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위로 - 글 쓰는 사람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곽아람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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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보고 끌렸다고 한다면, 변태라고 하려나. 『공부의 위로』라는 책 제목이 나에게는 참 매력적이었다. 왜냐하면 ‘공부’를 열렬히 좋아한 적이 있고, 지금도 좋아하니까.

이때 공부는 수학의 정석을 푸는 공부는 아니다. 뼛속까지 문과생이 나에게 공부란 글을 읽고 이야기에 매혹되어 가슴이 꽉 차는 느낌과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사고방식과 내가 미처 몰랐던 세계에 입문했을 때 희열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는 작가가 말하는 『공부의 위로』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대학 시절이 생각났다. 작가가 ‘독일 명작의 이해’ 수업을 듣고 수강생들과 교수님의 집을 방문하는 이야기를 보면서 같은 세계를 공유한 사람들이 느끼는 동질감을 떠올렸다. 독일 명작을 읽고 마지막에는 한 권의 책을 써내야하는 강의 커리큘럼도 몹시 탐났지만 나이와 학번을 뛰어넘어 ‘독명이’ 수업을 듣고 하나가되는 그 모임이 참 정겨웠다.

비슷한 경험이 있다. 2012년 국어교사모임 독서교육분과 물꼬방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 겨울 남양주에 사는 S 선생님 집에 30명 남짓 선생님들이 모였다. 광주에서 낮에 출발했지만 캄캄이 밤이 되어서야 영하 –17도라서 입이 딱딱 벌어지는 남양주에 도착했다. 추위와 어색함으로 내 표정은 몹시 어색했던 걸로 기억한다. 두 번째 모임부터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이랑 책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정말 신기했고, 학교 이야기를 했을 때 서로 이해가 너무 잘 되는 부분도 좋았고, 특히 실패담에 대한 격려가 참 따스했다. 새벽 2시 3시까지 이야기하면서도 마지막날 헤어질 때 아쉬워했던 우리들의 추억.

공부하는 모임은 수명이 길다. 우리 물꼬방은 지금 10년 째 유지되고 있다. 우리는 알아버린 것이다. 서로 공부하는 것을 나누는 자리가 얼마나 위로를 전하는지.

작가는 정말 학문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느껴진다. 미술사에 대한 애정도 깊다. 라틴어 수업을 드는 부분도 법을 공부하는 부분도 재미있게 대리만족하며 읽었다. 나는 라틴어와 법 근처에는 가지 않을테지만 그 느낌은 알기 때문이다. 국어교사에게 어문규정집이 약간 민법총론 비슷한 느낌으로 기억될 것이다.

묵직한 책을 읽었을 때, 새로운 개념을 배웠을 때 그 가슴 벅찬 감동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그래서 내가 아직도 벽돌책 앞에서 승부욕이 생기나 보다.



<밑줄긋기>

나는 오랫동안 모범생이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여겼다. 학창시절 내내 모범새잉어고 지금도 여전히 틀에 박힌 모범생이지만 소위 ‘글쓰는 사람’은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6쪽 서문



삶의 어떤 순간에만 쓸 수 있는 글이라는 게 있다. 설익어 어설플지라도 여백이 있어 매력적인 글. 이미 정교함을 획득해 버린 노회한 저술가는 구사불가능한 미학이 그런 글에는 있다.

무턱대로 내지를 수 있는 치기 덕에 빛나는 통찰, 날것이라 푸른 물 뚝뚝 듣는 문장, 눈치 보지 않는 솔직함이 빚어내는 감동...... 이 모든 건 처음의 특권이자 판을 잘 모르는 신인의 특권, 젊음의 특권이기도 하다.

67쪽





인간은 자주 착각하고, 착각을 진실로 믿어 가끔씩 위대한 힘을 발휘하고, 착각에서 깨어나 슬퍼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착각한다. 착각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 흔들릴 수 있는 존재라는 것, 인간의 취약성을 인정하면서 그럼에도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인문학의 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228쪽





교수 자리가 날지 불확실하지만 단지 공부가 좋아 서양 고전 연구를 업으로 삼겠다 결심한 시간강사와 졸업 후에 미래가 불투명하지만 단지 공부가 좋아 쓸데도 없어 보이는 라틴어 강의를 듣겠다 마음 먹은 학생들 ……. 그 낡고 허름한 지상의 강의실에서 우리는 천상의 언어를 배우고 있었고 그 언어는 대부분의 수강생들에게 삶의 잉여였지만 분명 위안이었다. 세상은 우리에게 쓸모를 요구하지만 유용한 것만이 반드시 의미있지는 않으며 실용만이 답이 아니라는 그런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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