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 Danny K-픽션 7
윤이형 지음, 전승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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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교육을 실천하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헬렌 올로이」는 제법 유명한 작품이다. 데이브와 필이 만든 인공지능로봇 헬렌 올로이는 사람처럼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데이브와 필은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필은 데이브와 헬렌이 같이 살도록 지지한다. 이 작품을 좋아했다. 강(强) 인공지능이 인간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는 뜨거운 화두이기 때문이다. 진부한 삼각관계야말로 학생들을 꼬드기기에 효과적인 장치 아닌가?

심완선 평론가와 김건형 평론가의 강의를 들으면서 그제야 문제점을 깨달았다. 여성 인공지능로봇을 대상화하고 있다는 문제. 남자의 욕망이 투사된 존재로 그려진다.

다른 작품은 없을까 고민했는데 심완선 평론가님이 「대니」를 추천해 주셨다. 소설 곳곳에 내 가슴 속에 들어왔다 나간 것처럼 막연한 감정에 이름을 붙일 수 있는 문장들이 있어 좋았다. “그 빛나는 그릇에 매일같이 담기는 타는 듯이 뜨겁고 검은 약을 남기지 않고 받아마시는 것이 내 일이었다.(38쪽)” 이거야말로 아이와 육아에 대한 묘사로 정확하지 않나 싶다.

이 작품은 아이돌보미 인공지능로봇과 손주를 돌보는 할머니의 관계가 중심이다. 청년 인공지능로봇의 이름은 대니이며 그는 아이들을 돌보는데 최적화된 로봇이다. 그는 손주를 따라서 나온 할머니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름다워.”

예순 아홉 살의 할머니는 청년이 자신을 놀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를 돌보는 동안 여성이라는 아니, 살아있는 존재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린 지 오래. “나는 아무거나 집어먹고 손에 닿는 대로 대충 입으며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 그와 나를 함께 비추던 그 거울이 나를 놀라게 했다. 거울은 그런 몰골을 한 내가 허깨비가 아니라 진짜 사람이고, 다른 사람의 눈에도 비치는 존재이며, 따라서 자신의 모습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알려주었다.(44쪽)”

대니는 예순 아홉 살의 할머니와 아이 2명과 함께 사는 집을 구하기 위해 1000만원을 마련하기로 한다. 경찰이 이 사실을 알게 되고 결말은 비극으로 끝난다.

이 소설을 읽을 때 돌봄 노동의 강도, 여성 노인에게 부여되는 자식-손주 돌봄의 의무, 강(强) 인공지능의 문제점 등 다양하게 생각해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에게 감정 이입을 하며 읽어나갔다. 지금은 딸이 6살이라 어느 정도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렇지만 아이가 태어나서 돌이 될 때까지 1년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아이가 생기면서 내 세계가 그렇게 요동칠 줄 몰랐다. 거울을 봤을 때 당혹스러운 신체 변화는 둘째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정신적인 자부심이 사라졌다. 육아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내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아이는 독재자처럼 내가 밥 먹을 자유, 잠 잘 자유, 씻을 자유, 책 읽을 자유, 생각할 자유를 통제하였다. 그때 나는 왜 이상적인 엄마-사회에서 통상적으로 부여하는 이미지-처럼 사랑과 감사의 감정으로만 아이를 대하지 못하는가 자책했다. 아이는 사랑스럽지만 육아는 강도 높은 외로운 노동이다. 그렇기에 대니처럼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마음을 열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에 드는 생각은 과연 이 작품을 중3 학생들이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학생들에게는 조금 어려울 것 같은데, 다른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해보아야겠다.

대니를 만난 여름, 나는 예순아홉 살이었다. 그해 여름엔 비가 많이 내렸고 슬개골연골연화증을 앓고 있던 나는 통증을 잊기 위해 종종 콧노래를 흥얼거리곤 했다. 대니는 스물네 살이었고, 탄탄한 팔다리와 아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재주, 영원히 늙지 않는 심장을 지니고 있었다.

대니가 내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 무엇이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아마도 별 특징 없는 말이었던 모양이다. 마지막이 언제였고 어떤 모양이었는지도 사실은 흐릿하다. 하지만 그가 처음으로 내게 건넨 말은 다른 것과 혼동할 일이 없다. 그건 네 음절로 된 단어였다.

아름다워.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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