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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2015년판) - 김영하와 함께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 ㅣ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북토크에 참가하게 되어 읽게 된 책이다.
그러나 고전에 관한 책을 많이 읽던 요즘이라 관심사에 맞아 재미있게 보았다.
책의 부제는 '김영하와 함께하는 여섯 날의 문학 탐사'로, 여섯 강연으로 나누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산문집이다. 다양한 책에서 좋은 구절을 소개해주어 읽는 내내 이렇게 좋은 말이 많았는지 놀라움이 들게 하는 책이다.
고전에 관한 책만 많이 읽고 정작 고전은 많이 읽지 않은 나도 반성하게 되었다.
첫째 날은 고전에 대한 정의로 시작한다.
0. 고전은 전함이나 함대처럼 질서정연한 책. - 보르헤스
1. 고전이란 사람들이 보통 '나는 ㅇㅇ을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는 책
2. 고전이란 우리가 처음 읽을 때조차 이전에 읽는 것 같은, '다시 읽는' 느낌을 주는 책
3. 고전이란, 사람들로부터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 알고있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실제로 그 책을 읽었을 때 더욱 독창적이고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 창의적인 것들을 발견하게 해주는 책이다.
- 이탈로 칼비노
둘째 날 강연의 주제는 우리를 미치게 하는 책들
그는 내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대단한 독서가였는데, 사후 삼십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는 기본적으로 읽지 않았다. 그런 책만 난 신용할 수 있어, 하고 그는 말했다. "현대문학을 신용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냐. 나는 시간의 세례를 받지 않은 것을 읽는 데 귀중한 시간을 소모하고 싶지 않아. 인생은 짧으니까."
- 무라카미 하루키<노르웨이의 숲>
셋째 날 강연은 책 속에는 길이 없다.
내가 볼 때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것은 내가 실천에 옮겨보고 싶은 바로 무에 관한 한권의 책, 외부 세계와의 접착점이 없는 한 권의 책이다. 마치 이 지구가 아무것에도 떠받쳐지지 않고도 공중에 떠 있듯이 오직 스타일의 내적인 힘만으로 저 혼자 지탱되는 한 권의 책, 거의 아무런 주제도 없는 아니 적어도 주제가 거의 눈에 뜨이지 않는(그런 것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한 권의 책 말이다. 가장 아름다운 작품들은 최소한의 소재만으로 된 작품들이다. 표현이 생각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어휘는 더욱 생각에 밀착되어 자취를 감추게 되고 그리하여 더욱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플로베르는 '거의 아무런 주제도 없는' 책을 쓰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
'극 초반에 총이 나왔다면 언젠가는 발사되어야 한다'는 말을 남긴 이는 안톤 체호프입니다. 플로베르는 그것을 뒤집어 사용합니다. 극 초반에 총이 나왔더라도 독자들이 그 총이 발사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면 꼭 발사할 필요는 없다고 말이죠.
다섯째 날. 매력적인 괴물들의 세계
우리는 마침내 그에게 연민을 느낍니다. 그리하여 토니가 '복잡하게 나쁜 사람'임을 받아들이고 그를 사랑하게 됩니다. 동시에 그를 좋아하는 우리 역시 '복잡하게 나쁜 사람'임을 받아들이게 됩니다.(p155)
여섯째 날. 독자 책의 우주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인간은 모두 자신이 사는 세계를 잘 알고자 합니다. 그것은 당연한 욕망입니다. 소설이라는 세계에 발을 디뎠다면, 그리고 그 세계에서 계속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그 세계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 그리고 지금 자신은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싶어하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유명한 출판사에서 내는 세계문학전집 같은 경우는 우리에게 이 세계의 길잡이로 삼을 만한 랜드마크와 대략적인 지도를 제공합니다. 그들은 대체로 호메로스나 오비디우스, 셰익스피어로부터 출발하라고 권하고 19세기까지 대략 비슷한 경로를 제시합니다.(p184)
소설을 쓴다는 것은 땅을 사서 집을 짓는 것과는 좀 다릅니다. 소설 쓰기란 남의 것을 잠깐 빌려왔다가 그것을 다시 책의 우주에 되돌려주는 작업인 것입니다.(p208)
이렇게 많은 좋은 말들이 실려있다. 책의 인용이 대부분이고 작가의 해석이나 생각이 적은 것이 아쉽긴 하다.
그래도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고전에 대한 생각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 현대의 작가들이 새로워보이지만 실은 오래된 작품들을 쓰는 반면 고전들은 낡아보이지만 실은 새로운 작품들이다.
- 우리는 휴브리스(모르면서도 알고 있다고 믿는 오만)과의 투쟁으로서 고전을 읽는 것이다.
하마르티아: 인간의 성격에 잠복해있는 중대한 약점
휴브리스: 인간의 자만심 혹은 오만. 하마르티아 중 하나
- 좋은 책은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 비극에서 우리를 가장 매혹하는 것은 반전과 발견이다.-아리스토텔레스
- 결정적 하루와 순간을 통해 과거 자신의 어리석음을 발견한다.
- 호메로스가 그토록 복잡한 플롯(정보를 주는 순서)을 사용한 것을 보면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듣게 하려면 치열한 고민과 설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작가와의 대화에서 나온 질문과 대답 중 인상깊은 것들을 소개하겠다.
Q1. 작가의 정신적인 미로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책을 추천해주세요.
A1. 어렸을 때 읽고 감동받았던 책을 다시 읽으세요
Q2. 청소년에게 주고 싶은 메세지가 있다면?
A2. 실용적인 인재보다 의미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라. 고전을 읽는다면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그리고 가장 와닿았던 말
"수학영재, 과학영재는 있지만 문학엔 영재가 없습니다. 성숙해야 이해가 가능한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