 남지는 않았다.

이제는 더 이상 여행 에세이가 읽고 싶지 않았다.

그냥 다 남의 얘기 같아서.

내게 남는 건 없는 것 같아서.


그래도 오랜만에 여행 에세이를 손에 든 건 호기심에서였다.

책이 너무 안 읽혀서 가볍게 읽을만한 책을 빌려볼까 하던 중에

최근에 받은 여행드로잉 수업의 선생님 여행기를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근데 초반부터 작가는 자신을 전부 드러냈다.

너무 갑자스러운 노출(?)에 적잖이 당황하면서도

전혀 몰랐던 선생님의 면이 신기하여 깊게 읽었다.


그림도 읽었다.

내면을 드러내는 글만큼이나

내면을 드러내는 그림들을 보며

앞으로 읽어나가며 마주치게 될 변화된 글과 그림들이

궁금하여 뒷장을 계속해서 넘기고 싶었다.


하지만 내용만을 읽어나가는 것은

용기내어 자신의 어두웠던 과거를 모두 드러낸 작가에 대한 예의가 아니란 생각에

빨리 읽다가도 되돌아가서 다시, 느리게, 읽었고,

가끔씩은 책을 내려놓고 감상에 젖었다.


누구나 인생의 어두웠던 때가 있기에

짙게 꾹꾹 눌러담아 쓴 작가의 진심은

종이를 뚫고 나와 내 안으로 들어왔다.


이야기에 특별히 기승전결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 책은 한 편의 여행 성장소설이었다.


책을 읽으며 내 안에도 내가 몰랐던 아주 맑고 밝은 아이가 있을 것임을 믿게 되었고,

외로울 땐 충분히 외로워해야 그 순간이 지나 외롭지 않은 순간이 오리란 걸 알게 되었고,

여행이란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란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내가 울고 웃었던 인생의 순간순간이 전부 여행이었고,

그 순간들이 있었기에, 그 순간에 충싫며

아주 예쁘게 웃고, 아주 서럽게 울고, 너무 아파 힘들어하고, 너무 넘쳐 행복해하며,

지금에 이르러 나는 예쁘게 웃을 수 있다는 걸 느꼈다.


어서 친구들 생일이 오면 좋겠다.

이 책을 선물로 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