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년은 소설 읽기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다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아주 기억할만한 해였다고 생각한다. 도나 타트가 무려 10년만에 두번째 소설 "작은 친구"를 내놓았고(2001년에 내놓기로 했다가 늦어졌다), 제프리 유제니디스가 질세라 역시 무려 9년만에 두번째 소설을 내놓은 해였기 때문이다. 둘다 소포모어 징크스가 두려워 잠시 외도하다가 맘잡고 새책을 쓴것인지, 아니면 계속 꼼지락거리며 두번째 소설 구상에 신중에 신중을 기한것인지는 잘 모르겠다(좀 찾아 보니 꾸준히 단편들을 발표한 모양이다). 어쨌든 참 작가도 독자도 오랜 시간 잘 참고 기다렸던 것 같다.
두 작가가 내게 지니는 공통점은.... 둘 모두 데뷰 소설이 유일한 소설이었고 내가 추리소설에 푹빠져 있던 90년대 말, 독서 범위를 한껏 넓혀서 괜찮아 보이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섭렵하던 중 미스테리/스릴러와 주류 문학이 만나는 점까지 이르렀을때 마주한 소설들을 쓴 사람들이라는 거다. 어쩌면 훌륭한 소설들이 장르문학적 속성을 공공연히 드러내던게 시대적인 유행(?)이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어쨌든 그 덕택에 내 취향은 루스 렌델의 콜드 블러디드 스릴러에서 조금씩 조금씩 핏빛을 잃어가고 다채로운 색을 머금기 시작했다.
독후감면에서 비교해 보자면 타트의 소설이 탁월했다. 워낙 좋아하던 바바라 바인의 스타일과 매우 유사했을 뿐만 아니라(특히 Fatal Inversion과 이야기 구도가 닮아 있다), "무구한 젊은 시절에 저지른 과오와 그에 대한 보상"이라는, 항상 관심을 품게 되는 주제를 낭만적이고도 이따금은 현학적으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매우 현실감 넘치게 쓴 책이기 때문이다. 펭귄에서 나온 페이퍼백 에디션에는 렌델의 서평이 책 뒤에 실려 있는데(As a profoundly serious examination of remorse and its effects... this book is as moving as it is insightful...) 아마도 바인이라는 필명으로 집필해 오던 렌델 여사가 자신이 즐겨 쓰던 회고담류의 미스터리를 갈데까지 밀어붙인 젊은 작가 타트의 솜씨에 감탄한 나머지 그런 찬사를 기꺼이 드러내 던진 것이 아닐까 한다.
그에 비해 사실 유제니디스의 "Virgin Suicide"는 아주 돋보이는 미스터리물도 아주 돋보이는 스토리도 아니었다. 재미있긴 한데 끝까지 읽어봐도 왜 그 꽃다운 리스본씨네 소녀들이 계속 목숨을 끊는지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소설이 아닌 영화 덕에 눈에 들어 온거였다(정확히 말하면 Air가 만든 영화음악덕에 알게 된것이지만).
그러나 두 작가의 두번째 작품에 대한 내 반응은 180도 바뀌었다. 타트도 그렇고 유제니디스도 그렇고 첫 소설과는 완전히 다른 소재와 색깔로 쓰여진 소설을 들고 나와서(사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서 그동안 작가의 성향이 변하지 않을수 없었을 것이다) 비교가 무의미하기도 하다. 어쩌면 나는 서로 다른 네명의 작가의 소설을 비교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조금 객관적으로 보려고 애쓰며 둘의 소포모어 텍스트를 비교해본다면 유제니디스의 것이 더 매력적인 것을 숨길수 없다. 수상 여부를 떠나서. "작은 친구"는 그 책을 읽는 시점에서, 왠지 모르게, 어린 소녀를 화자로 내세우는 것 자체가 좀 진부하다고 느꼈다. 그 사실이 소설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려면 뭔가 색다른 시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반면 양성인간이라는 색다른 소재를 들고 나와 위트넘치는 문체로 장대한 한 인간의 일대기를 써내린 "미들섹스"는 소설 읽기의 기쁨을 한껏 들이마시게 해준 맛있는(?) 작품이었다.
타 트의 데뷰작은 이윤기씨의 솜씨로 번역되었지만 작은 친구는 그럴 기회를 얻지 못했고, 유제니디스는 반대로 두번째 소설 "미들섹스"만 송은주씨의 멋진 번역으로(송은주씨의 번역 솜씨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반가운 마음에 초판을 사서 보관하고 있다가 번역본과 교대로 보던중, 훌륭한 번역에 마음을 빼앗겨 마음 푹 놓고 번역서로 다 보았다) 소개되었다.
이번엔 과연 얼마 정도 기다리면 둘의 세번째 소설을 볼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